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고의 대학, 최고의 직장, 최고의 수입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명문대학에 다니고 있는 한국 학생들이 참 많습니다. 굳이 명문 사립대학이 아니라 해도 매년 권위있는 잡지들이 선정하는 세계 최고 대학100 순위 안에 들어가는 주립대학에도 한국 학생들이 많이 다니고 있습니다.

    때로 나는 이런 학생들을 보면서 우리 한국인들의 우월성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합니다. 다민족 사회 속에서 살면서, 민족적 우월성을 느낀다는 건 위험할 수도 있지만 너무나도 똑똑한 한국 학생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우월감이 드는 것입니다. 좋은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사회로 발을 내딛는 초년생들이 크게 두 부류로 나눠집니다.

    하나는 자신이 전공한 전문분야에서 직장도 수입도 최고수준으로 시작하는 젊은이들입니다. 그들은 그야말로 미국 영국 독일 중국 등지의 수재들과 어깨를 겨루는 마라톤 대회에서 앞서 달려가는 젊은이들입니다.
    어쩜 저렇게 젊은 사람이 벌써 저 위치에 올라가 있을까? 어쩜 저렇게 젊었는데 수입이 저토록 어마어마할까?

    그들은 우리 세대, 이민 1세들은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직위와 수입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주변에서 이런 젊은이들을 볼 때마다 너무 신통하고 대견합니다.


  • 졸업장보다 더 중요한 것 '문화 수준'

    그런가 하면 또 다른 부류가 있습니다. 이 젊은이들 역시 좋은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수재들이지만 그 기막힌 이력서를 가지고도 정상급 직장을 얻지 못하고 2급 직장으로 빠지는 것입니다. 이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 근본 원인이 도대체 무엇일까? 이 근본 원인을 엄마들은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이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엄마들의 변화가 와야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문화차이입니다. 한 인간을 형성하는 문화가 이렇게나 중요한 것입니다. 많은 경우, 엄마들은 이 문화를 등한시합니다. 그저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게 다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공부 외에 그 무엇?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그것이 바로 국경을 넘나들 수 있는 국제사회의 문화인 것입니다.

    국제사회의 정상급 기업체에서는 국제무대에 손색없는 정상급 문화수준을 요구합니다. 이것이 좋은 대학 졸업장보다 몇배나 더 중요한 것입니다. 

    문화란 무엇인가? 흔히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종족, 또는 다른 지방 사람을 일컬을 때 문화가 다르다는 표현을 씁니다. 그 사람이 나쁘다거나 싫어서가 아닌데 어딘지 모르게 서먹하고 불편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 나온 "off the boat"

    나와 내 남편의 경우, 이웃과 친근하게 인사를 주고받고 서로 필요할 때는 성심껏 도와주고 하면서도 함께 여행을 한다든가, 또는 주말에 서로 초대해 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든다 하는 허물없는 사이는 되지 못합니다. 어쩌면 이게 문화의 벽을 넘지 못하는 이민 1세들의 한계인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 말하는 지방색이라는 것 또한 문화차이를 의미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말투도 나와 다르고 음식 기호도 다르고 하다못해 옷 입는 취향도 다르고 취미 또한 다르면 어딘지 모르게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대화 몇 마디 나누는 속에 그 사람의 교양이 나타납니다. 식당에서 식사하는 태도, 종업원을 대하는 태도 하나에도 문화 수준이 드러납니다. 언행이 세련되지 않은 사람을 흔히 ‘촌놈’이라 부릅니다. 촌에서 산다고 ‘촌놈’이 아닙니다. 미국에도 이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촌스러운 사람, 이런 사람을 가리켜 ‘off the boat'라는 표현을 씁니다. “He must just got off the boat." 이 말을 직역하면 “보트에서 금방 내렸다‘는 뜻이지만 촌스럽다는 미국식 표현으로 씁니다.

    미국 초창기 이민자들은 유럽에서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왔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생겨난 말로 때를 벗지 못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고 저절로 문화인이 되는 건 아닙니다. 지식이 많은 사람, 또는 돈이 많은 사람도 저절로 문화인이 되지는 못합니다. 가난하면서도 문화인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자이면서도 문화인이 아닌 사람이 있습니다.

    한 인간의 문화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서서히 몸에 익어 형성되는 것입니다. 각 가정이 가지고 있는 문화수준이 한 사람의 성장과정에 미치는 영향은 이렇게 대단한 것입니다.

    벤츠 500 타고도 살 수 없는 것

    얼마 전에 한국 여행사가 주관하는 버스를 타고 요세미티에 다녀 온 적이 있습니다. 휴게소에서 잠시 쉬는 시간에 버스에 타고 있던 여행객들이 모두 밖으로 나와 쉴 때였습니다. 어떤 남자가 손으로 코를 힝 풀더니 바지에 쓱쓱 문질렀습니다.

    "어머머 세상에. 아이 더러워. 어쩜 저런 사람이 있을까."
    "어유 창피해. 미국 사람들이 봤으면 우릴 야만인 취급하겠네."
    "저 사람이 아까 버스 안에서 자기는 벤츠 500 탄다고 자랑하던 그 사람이잖아?"
    "어유, 벤츠 500이면 뭐하니? 저런 상스러운 인간 처음 보겠네."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엄마들이 주고 받는 입방아였습니다. 문화는 벤츠500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오빠, 오페라 가자" "너 미쳤니?"

    대학 4학년 남녀학생의 교제가 깨진 실화입니다. 하루는 여학생이 남자친구 보고 오페라를 가자고 하였습니다. 아주 유명한 오페라이기 때문에 여학생은 꼭 가보고 싶었습니다.

    "뭐? 뭐라고? 너 지금 입장료가 50불이라고 했니?" 표가 50불이라는 말에 남자친구는 펄쩍 뛰었습니다.
    "그 돈이면 영화관을 다섯번도 더 가겠다. 미쳤니? 돈 버리게?" "아이 오빠, 난 일년 내내 영화는 안가도 좋으니까 이 오페라는 꼭 보고싶어. 꼭 봐야 해. 내가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난 안가. 그런 널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참 넌 이상한 애야. 오페라를 꼭 봐야하고 볼쇼이 발레를 꼭 가야하니?" 이상한 애라는 말에 여학생은 마음이 상했습니다.

    오페라가 불씨가 된 것이지만 그 남녀가 헤어져야 했던 원인은 문화차이였습니다. 여학생은 오페라, 음악회, 발레 등 이런 공연을 보러 다니는 집안에서 자랐고 남학생은 전혀 그런 문화에 접촉하지 않은 집안에서 자라났던 것입니다. 여학생 가정이 경제적으로 부유한게 아닙니다. 경제적으로 비교한다면 남학생 집안이 훨씬 부유했습니다.

    이곳에서 흔히 혼기를 맞은 자녀들에게 한국사람 배우자를 강조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심한 경우 외국인과 결혼한다면 내 자식이 아니라고 으름장을 놓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주변에 젊은이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저런 가정을 볼 수 있는데 어떤 가정은 자녀를  결혼시키려는 건지 자신이 결혼하겠다는 건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배우자 선택에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over my dead body? 엄마가 결혼해?"

    "내가 죽으면 죽었지 절대 안된다"라는 표현을 영어로는 "over my dead body"라고 합니다. 그러나 종족이 같다고 문화배경, 문화수준이 같으란 법은 없습니다. 종족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결혼을 한다면 불행해지기 쉽기도 합니다. 

    결혼의 필수조건은 두 사람의 살색이 아니라 두 사람의 문화수준입니다. 한 사람은 오페라, 음악회 다니는 것이 생활화했는데, 한 사람은 그걸 돈 낭비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이에서의 조화는 힘든 일입니다. 옛날 어른들이 배우자를 선택할 때 '집안을 봐야한다'는 말이 바로 문화 수준이 아니었는가 싶습니다. 한국에서도 그렇겠지만, 미국에서 혼기의 한국태생 2세남녀가 결합되기 힘든 이유가 경우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문화 차이가 가장 큰 이유입니다.

    같은 한국인 2세끼리 문화차이라니? 그렇습니다. 그들 사이에도 문화 차이가 심합니다. 어떤 가정에서 어떤 식으로 자라났는가가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몸은 미국 땅에, 머리는 한국 땅에...

    몸은 미국에서 살지만 의식이 전적으로 한국적인, 그것도 아주 봉건적인 엄마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굉장히 한국적으로 자라는 경향이 많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한국적'이라는 의미는 남성우월주의, 아들선호등을 가리킵니다.

    ---가정 A---
    아들 아이가 밤늦게 귀가해서 라면을 먹고 싶다 할때, 엄마는 자기가 끓여주든가 아니면  딸애 보고 끓여주라 합니다. 아들 아이는 엄마나 누나, 또는 여동생이 끓여주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딸아이 역시 그 일은 자기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엄마를 돕는 부엌일은 당연히 딸애가 합니다. 물론 설거지도 딸애 담당입니다. 엄마가 아니면 딸, 이 가정의 일은 여자의 의무가 됩니다.
     
    ---가정 B---
    이 가정도 자녀가 아들, 딸 둘입니다. 이 가정의 가사는 엄마, 아빠, 딸, 아들 네명 모두의 일입니다. 가정 A나 마찬가지로 이 집도 맞벌이 부부입니다. 하지만 이 가정은 누가 어떤 일을 한다는 분담이 없습니다. 남편이든 아내든 먼저 집에 들어오는 사람이 쌀을 씻어 전기 밥솥에 넣어 놓습니다. 설거지는 딸과 아들이 돌려가면서 합니다. 엄마와 아빠는 저녁 준비를 했기 때문에 설거지는 자녀들이 맡습니다. 빨래도 시간이 여유 있는 사람이 솔선해 합니다. 빨래는 누가 해야 하고 청소는 누가 해야 한다는 구분이 없습니다. 함께 도우며 살아가는 가정입니다.

    "나는 식모를 구하는 게 아닙니다"

    같은 한국 가정이라 해도 이렇게 다릅니다. 그러니 문화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A가정에서 자라난 남자와 B가정에서 자라난 여자가 연애를 한다고 가정한다면, 그 연애는 오래가지 못해 깨지기 쉬울 것입니다. 두 사람을 가깝게 만드는 조화는 살색이 아니라 문화입니다. 한국을 떠난지 10년, 20년 심지어는 30년이 넘었어도 이렇게 전형적인 재래식 한국인 사고 방식, 가사는 여자 담당이고 부엌에 들어가는 남자는 집안망신이다, 라는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이 교포사회에 많습니다. 이런 의식을 가진 엄마는 똑똑한 며느리보다 살림 잘하고 자기 아들 잘 보살펴 줄 여성을 원합니다.

    "나는 식모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미국에 사는 친구 아들의 말입니다. 의사며 교수인 이 친구 아들에게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중매가 많이 들어옵니다. 중매쟁이가 아니라 해도 서울에 있는 친척과 엄마 친구들이 좋은 색시감 있다고 사진을 보내옵니다.

    하루는 엄마가 서울에서 온 여자 사진을 아들에게 내밀며 말했습니다. "마음씨도 아주 착하고 살림도 잘한다더라. 대학 졸업하고 글쎄 2년동안이나 요리학원에 다녔다는구나. 중국 요리, 불란서 요리, 못하는 게 없단다. 얼마나 좋으냐. 결혼하면 네가 밥해 먹지 않아도 되고 빨래 안해도 되고 어서 장가를 가야 그 고생을 안하지." "엄마는 내가 식모 구하는지 아세요?" 아들이 정색을 했습니다.

    식모는 돈 주고 고용하면 됩니다. 요리 잘하는 사람을 원하면 요리사를 구하면 됩니다. 나는 와이프를 원하지 식모를 원하는 게 아닙니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여행을 즐길 줄 알고, 내가 좋아하는 운동도 함께 할 수 있는 여자, 나는 애인 같은 아내를 원하지 식모 같은 아내를 원하지 않습니다." 엄마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고 합니다.

    많은 경우, 엄마들은 "남편 잘 모시는 여자"를 며느리로 원하면서도 자기 딸은 "남편 잘 모시는 여자"로 키우지 않습니다. 이런 이중성, 이 모순을 엄마들이 극복해야 합니다. "나는 식모를 원하지 않습니다. 아내를 원합니다." 이 말을 많은 엄마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것입니다.

    "Monkey sees, monkey does."

    개인적으로 세계적인 대기업의 부사장, 대학 교수, 변호사, 의사 등등 같은 또래 백인들보다 훨씬 앞서 가는 유능한 젊은 한국 여성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그런 위치에 일찍 당도했을까요? 당당한 실력과 국제사회의 세련된 문화의식입니다.

    실력은 혼자 힘으로 할 수 있지만 세련된 매너는 자라면서 몸에 배어야 합니다. 여기에 엄마의 문화수준이 절대적인 것입니다. "Monkey sees, monkey does.(원숭이는 본대로 따라한다)"라는 말처럼 한 인간의 문화형성은 부모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됩니다. 지금부터 50여년 전만해도 고등 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드물었습니다. 나의 할머니 세대는 한글을 깨우친 여성들도 드물었습니다. 그 시대 한국여성들은 자신은 무식해도 내 자식 서울로 유학 보내 공부 많이 시키면 그게 바로 과거급제 출세의 길이었습니다.

    이제는 그러나 한국 사람이라고 한국 국경안에서만 활동하는 시대는 아닙니다. 엄마의 교양, 엄마의 매너, 엄마의 의식수준이 국제화 되어야 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야 자녀들을 글로벌 수준에 어울리는 인재로 키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렸을 때부터 배우지 못해서, 알지 못해서, 세계에서 최고라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촌놈'이 되지 않도록 엄마가 가르쳐야 하는 시대입니다. 엄마가 모르면 엄마 자신부터 배우도록 해야 합니다.

    "엄마, 나, 국제화 수준에 어울리는 문화인으로 키워주세요."  아이들이 요구합니다.

    김유미작가의 홈페이지 www.kimyum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