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러기도 영어로 우는가

    그야말로 영어가 뭐길래, 가족이 뿔뿔이 헤어지는 고통을 겪어가면서까지
    어린 자녀를 멀리 외국에 유학을 보내야 할까.
    아직 사춘기도 안된 어린 아이를 태평양 건너 남의 나라에까지 보내야 하도록
    영어 유학은 절대적인 방안인가. 그 길밖에는 다른 길이 없을까.
    과연 일찌감치 미국에 보내는 게 영어습득의 지름길일까.
    많은 경우, 유학 온 한국학생들은 친척집이나 부모의 친구 집 또는 전문적으로
    유학생들의 보호자 역할을 하는 사람 집에 살며 학교에 다닙니다.
    학교 시간 외에는 한국말만 사용하고 친구들도 거의 다 한국 친구들뿐입니다.
    영어 교재는 한국인 가정교사가 도와줍니다. 영어책을 한국말로 번역해가며 지도하는
    것입니다. 이 정도라면 한국 안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문화를 배운다는 혜택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미국 가정의 문화를 배울 기회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적어도 미국의 중산층의 문화의식을 배우려면 미국인, 그것도 미국의 중산층 이상의
    미국인 가정에서 같이 생활하지 않는 한, 바람직한 서구 문화를 접하기 쉽지 않습니다.
    미국은 아시다시피 다민족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다민족 다문화, 그래서 이런 미국을 'melting pot'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것저것이 다 뒤섞인 '꿀꿀이 죽'이라 할까요? 아마도 지금 세대 사람들은
    '꿀꿀이 죽'이 무엇인지조차 모를 것입니다. 6.25사변때 가난하던 시절의 음식이지요.
    'melting pot' 또는 'salae bowl'이라고 표현되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미국인 가정에 'home stay'(한국에서 들은 표현인데 한국식 영어라고 하겠습니다) 한다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그 미국인이 어떤 계통이고 어떤 수준인지 이 정도는 미리 알아봐야
    합니다. 무조건 미국인 가정이니까 아이를 보낸다는 것은 경솔한 결정입니다.

  • 한인타운은 미국이 아니다

    미국에서 10년 20년, 길게는 30년을 살았다는 한국인이라 해도
    미국식 문화의식에 접목된 사람은 극히 드문 것이 교포사회의 현실입니다.
    미국 땅에 아무리 오래 살고 있다해도 한국인들이 모여사는 한인타운에 살면서
    아프면 한국인 의사 찾아가고, 일요일이면 한국 교회에 나가고,
    식당은 불고기 갈비 순두부백반 설렁탕등 한국 식당에만 가서 먹고,
    법적인 문제가 생기면 한국인 변호사에게 묻고, 시장은 한국 수퍼에 가서 사고,
    한국 미장원, 한국 사우나에 단골로 드나들고...이렇게 한국사람들만의 세계속에서
    수십년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1950년대 60년대 일찔 유학 와서 공부하고 전문직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
    한국과 미국의 절충된 문화 속에 지내는 가정도 있긴 하지만
    한국 울타리 안에서의 생활 모습이 대부분 이민 1세들의 삶입니다.
    유학 온 한국 학생이 이런 한국 가정에 머문다면
    미국 문화는 고사하고 영어조차 제대로 배울 수 있을 지 걱정됩니다.

    어린 외로움이 커서도 병

    또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신적인 안정감입니다.
    아이들, 특히 초등학교와 중학교 아이들에게는 엄마의 존재가 절대적입니다.
    하루 지낸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엄마한테 다 털어 놓을 수 있는 시간,
    식사 시간이든 저녁 시간이든 언제든 이런 시간이 필요합니다.
    밥 잘 먹고, 학교 잘 다니고, 숙제 잘 하고, 건강하고,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정서적으로 불안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어딘가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아이, 누군가가 늘 자신을 해칠 것 같은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아이. 이런 정서불안 증세가 심해지면
    나중에는 심리학자의 치료를 받기에 이릅니다.
    교직에 있을 때 이런 학생들과 상담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사랑 결핍증'입니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
    이 외로움이 '나는 세상에 있으나마나 한 존재'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나중에는 자기비하 증세로 고착되어버리기도 합니다.
    '나는 참 귀한 존재' '나는 참 사랑받는 존재' '내가 원한다면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자긍심은 부모의 사랑, 부모와의 끊임없는 접촉과 관심에서 시작됩니다.
    물론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습니다.
    그래도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자주자주 칭찬과 격려와 사랑의 확인이 필요합니다.

    "엄마, 나 보고 싶지?"

    내가 잘 아는 집안의 외동딸이 막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엄마 아빠 품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하는 이 여대생은 아침 저녁으로
    집에 전화를 합니다.
    "엄마, 나 보고 싶지?"
    "그래"
    "엄마, 나 사랑하지?"
    "그럼"
    엄마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뻔히 알면서도 확인해 보고 싶은 것입니다.
    이 여학생은 대학생입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아이를 멀리 멀리
    "영어 때문에" 보낸다는 것은 그야말로 큰 모험입니다.

    유학 갈 수 있는 적정 나이는 몇살?

    한국 땅을 한번도 떠나보지 않은 한국 여성이 영어를, 그것도 표준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여고 후배를 만나 본 적이 있습니다. 인터넷 방송에서 영어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그녀는 미국에 한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녀는 한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한 후, 영어공부는 오직 영어 테이프를 들어가면서
    혼자 했다고 합니다. 학원 같은 곳에도 다녀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혼자 공부해서 영어를 미국에서 정식으로 공부한 사람처럼 잘 하는 여성,
    나는 내 딸 또래의 그 후배가 너무 대견했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영어를, 올바른 방법으로 공부하면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지 않아도
    얼마든지 기초를 닦을 수 있습니다.
    발음과 억양, 즉 소리 공부로 기초를 닦은 후, 영어 동화책을 아주 쉬운 것부터 시작하여
    읽기 공부를 하면 문법도 저절로 알게 되고 문장도 쓸 수 있게 됩니다.
    어떤 학자들은 흥미위주 책을 읽으면 독해력과 어휘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책은 무엇보다 재미있어야 합니다.
    그건 어른들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아무리 좋은 책이라 해도 재미 없으면 읽혀지지 않습니다.
    흥미를 느끼는 책을 자꾸 읽다보면 어휘력도 독해력도 좋아지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기초 작업을 단단하게 하면서 고등학교 때 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유학가도
    결코 늦지 않습니다.
    "나는 장래 무엇이 되고 싶다"는 자기 설계가 어렴풋하게라도 세워지고,
    "나는 반드시 쓸모있는 사람이 되겠다. 그러기 위해서 앞으로 5,6년은 공부에 전념하련다"는
    각오가 섰을 때, 그때가 유학의 적정기라고 생각합니다.
    그 결심과 결정을 학생 스스로 해야 합니다.
    엄마가 등을 떠밀다시피 해서 떠나는 유학은 애초부터 성공하기 힘든 유학입니다.

    방황하는 '홀로서기'

    최근, 미국에 와서 공부하고 있는 한국 유학생들의 문제점이
    이만저만 심각하지 않습니다.
    동부에서 서부까지 각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한국 학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말썽을 일으키고 있는 학생들 또한 많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부모님이 열심히 보내주는 학비와 생활비를 유흥비로 탕진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심한 경우, 부모님은 아이가 어느 대학에 재학 중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 아이는 그 대학에 다니지도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모 품에 데리고 있었다면 그런대로 중간 정도 실력은 유지하면서
    행복한 아이로 자랄 수 있었는데 일찍 유학을 보냈기 때문에
    이것도 저것도 아닌 공중에 붕 떠버린 아이가 되어버리는 건 아닌지,
    조기 유학의 장단점을 엄마들이 신중하게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김유미작가의 홈페이지 www.kimyum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