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성까지 가는데 세시간 가까이 걸렸다. 견인차의 속도 자체가 느리기도 하였지만, 망가진 내 차를 끌고가기까지 하여야 했으므로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린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해야겠다.

    그러나 상당히 짜증스러운 일이긴 했다. 게다가 견인차 운전사가 도중에 휴게소를 들러 늦은 식사까지 했다는 것이었다. 우리도 식사를 하여야 했긴 하지만, 견인차 운전사의 식사대까지 우리가 지불해야 했다는 것은 좀 부당하다는 생각마저 들기까지 하는 일이었다.

    유성에 도착한 우리가 제일 먼저 들른 곳은 마땅히 자동차 정비소였다. 사실은 우리가 자동차 정비소에 들렸다고 하기 보다는 견인차 운전사가 자동차 정비소로 직행했고 우리는 그 견인차 운전사에게 끌려갔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이겠다. 사고 지점부터 유성까지 오는 내내 우리의 상황은 그와 같았었다.

    자동차 정비소에 나의 차를 맡기고 견인차 운전사와 계산을 끝낸 후, 우리는 택시를 집어타고 곧장 유성경찰서로 갔다. 유성경찰서의 최득구 순경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자동차 정비소에서 나는 정비소 직원에게 나의 차를 잘 고쳐달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정비소 직원이 어련히 알아서 잘 해 줄 일이겠지만, 망가지고 찌그러진 나의 차를 맡기고 돌아나오는 마음이 영 심난해서 그렇게 당부하고 또 당부하고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성경찰서에 도착해 최득구 순경을 찾았을 때, 마침 최득구 순경은 자리에 없었다. 현장 순찰중이라고 했다. 급한 일이라 그러니 현장 순찰 중인 최득구 순경과 지금 연락할 방법이 없겠느냐고 문의하자, 우리를 맞았던 민원실의 여직원은 여전히 기다려야만 한다 고, 그 외 다른 방법은 없는 것처럼 말할 뿐이었다.

    성규가 그의 친구인 청양경찰서의 김요삼 순경에게 전화를 했다. 청양경찰서의 김요삼 순경에게 유성경찰서의 최득구 순경의 핸드폰 전화번호를 물었고, 그건 나와 지만이도 궁금해하던 것이었다. 성규가 청양경찰서의 김요삼 순경이 일러주는 유성경찰서의 최득구 순경의 핸드폰 번호를 꼼꼼히 받아적었다. 010-6698-7730

    성규가 청양경찰서의 김요삼 순경이 가르쳐준 유성경찰서의 최득구 순경의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김요삼 순경의 친구 나성규라고 합니다."
    "?....."
    "제 도망간 아내의 흔적을 찾았다고 해서, 그래서 한 번 뵐까 하고....지금 유성경찰서에 와 있는데요."
    "?....."
    "알겠습니다.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최득구 순경이 지금 사고 현장에 나와 있어 지금 당장 경찰서로 들어갈 수는 없고, 거기 일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경찰서로 들어가겠다고 한 모양이었다. 나와 지만이에게 최득구 순경의 말을 전하는 성규의 말이 그랬다.

    청양경찰서의 김요삼 순경에게 전화를 걸어 유성경찰서의 최득구 순경의 핸드폰 번호를 알아내어 최득구 순경과 통화를 하긴 하였지만, 결국 최득구 순경을 기다려야 하는 우리의 처지가 바뀌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최득구 순경에게 한 전화가 전혀 소득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었다. 현장 일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돌아온다 하였으니, 최대한 빨리 돌아오는 그만큼, 소득인 셈이었다.

    한 이 삼 십 분 정도 기다리면 될 줄 알았는데, 웬 걸, 최득구 순경은 한 시간이 넘어가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최득구 순경은 영원히 나타나지 않았다.

    나타나는 대신 전화를 했다. 우리가 최득구 순경을 기다린 지 한 한 시간 십여 분쯤이 되었을 때였다.

    유성 리베라 호텔 커피숍으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전화를 받고 나서 황당했다. 한 시간 십여 분이 지난 지금에사 전화를 해서 기껏 한다는 소리가, 자기가 오겠다는 게 아니고 우리더러 유성 리베라 호텔 커피숍으로 나오라고 지시하는 게, 황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최득구 순경의 황당한 지시대로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쉬운 건 최득구 순경이 아니라 우리였으니까.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쉬운 건 성규였다. 이 일은 근본적으로 성규의 문제였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잔뜩 불만을 품고 최득구 순경의 지시대로 유성 리베라 호텔 커피숍으로 나간 거지만, 최득구 순경이 우리를 그곳으로 부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일이었다.

    성규의 몽골 아내, 오르그뜨를 본 게 그 근처에서였기 때문이었다.

    "최득구 순경이신가요."
    "네, 내가 최득구인데, 나성규씨?"
    "네, 그렇습니다."

    우리가 리베라 호텔 커피숍에 당도했을 때, 최득구 순경은 먼저 그곳에 나와 있었다. 최득구 순경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최득구 순경은 경찰 제복을 입고 있었고, 호텔 커피숍 안에 제복을 입고 있는 사람은 최득구 순경 한 사람 뿐이었다.

    "요삼이한테 들었습니다. 최득구 순경님께서 도망간 제 아내를 보셨다고요."
    "네, 김요삼 순경에게 그렇게 얘기를 했습니다만....사실 꼭 확신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김요삼 순경이 내게 성규씨의 도망간 몽골 아내의 사진을 메일로 보내주었고, 사진의 여자와 내가 아주 비슷한 여자를 보았다는 것 뿐입니다."
    "비슷한 여자를 보았다면 도망간 제 아내가 맞겠지요." "눈으로만 확인을 했지, 조사를 해서 확증을 한 건 아니거든요. 만일 잘못 접근했다가 여자가 낌새를 채고, 도망가면 죽도 밥도 안 된다는 생각에 그냥 내버려두고 먼 발치에서만 확인한 겁니다."
    "잘 하신 겁니다. 조사는 저희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도망간 아내가 어디에 있는 건가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나는 성규씨의 도망간 몽골 아내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 비슷한 여자가 있는 것 같다고 했을 뿐이지요. 그게 내가 김요삼 순경한테 말한 내용의 골자입니다."
    "알겠습니다. 하여간 내 도망간 아내와 비슷한 여자가 있는 곳이 어디입니까."

    최득구 순경은 뜸을 들였다. 마치 이게 몹시 중요한 정보여서 쉽사리 내어뱉어서는 안 될 사항이라는 식의 태도였다. 일부러 그러는 것 같진 않고, 습관인 듯 했다. 어떤 정보든 함부로 입에 발라서는 안 된다는 게 경찰의 수칙같은 건지 모를 일이겠다.

    사실 성규의 도망간 몽골 아내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은, 성규가 들으면 기분 상할 일일지 모르겠지만, 하등 중요할 게 없는 정보였다. 지극히 사소한 정보였다. 세상 사람들에게 그 정보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 아니 전혀 알 필요조차 없는 정보였다. 실은 나나 지만이에게도 그건 그런 정보였다. 나나 지만이가 성규의 도망간 몽골 아내를 찾는 걸 돕기로 동의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최득구 순경이 그런 사소한 정보를 가지고 뜸을 들이는 건 전혀 이해가 안 가는 태도였다.

    최득구 순경이 그런 사소한 정보를 가지고 뜸을 들이는 바람에, 성규가 바짝 긴장하고 말았다. 지만이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좀 어처구니가 없었다.

    "여길 나가면 좌측으로 아드리아네 라는 호텔이 보일 겁니다. 그 아드리아네 호텔 방면으로 가다 보면, 대로변에서 오른쪽 골목으로 꺾이는 길이 나오는데, 그 골목으로 들어서서 십여 미터 전방쯤 가면 우측에 '바다풍경'이라는 맛사지 센터가 나옵니다. 그 '바다풍경'이라는 맛사지 센터에 그녀가 있습니다."
    "제 도망간 아내가 거기, 그러니까 '바다풍경'이라는 맛사지 센터에서 일한단 말입니까."
    "일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내가 그녀를 본 게 거기서였습니다. 사고 신고가 들어와 출동을 했다가 보게 된 거니까요."
    "사고요? 제 도망간 아내한테 무슨 사고가 있었던 겁니까?"
    "그게 아니고요. 손님들간에 작은 실랑이가 있었던 겁니다. 그녀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최득구는 성규의 도망간 몽골 아내를 내내 그녀라고 명칭했다. 자기가 본 게 성규의 도망간 아내와 생김새가 비슷하긴 하지만, 확인한 바 없고, 그래서 그렇게 확정적으로 부를 수 없어서인 듯 했다. 꽤 조심스러운 사람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성규의 도망간 아내와 비슷한 여자를 자꾸 그녀라고 부르는 데에는 귀에 거슬렸다. 우리가, 아니 성규와 지만이는 모르겠다, 나는 꼭 최득구 순경에게 속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물론 최득구 순경이 우릴 속일 리 없고, 속인 게 아무 것도 없었지만 말이다.

    지만이 우리와 함께 '바다풍경'이라는 맛사지 센터에 가보지 않겠느냐고 하였지만, 최득구 순경은 정중히 거절했다. 자기가 가면 오히려 일이 복잡해질 수 있다고 하면서. 그럴 듯한 얘기였다. 최득구 순경은 제복을 입고 있었고, 제복이란 사람들에게 필요 이상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