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라린가 쓰라린가 영천인가

    경북 영천지역이 영천아리랑을 다시 되찾게 된 사연이 있다. 2002년 남북한 방문때 북측에서 남측환영음악으로 영천아리랑이 불려졌다. 이를 계기로 영천아리랑을 다시 살려야한다는 경북도와 영천의 인사들이 힘을 모았다. 이후 영천에서는 이 고장 출신의 명창 정은하의 노력으로 2005년부터 매년 ‘영천아리랑축제’가 정착 되어가고있다.
    원래의 영천아리랑은 일제때 영천을 등지고 만주로 이주했던 동포들이 중국에 흩어져 살다가 다시 북한으로 유입되면서 생겨났다. 고향을 떠난 이유는 총독부를 피해 독립운동파도 있고, 잘 살아보려는 이농파도 있었다. 고향을 떠나 중국땅에서 살던 1세대가 영천아리랑을 부르던것을 후손이 대를 이어가며 부른 덕에 계속 이어져 왔다. 이런 과정에서 영천아리랑은 중국식 노래말과 북한식 노랫말이 섞여 들어 두가지 노래가 생겼다.

    중국식 노래와 북한식 노래

    다음은 중국식 노래와 북한식을 비교해본다.
    <중국식 노래>
    아라린가 지랄인가 영천인가 /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오
    아주까리 동백아 열리지 마라 / 산골집 큰 애기 발덧이 나누나
    앵구나 오뒤는 단맛에 먹구요 / 딸구나 살구는 신맛에 먹는다
    아리랑 고개는 얼마나 먼지 / 한번 간 님은 왜 못 오느냐
    요놈의 총각아 치마폭 놔라 / 외 벌로 당친 치마폭 콩 튀듯 하누나

    <북한식 노래>
    아라린가 쓰라린가 영천인가 /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오
    아주까리 동배야 더 많이 열려라 / 산골집 큰 애기 신 바람 난다
    멀구야 다래야 더 많이 열려라 / 산골집 큰 애기 신 바람 난다
    울 넘어 담 넘어 님 숨겨두고 / 호박잎 난들난들 날 속였소

     영천이 과거 경상북도 지역의 교통 문화 상업등의 요지였던 점을 보면 상당히 많이 불렸던것은 분명하다.
     현재 영천에서 불려지고 있는 노래는 북한식을 표준어로 고친 것이다. 이 노래는 “영남아리랑보존회”에서 명창인 정은하회장에 의해 씨디로 제작, 보급 되고있다. 일반노래와 장구반주로 부르는 두가지가 있지만, 가사는 같다. 최근 영천에는 아리랑노래와 더불어 세미나를 비롯, 자료발굴에 힘을 쏟는다. 2007년엔 영천아리랑을 기념해 시안미술관에서 “2007영천아리랑 회화제”와 “김정 아리랑특별전”을 동시에 펼치기도 해서 많은 호응을 얻기도했다. 이젠 과거 영천아리랑의 명성을 되찾으려 애를 쓰는듯 하다.
    그러던 중 최근에는 1930년대에 불려졌던 영천아리랑을 지금까지 기억하며 간직하고 있는 이곳 영천 지역의 한 노인을 찾아내 화제가 되고있다.
    앞으로 이 소중한 노인의 ‘영천아리랑’ 노랫가락이 큰 변수로 등장할 수 있다.

  • ▲ 영천아리랑1 ⓒ 뉴데일리
    ▲ 영천아리랑1 ⓒ 뉴데일리
     
  • ▲ 영천아리랑2 ⓒ 뉴데일리
    ▲ 영천아리랑2 ⓒ 뉴데일리
     
  • ▲ 영천아리랑3 ⓒ 뉴데일리
    ▲ 영천아리랑3 ⓒ 뉴데일리

     

    < 영천의 오래된 소나무들. 영천은 문화재가 풍부한 곳이기도 함 >

  • ▲ 영천아리랑3 ⓒ 뉴데일리

     

  • ▲ 영천아리랑3 ⓒ 뉴데일리
     
  • ▲ 영천아리랑3 ⓒ 뉴데일리
     
  • ▲ 영천아리랑3 ⓒ 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