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치의 문화

박정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09.06.23 11:36:12

키치의 시대
      
  가령 대학로나 홍대 앞 거리, 동화 속처럼 꾸민 가게 안에 촘촘히 진열된, 조잡스러운 액세서리나 간단한 생활용품들, 진짜 보석은 아니면서 플라스틱이나 수지(樹脂) 같은 것으로 보석을 흉내 낸 가짜 물건들, 예뻐서 사갖고 집에 오면 언제고 버리기 십상인, 그러나 저렴한 가격에 한 순간의 환상을 만족시켜주는 물건들, 이것이 바로 키치(Kitsch)다.
  서울 근교로 나가면 드문드문 눈에 띄는 중세 성(城)들, 신데렐라 공주라도 나올 것 같은 동화적 분위기이지만 자세히 보면 돌도 아니고 대리석도 아닌 콩크리트에 핑크 빛 색칠을 한 조잡한 가짜 성(城)들, 소위 러브호텔 또는 웨딩홀. 이 건물들이 바로 키치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좋아하는 디즈니랜드의 온갖 구조물들, 비잔틴 양식, 고딕 양식, 온갖 서구의 역사적 양식들은 다 갖추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합판에 칠해 놓은 가짜 건물들, 이것이 바로 키치다.
  고급 거실의 한 구석에 놓여있는 낡은 유성기나 서재 한 모퉁이를 장식하는 낡은 타자기, 전통 찻집이나 혹은 한식집의 미니아추어 물레방아나 온갖 잡다한 민속 물건들, 이것들도 키치다.
  키치란 가짜인 것, 저급한 것, 진품을 베낀 복제품, 몰취미하고 경박한 것, 대중의 취미에 맞춘 촌스럽고 번지르르한 것, 쓸데 없고 가치 없는 것, 시시하고 보잘것 없는 것, 모든 실용과 상관 없는 장식성이다.


▲ 명륜동 공사장 가림막. 설치미술가 최정화의 ‘천 개의 문’. 아현동 재개발 공사장에서 모은 711개의 형형색색의 문짝을 촘촘하게 가득 붙였다.ⓒ 뉴데일리

 키치라는 말  

  독일어인 키치는 원래 ‘낡은 가구를 주워모아 새로운 가구를 만든다’는 의미였다. 여기서 파생된 verkischen이라는 동사는 ‘은밀히 불량품과 폐품을 속여 판다’, ‘다른 것으로 속여 물건을 강매한다’라는 뜻이었다. 그러므로 키치라는 말 속에는 원래 ‘윤리적으로 옳지 못함’ 또는 ‘진품이 아님’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이 단어가 ‘조잡한 물건’이라는 일반적인 의미를 갖게 된 것은 1860년 무렵 독일 남부에서였다.
  처음에는 아프리카 토산품을 본뜬 전등갓이나 토인의 가면, 토속적인 액세서리 등 모든 조잡한 싸구려 장식품들을 뜻했다. 그러다가 차츰 실물보다 크거나 작은 복제품, 소재를 회반죽이나 플라스틱으로 모조한 것, 형태를 일부러 우스꽝스럽게 하거나 아니면 어울리지 않게 조합한 것, 값비싼 진품을 모사한 복제품이나 모조품 등을 의미하게 되었다.   


▲ 천사 도자기 인형. 흔히 볼 수 있는 키치. ⓒ 뉴데일리

키치는 시민사회의 현상 

  키치는 19세기 시민사회(부르주아 사회)의 발달과 함께 생겨났다. 전통적 귀족 사회에서는 키치란 것이 없었다. 귀족의 액세서리는 모두 진품의 값비싼 귀금속과 보석이고, 실내 장식품은 대리석으로 깎은 조각이거나 숙련된 장인들이 수십년간 짠 태피스트리였다. 그 시대에 모조품이나 가짜는 있을 수도 없었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그 때 아직 하층 계급이었던 부르주아계급(시민계급)은 고가의 장식품을 구입할 재력도 없었지만 그럴 욕구도 없었다. 19세기, 산업혁명과 함께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완전히 상층 계급이 된 부르주아는 귀족의 생활 방식을 따르고 싶은 강한 욕망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아직 일부 상층 부르주아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소시민들(쁘티 부르주아)은 역시 고가의 보석이나 실내 장식품을 살 여력이 없었다. 여기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모조품이다.  
  이렇듯 귀족에 대한 시민계급의 선망에서 비롯된 키치 현상은 현대의 대중사회에서는 부유한 계층에 대한 일반 대중의 선망을 대변한다. 수백만원 짜리 명품 가방을 살 재력이 없는 중간층의 젊은 여성은 짝퉁 가방이라도 들어야 하는 것이다. 키치는 한 사회 안에서의 계층의 문제만이 아니라 선진국과 후진국의 관계이기도 하다. <키치의 심리학>을 쓴 아브라함 몰르(Abraham Moles, 1920-1992)는 서구인들이 멕시코의 광활한 벌판과 중앙아시아 사막 유목민에게까지 자신들의 커피스푼과 각설탕 집게를 강요하기 시작했을 때 키치의 역사는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현대의 사물은 효용가치가 아니라 위세(威勢)가치가 중요 

전통 사회에서 사물은 기본적으로 사용가치에 의해 규정되었었다. 다시 말해 용도와 효용성에 의해 가치가 정해졌었다. 그것이 바로 사물의 본래 의미를 나타내는 기능이며 거기에 새로운 기능들이 덧붙여진다 해도 그것들은 모두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사물은 단순히 사용가치만을 갖지 않는다. 효용성의 기능 외에 새로운 의미의 다양한 뉘앙스를 띠게 되고, 이 새로운 의미가 효용성보다 더 중요하게 된다.
  사물에 덧붙여진 새로운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몰르는 각설탕 집게를 예로 든다. 일찍이 각설탕 집게는 손님들을 초대해 차를 마실 때 더러운 손으로 각설탕을 집지 않으려고 사용했던 것인데, 지금은 일정한 계층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거나 교양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었다는 것이다. 몰르가 <키치의 심리학>을 쓴 것이 1977년, 글쎄 네오-키치의 시대인 요즘, 더구나 블랙 커피가 오히려 상류층의 상징인 오늘날 각설탕 집게가 위세 상품의 예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몰르는 또 퀸 메리호의 사이렌 소리도 키치의 예로 든다. 원래 사이렌 소리는 안개 낀 대양을 횡단할 때 건너편의 다른 배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울려퍼졌던 것이지만 지금은 볼륨이 낮춰진 채 파티 장에서 이국적인 동경심을 자아내는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 정원을 장식하는 난장이 인형. ⓒ 뉴데일리

 키치의 본질은 편안함 

  대중이 느끼는 편안함, 그것이 바로 키치의 본질이다. 이름없는 보통 사람들이 주변에서 발견하는 즐거움, 그것이 키치 현상이다. 보통 사람들은 박물관의 수월관음도 앞에서보다는 어느 사찰 입구 기념품 가게에  진열된 조잡한 모조 탱화들을 보고 더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므로 키치는 보통 사람들의 취미에 맞게 만들어진 모든 것이다. 기차역 대합실 전등불빛 아래 화분에 심겨진 열대 나무, 홀 벽에 걸린 번쩍이는 니켈 장식 테두리의 거울, 통로벽을 마감한 짙고 옅은 요란한 갈색의 화장목, 이런 것들이 모두 평균적인 감수성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 평균적인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키치의 물건들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키치 예술  

  키치라는 단어가 미학에서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아도르노(Theodor Adorno, 1903-1969), 브로흐(Hermann Broch, 1886-1951),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1909-1994)등의 예술 철학자들에 의해서였다. 특히 그린버그는 당시의 아방가르드 사조와 키치를 대비시켜 본격적인 키치의 논의를 끌어냈다.  
  그린버그에 의하면 한 사회에서 그 사회 특유의 미적 형식들이 더 이상 정당화할 수 없을때 예술가와 작가들은 과거의 종교, 권위, 전통, 양식 등의 관념들을 깨트리게 된다. 이것이 아방가르드 문화이다. 피카소, 브라크, 몬드리안, 미로, 칸딘스키, 브랑쿠시, 클레, 마티스 그리고 세잔느까지를 그는 아방가르드 화가로 꼽는다. 그들은 그림의 내용보다는 매체에 더 관심을 가졌던 화가들이었기 때문이다.
  랭보, 말라르메, 발레리, 엘뤼아르, 파운드, 하트 크레인, 스티븐 그리고 릴케나 예이츠 같은 시인들도, 시의 내용 보다는 시를 짓는 노력과 시적 변환의 순간에 더 가치를 두었다는 점에서 역시 아방가르드로 분류된다.
  지드의 야심적인 소설 <사전(私錢)꾼들>은 소설 쓰기에 관한 소설이며, 조이스의 <율리시즈>와 <피네간의 경야(經夜>((Finnegan's Wake)는 표현되는 내용보다 표현 그 자체를 더 중요시한 것이어서 또한 당연히 아방가르드 문학이다.
 


▲ 재프 쿤스: 풍선 꽃 ⓒ 뉴데일리

이들 화가, 시인, 소설가들은 모두 경험의 내용 보다는 예술적 표현에 더 관심이 있었다. 예술의 형식, 매체, 표현방식을 더 중시했던 그들의 예술은 결국 비재현적이거나 추상적인 작품으로 구체화되었다.  
 이와같은 비재현적 혹은 추상적인 예술가들은 자신의 미적인 정당성을 얻기 위해 과거의 미술과 문학의 규율들로 눈길을 돌렸다. 그리하여 이러한 과정이나 규율들 자체가 그들의 미술과 문학의 주제가 되었다. 예술이란 모방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미학 이론을 따라 굳이 인정한다면 아방가르드 예술은 모방(imitating)의 모방인 셈이다. 아방가르드는 예술의 과정을 모방하고 키치는 예술의 결과를 모방한다는 그린버그의 이야기가 바로 이런 의미이다. 지드의 <사전꾼들>은 소설 쓰기에 관한 소설이므로 소설 쓰는 과정을 모방한 것이고, 이발소 벽에 걸린 복제 그림은 밀레의 그림이라는 결과물을 그대로 복제 모방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도로 전문화된 아방가르드는 이전에 미술과 문학을 즐기고 감상할 수 있던 많은 사람들을 소외시켰다. 미술과 문학의 고도의 기교적 비밀을 알려고 하지않고 또 알 수도 없었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예술과 거리가 멀어졌다. 항상 대중은 발전하는 과정중의 문화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 재프 쿤스: 고층 건물 옥상에 세운 풍선 구조물. ⓒ 뉴데일리

키치는 대용(代用) 문화

  아방가르드(avant-garde)는 프랑스어로 전투중 최전선을 담당하는 부대인 전위(前衛)를 의미한다. 전위가 있으면 후위(後衛)(rear-guard)(arrière-garde)도 있게 마련이다. 서구 산업사회에서 아방가르드와 동시에 그 후위로 나타난 새로운 문화현상이 키치라고 그린버그는  말한다.
  키치는 도시화 및 문자해독력의 보급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산업혁명 이전까지는 민중문화(folk culture)와 구별되는 정식문화(formal culture)가 있었고, 여가와 안락을 구가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정식문화를 소비하는 계층이었다. 그들은 독서의 능력이 있어서 소위 고급문화를 소비할 수 있는 교양있는 계층이었다. 그러나 문자해독이 일반화되자 읽고 쓸줄 아는 능력은 자동차 운전이나 마찬가지로 거의 하찮은 재주가 되었다. 그것은 더 이상 개인의 문화적 성향을 구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능력은 이제 세련된 취미를 가진 자의 독점적인 부속물이 아니었다.
  도시로 이주해서 프롤레타리아와 소(小)부르주아(쁘티 부르주아)로 정착한 농부들은 실용적인 목적에서 읽고 쓰는 것을 배웠으나 도시의 전통 문화를 즐기는 데 필요한 여가와 안락은 아직 얻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새로운 도시 대중은 전원을 배경으로 한 민중 문화에 흥미를 잃었다. 좀 더 도회적이고 세련된 문화를 추구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소비하기에 적당한 문화를 제공하도록 사회에 압력을 가했다. 새로운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새로운 상품이 고안된다는 것은 시장의 당연한 논리이다. 진정한 문화의 가치는 모르면서 그러나 막연히 어떤 고급 문화의 흔적을 갈망하는 사람들, 그런 대중들을 위해 생겨난 대용(代用) 문화(ersatz culture)가 바로 키치다.
  키치는 아카데미화(化)한 진정한 문화에서 약간 급수가 떨어진 환영(幻影)(시뮬라크르)의 부스러기들을 원료로 사용한다. 밀레의 ‘만종(晩鐘)’이 이발소 벽에 걸리는 과정이 바로 그것이다. 키치가 제공하는 감흥은 대리적인 경험이고 날조된 감각이다. ‘이발소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키치의 전제 조건, 즉 그것이 없다면 키치가 불가능할 조건중의 하나는 완전히 성숙한 문화적 전통이 가까이에 있어서 그것을 쉽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문화적 전통이 발견하고, 습득하고, 완성시킨 자의식을 키치는 슬쩍 빌려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용한다.
  키치는 이렇게 경험이 축적되어 있는 저장소에서 피를 빨아먹는다. 따라서 오늘의 대중적인 예술과 문학은 한 때 어제의 대담하고 난해한 예술과 문학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키치는 아카데믹하며 거꾸로 모든 아카데믹한 것은 결국 키치로 떨어질 것이다. 
 


▲ 스탠리 돈우드(Stanley Donwood): 온갖 표지판을 모아 벽에 붙인 설치작품. ⓒ 뉴데일리


키치는 보편 문화

  키치는 애초에 도시에서 발생했지만 지금은 시골까지 흘러가 민중 문화를 전멸시킨다. 시골의 논 한 가운데 들어선 아파트는 키치의 전형이다. 키치는 또 지리적 경계나 민족문화적 경계를 가리지도 않는다. 서구 산업주의가 낳은 또 하나의 대량 생산물인 키치는 세계를 정복하여 모든 식민지에서 차례차례 토착 문화를 밀어내고 손상시킨다. 그 결과 이제 키치는 하나의 보편 문화, 즉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최초의 세계 문화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키치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경계마저 허물면서 현대 사회 전체를 키치의 사회로 만들고 있다. 예술이 인간의 영혼을 고양시킨다고 아무리 말해 보았자 보통 사람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진정한 예술과 친숙해 지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대중이 문화의 향수자로 등장한 현대 사회에서 팝예술이 주류 예술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키치는 1900년 이후 미학적 영역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지 못했고, 팝아트의 시대가 도래하자 고작 하나의 오락예술로 간주되었던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은 키치적 예술이 대세이다. 


▲ 재프 쿤스(Jeff Koons): 풍선을 비틀어 만든 미키마우스 ⓒ 뉴데일리

 


▲ 재프 쿤스(Jeff Koons): 풍선 동물 인형과 여자 모델을 연출시킨 행위 예술.ⓒ 뉴데일리

   키치의 영화(榮華)와 비참

  그린버그가 생각하는 키치란 원색 화보가 실린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미술 문학 잡지, 이 런 잡지들의 표지나 삽화, 광고, 슬릭(slick)픽션(고급 광택지로 만든 대중잡지), 펄프픽션(싸구려 소설), 만화, 틴 팬 앨리 음악, 탭 댄스, 헐리우드 영화 등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대중문화 전체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개념이다.
  그는 키치가 아방가르드에 비해 저급한 문화라는 생각을 확고하게 갖고 있었으며 전혀 거기에 미적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는 팝아트도 예술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팝아트의 상승과 함께 역설적으로 그린버그의 영향력도 퇴조했다. 60년대에 나온 팝아트는 그 열기가 식을 줄 모르고 21세기에 접어든 지금 더욱 더 강력하게 미적 감수성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팝아트는, 혹은 키치는 미술만이 아니라 광고나 상품 디자인에 깊숙히 들어와 우리의 시각적 환경을 형성하고 우리의 사고방식을 지배한다. 같은 얼굴을 여러 색깔로 채색하여 바둑판 무늬로 만든 광고 이미지는 앤디 워홀이 없었으면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고, 색색의 헌 문짝 711개를 바둑판처럼 붙여 공사장 가림개로 만든 작품(?)은 각종 폐품들을 미술의 소재로 사용했던 60년대 팝아티스트가 없었다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유명한 화가들이 제작한 공사장 가림막은 설치 미술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상업적 공사로 보아야 할지 경계도 애매하다. 모든 영역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포스트모던적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키치는 당당히 본격 예술의 한 부분이 되었고, 주류의 예술이 되었다. 미국의 대표적 키치 예술가인 제프 쿤스(Jeff Koons)는 플라스틱 인형들로 장면을 연출하거나 풍선을 비틀어 동물 모양을 만들거나 색색의 꽃으로 뒤덮인 거대한 강아지, 또는 분홍색 합성수지 돼지를  만들기도 한다.
  예전 같으면 싸구려 기념품 가게에서나 볼 수 있었던 천박한 모조품들이 지금 예술이라는 당당한 이름으로 비싼 값에 팔리고 고급의 미술 잡지를 장식한다. 그러고 보면 어린이 공원에서 풍선 인형을 만드는 아저씨도 훌륭한 팝아티스트가 되는 그러한 세상이 되었다.
  누구나 기 죽지 않고 자기 좋은 것을 즐길 수 있는 세상은 편안하고 마음 놓이는 세상이다. 키치의 영화(榮華)이다. 그러나 주민의 생활의 질을 높인답시고 옛날의 골목길을 밀어버리고 그 위에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 세상, 자연의 경치를 훼손하면서 논 바닥에 고층 아파트를 높이 세우는 세상은 참으로 가슴 아픈 세상이다. 키치의 비참이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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