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속 조직에 따라 다양한 과목...해방신학, 미학까지

    당시 운동권의 ‘벽깨기’ 이후 정규 학습 커리큘럼은 대체로 경제사(역사적 유물론, 여름방학∼1학년 2학기 초) → 정치경제학(마르크스주의 경제학, 1학년 2학기) → 제3세계론(1학년 2학기 말 ∼ 겨울방학) → 혁명사(1학년 겨울방학 ∼ 2학년 1학기 초) → 철학(변증법적 유물론, 2학년 1학기∼ 여름방학) → 한국근현대사(여름방학 ∼ 2학년 2학기) → 혁명론(전략 전술론 및 모순론 등, 2학년 2학기 ∼ 겨울방학) 순으로 이뤄졌다. 위의 언급된 과목들은 운동권 필수과목들로서, 당시 운동권에 소속된 학생이라면 반드시(?) 이수해야만 했던 과목들이다. 이러한 과목들 이외에, 소속 조직 성격에 따라, 다양한 과목들이 추가됐다.

    예를 들면, 탈춤반이나 연극반 등과 같은 공연써클에서 활동하거나 인문대 혹은 미대와 같은 단과대에서 활동할 경우에는 게오르그 루카치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사회주의 미학(美學)이나 사회주의 리얼리즘 등과 같은 과목이 추가됐으며, 종교단체를 외피(外皮)로 활용할 경우에는 해방신학과 같은 과목을 학습해야만 했다. 물론 여성써클일 경우에는 ‘페미니즘’ 같은 내용이 삽입되었다.

    NL 주사파는 '주체사상'으로 일원화

    그럼 각각의 과목에서 배우는 기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제3세계론은 당시 유행하던 ‘종속이론’을 기반으로 ‘관료적 권위주의 체제 이론’, ‘식민지과잉국가론’,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 등과 같은 내용이 학습됐다. 이 과목의 교육 목표는 전 세계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이에 대한 해방 투쟁은 정당할 뿐만 아니라, 역사적 필연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프란츠 파농의 ‘대지에 저주받은 자들’과 같은 책도 함께 교육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억압자에 대한 피억압자의 폭력은 정당하다”고 정리하게 된다.

    그런데 종속이론은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 제국주의론에서 이탈한 이론”이라고 운동권 내부에서 비판받게 되면서 85년 이후 정규 커리큘럼에서 제외된다. 이와 같은 커리큘럼의 변화는 당시만 하더라도 소위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중심으로 온갖 좌파이론들이 혼재된 상태로 교육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즉 80년대 중반으로 가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커리큘럼의 주류를 이뤄 나간다. 그리고 86년 주체사상이 학원가의 주류로 등장하면서, 그 후 NL주사파의 커리큘럼은 주체사상으로 일원화되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하겠다.

    소련-중국 공산당원 교재를 그대로 번역 '혁명 학습'

    혁명사의 기본교재는 ‘볼세비키 당사’였다. 이 책은 소련공산당이 당원교육용으로 만든 교재인데, 당시 일본어판과 그 한국어 번역판이 운동권에 널리 퍼져 있었다. 이 교육을 마칠 때가 되면 스스로를 ‘볼세비키’라 자처하게 된다. ‘사회민주주의’, ‘개량주의’, ‘노동조합주의’, ‘경제주의’와 같은 개념들이 모두 ‘기회주의’와 동의어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러시아 혁명사 학습이 끝나면, ‘중국공산당사’를 기본으로 한 중국공산혁명사 학습이 진행됐다. 이렇게 러시아 혁명사와 중국혁명사는 필수였으며, 진도가 잘 나갈 경우에는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혁명사와 산디니스타의 니카라구아 혁명사 등이 추가로 교육되곤 했다.

    당사(黨史)와 같은 기본교재 이외에, 김학준 교수의 ‘러시아 혁명사’나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과 같은 책도 많이 읽혔다. 철학 학습에는 ‘세계철학사’란 이름으로 번역된 소련공산당의 ‘철학교정’이 기본교재로 사용됐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소위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 이외에도 온갖 좌파이론이 학습됐다. 철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소외론’을 중심으로 한 서구 뉴레프트 이론 등도 공부했다. 그러나 소련공산당 교재가 교과서였다는 것이 말해 주듯이 학습의 기본방향은 이미 결정된 상태였다.당시 대학가 서점에는 온갖 이름의 철학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그 책들은 대부분 ‘철학교정’의 해설판들이었다. 그리고 철학 학습을 시작하면서 이른바 ‘원전’(原典) 학습이 시작됐다. 여기서 ‘원전’이란 마르크스와 레닌의 글을 의미한다. 마르크스의 ‘도이치 이데올로기’와 ‘경철수고’ 등이 널리 읽혔다.

    한국 현대사는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으로 대체

    주체사상이 주류로 등장하기 이전까지 가장 혼란스러운, 즉 운동권 내부에서도 입장정리가 다소 불분명했던 과목이 한국근현대사였다. 패밀리마다, 심지어는 학습팀마다 다소 다른 결론을 내리곤 했다. 그 이유는 권위있는(?) 정통 교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과목의 경우는 소련공산당 이론이 중심을 이뤄 나갔다.
    그러나 한국사의 경우 그러한 정통교재가 없었던 것이다.(적어도 북한 이론이 도입되기 이전에는) 그런대로 교과서 역할을 했던 책이 수정주의 학파의 대표자인 브링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과 같은 책이었다. 그리고 일제시대의 독립운동을 조선공산당과 같은 좌파 중심으로 기술한 일본책들이 주교재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재미(在美) 학자인 서대숙 교수와 이정식 교수의 책들도 많이 사용됐다는 점이다. 서대숙 교수나 이정식 교수가 좌익이 아니었지만 그 책들에 서술된 일제시대의 조선공산당 이야기 등은 일제하 독립운동의 중심세력을 조선공산당과 같은 좌파로 해석할 여지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레닌-마르크스 '공산당선언' 끝나면 '여왕봉' 양성교육

    정규과정의 마지막 과목에 해당되는 ‘혁명론’에서는 이른바 ‘파운데이션’(Foundation)이라고 불린 스탈린의 ‘레닌주의의 기초’, 마오쩌둥의 ‘모순론’과 ‘실천론’, 그리고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등을 학습했다. 스스로를 공산혁명가로 자리매김하는 단계이기도 했다.

    이러한 기본교육이 끝나는 2학년 2학기 겨울방학이 되면 이른바 ‘여왕봉’ 교육이 시작된다. ‘여왕봉’ 교육은 위의 기본교육을 마친 조직원들 가운데, 우수하다고 판단된 엄선된 인자들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보통 장기간 합숙(15일 정도)을 통해 진행되는데, ▲운동사 ▲전략전술론 ▲조직론 ▲선전선동론 등을 학습하게 된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이른바 ‘팜플렛’이라고 불리는 지하문건을 학습한다. 또 이 단계에서 소위 ‘패밀리 역사’를 배우게 되는데, 이때에서나 자신이 속한 패밀리의 윤곽에 대해서 알게 된다. 심지어 자신이 속한 패밀리 이름을 이때 처음 알게 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여왕봉 교육’은 말 그대로 ‘여왕봉’을 만들어 내는 교육이다. 단순하게 의식화시키는 단계가 아니라, 의식화를 주도하고 더 나아가 혁명(?)을 주도할 수 있는 ‘간부’를 양성하는 단계인 것이다.

    엄청난 공부...신입생 2년간 필수 200권 참고서 500권 탐독한 셈

    학생운동 당시 많이 들어야만 했던 이야기 중의 하나가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라는 말이었다. “하라는”이라는 형용사가 붙었기 때문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 통념과 다르게 운동권이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지독하게 공부했다. 문제는 그 공부 내용이었던 것이다. ‘여왕봉’ 교육을 받은 자들 가운데 소위 ‘RP책’(Reproduction,재생산이란 용어의 약어로서 ‘운동권 의식화 교육 담당자’을 뜻한다) 으로 선발된 사람이었다면, 최소한 기본 및 부교재 200권, 그리고 그 밖에 참고도서 500여권 정도는 소화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문제는 극히 편향된 방향에서만 학습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대학에 갓 들어온 신입생이 향후 2년 동안 특정 이데올로기나 혹은 특정 종교 서적 700여권을 탐독했다면, 그것도 그러한 의식을 가진 사람끼리 모여 매일 토론하고 함께 활동하면서...

    대학논문 90%가 좌파이론...학습책은 출판계 베스트셀러로

    당시 운동권이 얼마나 대학가 이념을 장악했는가는 80년대 주요대학의 사회대나 인문대 석사 혹은 박사학위 논문 제목들만 가볍게 살펴보아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정확한 통계를 내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70% 이상(아마도 90% 가까이) 좌익이론을 소개하거나 연구한 것일 것이다. 이러한 운동권의 학습방향은 출판계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초기에는 운동 목적으로 출판사를 차려 운동권 서적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80년대 중반에 몇몇 주요 운동권 교재는 출판계에서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하면서 상업적 성공마저 거두어 나갔다.

    80년대 초반부터 일반화되기 시작한 복사기의 확산은 ‘판금도서’라는 것을 사실상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런 ‘학습열풍’은 80년대 후반 ‘주체사상’이 운동권의 주류가 되면서 점차 사라지게 된다. 모든 해답이 이미 준비돼 있다고 믿는 ‘주체사상’ 신봉자들에게는 학습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단지 ‘교리문답’의 암송이 필요할 따름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논의하겠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