• 화장실에서 화장하는 아이

    엄마의 세계화는 아이들과 대화의 벽을 허무는 데서부터 시작되었으면 합니다.
    한참 자라나는 자녀들은 엄마에게 할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일어난 소소한 일도, 선생님에게 들었던 칭찬이나 꾸중도,
    이 모든 것들이 아이들에게는 하루 하루 살아가는 데 아주 중요한 것들입니다.
    내 엄마만 모르고 남들은 다 아는 비밀을 지니고 있는 아이들이 의외로 참 많습니다.
    내가 학교에 있을 때, 미국학교라서 한국에서는 이해가 잘 안되겠지만,
    중학교 1,2학년 아이들이 아침 일찍 학교에 와서 화장실에서 화장을 하고,
    귀걸이 목걸이로 치장을 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왜 학교에 와서 치장하느냐고 물어 볼 필요도 없습니다.
    부모, 특히 엄마에게 꾸중 듣기 싫어서 학교에 와서 하는 것입니다.
    그 아이들은 "엄마에게 꾸중 듣기 싫어서"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엄마와 싸우기 싫어서"라고 말합니다.
    엄마는 자녀들에게 때로는 친구, 때로는 상담자, 때로는 선생님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공부해라" "밥 먹어라"라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는 엄마라면 정말 곤란합니다.
    일방적으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지시하는 태도는 자녀들로 하여금 엄마를
    멀리하게 하는 이유가 됩니다.


  • 사춘기의 고민을 엄마는 알까

    사춘기로 접어든 아이들은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본인 스스로도 감당하기 힘든
    성장과정의 호르몬 변화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 아이들은 아직 성인이 아닌 미성숙 상태이기에, 이 시점에 더더욱
    엄마의 이해와 사랑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입니다.
    이 시기에 "왜 너는 그러니?" "넌 요즘 참 이상해졌다." "그러는 널 이해못하겠다."
    등등 부정적인 엄마의 발언은 아이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고립된, 외로움과
    혼자만의 갈등에 빠지기 쉽습니다.
    사춘기로 접어든 아이들이 엄마와 별로 말을 하지않으려 들고, 묻는 말에나 겨우 대답하는
    것은, 육체적 정신적 변화에 혼란의 겪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남자 아이도 여자 아이도 평소와 달리 방문을 닫고 저 혼자 있는 때가 늘어납니다.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해 가는 증거인 것입니다.
    이때 엄마도 아이들의 변화에 적응해 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엄마는 내 얼굴만 보면 잔소리한다."
    "엄마하고는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
    속으로 아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게되면 성장하면서 더더욱 엄마와의 대화의 문을 닫아
    버립니다.
    묻는 말 외에는 말을 하려 들지 않는 아이, 어른과 이야기하는 것을 거북해 하는 아이,
    나이에 맞지 않을 정도로 유난히 정중하고 깍듯한 아이, 이런 아이들은 사춘기에 무언가
    잘못 적응되어서 문제를 일으키기 쉬운 타입입니다.
    툭 터놓으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을 자기 안에 쌓아가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부모에게 가끔 말대꾸도 하고, 때로는 떼도 쓰고 투정도 부리고 한없이 재잘재잘 수다도
    떨고 하는 아이들이 오히려 정상인 것입니다.

    염색하고 태권도 하겠다는 딸

    우리 집 이야기입니다.
    둘째 딸애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옷차림이 요상하고 머리 스타일 또한 요란했습니다.
    아침에 학교 가기 전, 머리를 빗는 시간이 거의 한시간이 걸릴 정도였습니다.
    "너는 학교 가는 아이가 머리 손질하는 시간이 한시간이야?" 질책하는 엄마에게
    "엄마, 머리를 밤색으로 염색하면 어떨까?" 딴청을 부렸습니다.
    그 순간의 딸애에게는 엄마의 따분한 질문에 대답하는 것보다 제 머리 염색 색깔이
    아주 다급한 문제였던 것입니다.
    "왜, 꼭 염색을 해야하니?"
    "요새 그게 유행이에요. 내가 보라색으로 염색하면 엄만 어떡할거야?"
    "뭘 어떻게? 싹둑싹둑 잘라버리지."
    나는 우스개로 싹둑싹둑 잘라버린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런 부모를 본적도 있습니다.
    "후후후, 걱정 마, 엄마. 보라색으로 염색하진 않을 테니깐."
    그 뿐 아니라 딸애는 새로 사다 준 청바지를 양잿물을 잔뜩 붓고 빨래기계에 넣고
    돌렸습니다. 새 바지를 그렇게 서너번 빨아 여기저기 구멍을 숭숭 낸 다음 입고
    다녔습니다.
    "세상에 새 바지를...그 꼴이 뭐니?" 라고 말하면 그게 최신 유행이라고 답했습니다.
    머리를 사자처럼 빗고 다닐 때, 못 마땅해하는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엄마는 언니처럼 단발하고 다녀야 모범생이라고 생각하지? 엄마는 언니처럼
    운동을 해도 정구를 해야지? 나처럼 기계체조나 장애물 경기를 하면 망나니 같지?
    그런게 엄마, 난 내 스타일이 좋은 걸 어떡하지? 엄마는 여학생 머리는 단발머리고
    음악은 클래식이고 운동은 정구라야 한다고 고정관념이 꽉 박혀있는 거라고요."

    '엄마의 고정관념'

    지금도 이 말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사실 그랬습니다.
    딸 둘을 키우면서 큰 애는 엄마가 좋아하는 피아노, 정구를 했고,
    둘째는 엄마가 원하지 않는 것만 골라 했습니다.
    운동을 해도 하필이면 기계체조, 장애물 경기, 태권도를 했습니다.
    키도 크고 다리도 훨씬 긴 외국 애들 틈에 끼어 장애물 경기를 할 때에도,
    어른과 아이 게임처럼 보이는 태권도 시합을 할 때에도 가슴이 조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딸애가 원하는 것이기에 열심히 경기장에 쫓아 다니며
    응원을 했습니다.
    둘째 딸은 대학에 가서도 치어리더를 했고,
    지금 두 아들의 엄마가 되고나서도 캘리포니아 주 태권도 챔피언입니다.
    엄마의 가치기준으로 아이를 평하고 판단한다는 게 얼마나 아이에게 안좋은 것인지
    잘 알면서도, 엄마는 자신을 뛰어넘기 참 힘듭니다. 내 스스로 경험 해봤기에 잘 압니다.
    "엄마, 나 엄마한테 거짓말 해본 적 없어요."
    라면서 아이들이 숨겨도 좋을 이야기를 털어 놓을 때,
    엄마는 당황하게 되지만 숨김없이 털어놓는 아이들에게 고마워해야 합니다.
    "우리 엄마만 모른다."고 담을 쌓지 않도록 항상 아이에게 대화의 상대가 되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마누라는 말이 안 통해"

    남편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남편도 대화의 상대를 목말라 합니다.
    남자들이 밖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마음을 툭 털어놓고 지내는 친구들이 많을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우스개 소리겠지만, 식당이나 찻집에서 남자와 여자가 대화없이 앉아있으면
    그들은 틀림없이 "부부사이"라 합니다.
    할 말이 없는 부부사이.
    그야말로 무덤덤하게 살아가는 어제와 오늘과 내일.
    "우리 남편은 집에 들어오면 통 말이 없다."고 말하는 엄마들이 있습니다.
    "우리 아내하고는 전혀 말이 안 통한다."고 말하는 아빠들도 있습니다.
    왜 아내와 말이 안 통할까요?
    대화가 안되기 때문입니다.
    왜 대화가 안 될까요?
    살림 잘 하고, 아이들 잘 돌보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관심없는 아내라면 부부 사이의
    대화는 아이들에 관한 것 이상이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아내와 남편이 나눌 수 있는 대화 내용이 오직 아이들에 관한 것뿐이라면
    엄마가 먼저 생각해봐야 합니다.
    "내 아내와는 말이 안 통한다."라는 생각이 남편 마음속에 꽉 차 있다면
    그 부부는 서로가 얼마나 외롭습니까. 남편도 아내도 남처럼 느껴지고 세월이 갈수록
    서로가 겉도는 삶으로 채워집니다.
    대화의 소재가 아이들 문제만이라면 성장한 자녀들이 출가한 다음은 어찌 될까요.

    어느 날 갑자기...황혼 이혼

    노년의 이혼이 가능하다는 게 바로 이런 이유가 아닌가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너무나도 고독하게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한평생을 살아 왔다는
    후회가 한스럽게 느껴질 때, 앞으로 살 날도 이렇게 살아선 안되겠다고 여겨질 때,
    체면 위선 같은 것에 꽁꽁 매여 살아 온 굴레를 벗어던지고 나머지는 '나만을 위해'
    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젊었을 때는 젊음 하나로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차차 세월이 지나면서 부터는
    서로가 서로에게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밖에서 있었던 기분 좋은 일도, 기분 나쁜 일도 속 시원하게 터놓고 말하는 상대,
    이래야 할지 저래야 할지 망설이며 고민할 때 의논할 수 있는 상대,
    한국뿐 아니라 넓은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크고 작은 사건들에 대해서도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상대, 부부는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친밀한 말 벗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이든 모르면 배우겠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자녀에게도 남편에게도 소통할 수 있는 엄마로 업그레이드 시키시기 바랍니다.
    알려고만 한다면 무슨 정보든지 무궁무진한 인터넷 세상 아닙니까.

    김유미작가의 홈페이지 www.kimyum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