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의 정치학

박정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09.06.23 11:36:12

전염병, 수녀, 수녀원이라는 단어들의 조합은 얼핏 중세(中世)를 연상시킨다. 고딕 소설을 읽는듯한 인문학적 분위기마저 감돈다. 한국 수녀들이 멕시코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알았고, 감염된 수녀의 차분한 태도와 해당 수녀원의 신속하고 조직적인 대응도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한국이 선진국이다,라는 자부심이 들었고, 김수환추기경 선종 때의 다소 과장된 추모 분위기에서 느꼈던 천주교에 대한 불편함도 잔잔한 존경심으로 바뀌었다. 이것이 신종 인플루엔자에 관련된 중세적 분위기의 밝은 면이라면 일부 국가들의 지나친 대응은 음침하고 어두운 중세적 분위기이다. 

미국의 한 국내선 비행기는 승객 중 한 명이 콧물을 흘리자 행선지로 가지 않고 곧장 인근의 공항에 불시착하여 독감 추정 환자를 내리게 했다.  홍콩의 메트로파크 호텔은 신종 플루에 감염된 멕시코인이 한 명 투숙한 사실이 확인되자 일주일 간 투숙객 283명, 직원 등 344명을 격리시키고 출입을 봉쇄했다. 호텔 건물의 1층 전체를 흰 천으로 감싸고 호텔 앞 거리에는 임시 바리케이드를 설치했으며, 마스크를 쓴 경찰관 30여명이 외부인의 접근을 막았다. 먹을 것도 제대로 없고 청소나 세탁 서비스도 끊긴 호텔 안에서 투숙객들은 소리를  지르며 울화통을 터뜨리거나 울거나 했다고 한다. 멕시코 남자와 같은 비행기를 탄 승객들 35명도 역시 일주일간 강제 격리되었다. 감염자 2명과 같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379명의 자유를 1주일간 빼앗은 중국 정부의 과도한 대응에서 질병과 권력의 역사를 떠올리게 된다.

역사 속에서 질병, 특히 전염병은 언제나 권력의 현상이었다. 권력이란 합리성이나 상식을 넘어선 힘의 행사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나병과 페스트는 권력 기술(技術)의 중요한 모델을 제공한 것으로 유명하다.


브뢰겔(breugel) 갈보리 언덕을 오르는 예수(procession to calvary)ⓒ 뉴데일리 ">
브뢰겔(breugel) 갈보리 언덕을 오르는 예수(procession to calvary)ⓒ 뉴데일리


브뢰겔(breugel) 죽음의 승리(triumph of death) ⓒ 뉴데일리 ">
브뢰겔(breugel) 죽음의 승리(triumph of death) ⓒ 뉴데일리

나병의 역사적 성격  

중세말 혹은 중세 내내 나환자들은 사회에서 가혹하게 추방되었다. 환자들은 성벽 밖이나 공동체의 경계 밖으로 쫓겨났다. 쫓겨난 사람들은 법률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자격이 박탈되었다. 살아 있어도 죽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환자의 추방 의식은 반드시 일종의 장례식과 함께 병행되었다. 

나환자는 신의 노여움과 선의를 동시에 드러내는 존재로 여겨졌다. 1478년경 비엔나 교구의 한 전례서(典禮書)에는 “나의 친구여, 그대가 이 질병에 걸림은 주님의 뜻이니, 그대가 이 세상에서 저지른 죄악으로 인해 주님이 그대를 징벌하시려할 때, 주님은 그대에게 큰 은총을 베푸시니라”고 되어 있다. 

환자가 사제와 사제보들에 의해 교회 밖으로 뒷걸음질치며 끌려 나가는 순간에도 이것이 신을 위한 증언이라는 확신을 그에게 심어주려 했다. “그대가 교회의 건강한 무리에서 떨어져나간다 해도 신의 은총에서 떨어져나가는 것은 아니노라”는 문구가 그것이다. 

브뢰겔(1525-1569)의 그림에도 갈보리의 언덕길 저 멀리에서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나환자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 나환자와 장애인 ⓒ 뉴데일리

 
▲ 예수와 나환자들 ⓒ 뉴데일리

 
▲ 로마의 슈나벨의사 ⓒ 뉴데일리


중세 초기부터 십자군 전쟁 말기까지 유럽 전역에서 저주스런 나환자 격리공간은 무수히 늘어났다. 루이 8세가 프랑스를 대상으로 나환자 격리시설에 관한 규칙을 정한 1266년경에는 2천여 개소가 집계되었다. 13세기 영국의 사료 편찬관인 매튜 패리스에 의하면 기독교 세계 전체에 이런 장소는 1만 9000개소가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14세기에 벌써 빈 곳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프랑스에서는 17세기초에 세 곳만이 언급된다. 1635년에 랭스 주민들은 자신들의 도시를 나병의 재앙에서 구원해준 것에 대해 하느님에게 감사드리기 위해 장엄한 행진을 한다.

나병의 소멸은 아마 오랫동안 시행된 모호한 의료행위의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격리로 인한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또는 십자군 전쟁이 끝나 감염의 근원지인 근동지방과 교류가 단절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환자라는 인물과 결합된 이미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페스트의 역사적 성격  

나병이 사라지고 나환자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어도 누군가를 추방하고 배제하고자 하는 의식은 계속해서 남아있게 된다. 17세기 중반에 거지 부랑자 게으름뱅이, 방탕아 등에 대한 대대적인 추방을 시작할 때 프랑스의 왕실 행정부가 채택한 것이 바로 이 나환자 모델이었다. 푸코의 권력론의 기반이 된 <광기의 역사>는 바로 이 시점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나환자 추방의 모델, 즉 공동체를 정화하기 위해 사람들을 쫓아내는 모델은 대략 17세기말부터 18세기초까지 완전히 사라진다. 새롭게 채택된 방식은 사회적 타자를 추방하고 격리하는 대신 통합하고 감시하는 방식이다. 소위 페스트의 모델로 불리는 이 모델은 페스트가 창궐하던 도시의 행정 체계에 그 기원이 있다. 

인쇄물로 남은 기록에 의하면 중세말에서 18세기초까지 페스트가 발병한 지역은 우선 도시가 바둑판처럼 나뉘어 커다란 몇 개의 구(區)(district)로 분할되었다. 구는 동(洞)(quartier)으로, 동은 다시 로(路)(rue)로 나뉘었다. 로에는 감독관이, 구에는 담당관이, 도시 전체에는 행정관이 있었다. 보초들이 항상 골목의 초입에서 망을 보았고, 구와 로의 감독관들은 하루에 두 번 순시를 했으므로 그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은 빠짐 없이 상부에 보고되었다.

전염병의 격리 기간이 시작되면 일단 그 도시에 있는 모든 시민들의 이름이 신고되어 장부 속에 기입된다. 감독관들은 매일 모든 집 앞을 지나쳐야 하고 각각의 집 앞에서 잠시 머물러 사람들의 이름을 호명한다. 각 개인은 자신이 모습을 보여야 할 창문을 할당 받았고, 감독관이 이름을 부르면 그 창문 앞에 나서야 했다. 만일 그가 창문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그는 침대 안에 있는 것이고, 그가 침대 안에 있다는 것은 그가 아프다는 것이며, 그가 아프다는 것은 그가 위험한 인물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따라서 당국이 개입해야만 한다. 아픈 사람과 아프지 않은 사람으로 개인들의 분류가 이루어지는 것은 바로 이 시점에서이다. 하루에 두 번 감독관이 수행하는 건강한 사람과 아픈 사람, 그리고 죽은 사람에 대한 이같은 사열과 조사는 모두 장부에 기입되었다. 이렇게 관찰된 것은 모두 지속적으로 기록되고, 다시 커다란 장부 속에 재기입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지역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 이루어졌고, 분석된 지역에 대한 지속적인 조직이 가능했다. 

로의 감독관에서 구의 담당관을 거쳐 도시의 행정관에 이르기까지 거기에는 일종의 거대한 권력 피라미드가 형성되었다. 이 피라미드 안에는 그 어떤 침입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위계적 피라미드일뿐만 아니라 그 수행에 있어서 지속적인 권력이었다. 
 


▲ 페스트환자들을 방문한 나폴레옹 ⓒ 뉴데일리


페스트의 정치적 의미  

이것은 나환자 추방에서 볼 수 있는 집단 격리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여기서는 더 이상 환자들과 거리를 두거나, 접촉을 끊거나, 주변부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한데 포용하여 아주 꼼꼼하게 근접 관찰을 하는 것이다. 인구에 대한 지속적인 조사가 중요해졌다. 이 조사를 통해 권력은 한 개인이 규칙을 잘 지키는지, 규정된 보건 수칙을 엄수하는지를 알기 위해 끊임없이 감시했고 평가했다. 

개인에 대한 엄격한 감시, 이것이 벌써 정치권력을 연상시키지 않는가? 페스트의 시기는 정치권력에 의한 주민의 분할 지배가 철저하게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정치적 측면에서 페스트의 상황은 모든 권력자가 꿈꾸는 완벽한 통치의 순간이다. 아무런 장애물 없이 대상을 완전히 투명하게 감시할 수 있고, 주민에 대한 철저한 분할 지배를 통해 위험한 소통이나 무질서한 뒤섞임을 막을 수 있으며, 사람들 사이의 접촉을 완벽하게 금지함으로써 권력의 행사가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많은 문학과 미술에 영감을 주었던 역사적 질병인 페스트는 정치학적인 면에서도 이렇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것은 권력의 미세한 분기들이 끊임없이 개인과 맥이 닿아 그들의 시간 공간 환경 그리고 육체에까지 침투해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정치적 통제의 모델로서 채택된 페스트 관리의 패턴이야말로 18세기 또는 입헌 군주 시대의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푸코는 말한다. 감시에 기초한 근대 규율권력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생체-권력(bio-power)    

현대 사회는 규율권력과 생체권력이 중첩되어 나타나는 사회이다. 규율권력, 앎-권력, 미세권력 등 권력의 역사적 형태들을 흥미롭게 분석한 푸코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대한 국가의 전면적인 개입을 생체권력이라고 명명했다.

고전적인 주권 이론에서는 사람들의 삶과 죽음의 권리가 군주에게 있었다.  삶과 죽음은 결코 자연 현상이 아니라 정치권력의 대상이었다. 신민은 권력에 대해 완전히 살았다고도 죽었다고도 말할 수 없다. 삶과 죽음의 관점에서 그들은 중성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살 권리와 죽을 권리가 전적으로 군주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신민의 삶과 죽음은 군주의 의지에 의해 효력을 발생하는 권리일 뿐이다. 

삶에 대한 군주권의 효력은 군주가 한 사람을 죽일 수 있을 때 발생한다. 그러니까 삶과 죽음의 권리란 결국 죽일 수 있는 권리이다. 군주가 삶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오로지 그가 죽일 수 있는 순간에 한해서이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칼의 권리이다. 

군주의 권력이 죽음에 대한 권리라면, 18세기 후반기에 새로운 등장한 권력기술은 죽음보다는 삶에 더 관심을 표명한다. 이제 권력이 장악하는 것은 개개의 인체가 아니라 종(種)으로서의 인간이다. 생물학의 국유화라고 할까? 이것이 바로 인종에 대한 생체정치학(bio-politique)이다.

모든 정치 경제적 문제들과 함께 출산율, 사망률, 평균수명 등이 18세기 후반기의 앎의 첫번째 대상이었으며 생체정치학의 첫번째 목표였다. 이 현상들을 계량화하여 처음으로 인구통계학을 마련한 것이 바로 이때였다. 산아제한 현상에 대한 조사, 출산현상의 개입을 통한 인구정책의 시발이 모두 이때 이루어졌다. 공중보건이 확립되었고, 보험, 저축, 사회보장 제도도 마련되었다. 

생체정치학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생식력만이 아니라 질병도 그에 못지않은 중요한 요소였다. 사람들이 질병에 걸리면 치료비 부담이나 생산력 부족 때문에 노동력이 감소되고, 노동 시간이 단축되며 활력이 떨어져 경제적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요컨대 질병은 더 이상 개인적인 건강의 문제가 아니라 인구현상인 것이다. 따라서 사망률을 낮추어 수명을 연장시키는 한편 출산을 권장해야 한다. 인구는 과학적인 문제이면서 정치적인 문제이고 동시에 권력의 문제였다.
  


▲ 종을 든 나환자 ⓒ 뉴데일리


신종 플루에서 표출된 인종주의

푸코의 이론을 증명해주기라도 하듯 신종 플루 사태는 생체권력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타 민족을 불공정하게 대하는 인종주의가 그러하다. 과학의 이름으로 타 민족을 경멸하는 인종주의야 말로 생체권력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멕시코에 체류중인 자국민을 데려오기 위해 전세기를 급파했고, 국내에 들어온 멕시코인들은 일단 다 격리시켰다. 멕시코에서 출발하지 않았는데도 단지 멕시코 여권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격리된 경우도 있었다. 한 멕시코 부부는 새벽 4시에 호텔에서 잠자다 어린 세 자녀와 함께 강제로 병원에 호송되기도 했다. 멕시코 정부는 중국이 감염 증세를 보이지 않는 사람까지 강제 격리하자 인종차별이라고 강하게 비난하면서 중국정부에 의해 격리된 멕시코인 70여명을 본국으로 데려가기 위해 역시 전세기를 급파했다.

생체권력과 인종주의  

인종주의가 국가의 메커니즘 안에 들어온 것은 생체권력이 부상한 시기와 일치한다. 근대국가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인종주의였다. 내가 살기 위해 타인을 죽여야 하는 것은 전쟁의 기본 개념이다. 그런데 나의 삶과 타인의 죽음 사이에 군사적인 대치관계가 아니라 생물학적 관계를 수립한 것이 바로 인종주의이다. "열등한 인종이 좀더 사라지고 비정상의 개인들이 더 많이 제거된다면 나는 좀더 강하고 활기차게 살아남아 많은 후손을 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라는 논리가 거기에 전제되어 있다.

19세기에 정치 담론에 재빨리 흡수된 생물학 이론은 종(種)들 사이의 등급, 생존경쟁, 부적응자의 도태 등의 개념이었다. 정치적 담론을 생물학적 용어로 옮겨놓았다거나, 과학의 외피 밑에 정치적 담론을 숨겨 놓았다는 비판이 나온것은 그 이론들이 식민지 경영의 중요한 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윈 자신이 의도한 것은 아니라 해도 넓은 의미의 진화론은 아주 자연스럽게 식민정책, 전쟁의 필요성, 범죄와 광기에 대한 가혹한 탄압에 이론을 제공했다.  

대량살륙의 국가들은 당연히 인종주의적인 국가였다. 소련 등의 사회주의 국가가 그러하고, 나치가 그러했다. 특히 나치즘은 이 새로운 권력 메커니즘이 절정에 달한 경우였다. 나치정권만큼 규율적인 국가는 없었고, 또 생물학적 규제가 나치정권에서만큼 엄격하고 강력하게 적용된 곳도 없었다. 나치 국가는 국민의 출산, 유전, 질병, 사고 등을 모두 관장했다.
   
푸코에 대한 동의와 반박

푸코는 생체 권력을 강하게 비판하지만, 우리로서는 푸코의 이론에 선뜻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전국민 의료보험의 적용으로 온 국민이 저렴하고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받아 수명을 연장시키고, 보다 건강한 삶을 살게 되었는데, 무조건 권력은 나쁘다고 단순하게 생각할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푸코의 이름을 알건 모르건 그의 이론적 세례를 받은 세대가 “왜 내가 국가를 위해 아이를 낳아야 되느냐?”고 현학적인 반박을 하기도 하지만 인구 문제가 나라의 존망과 관련이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다만 인종주의의 측면에서는 푸코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수천년간의 인종주의적 DNA를 갖고 있는 중국을 경계하고, 근세 백년간의 우월적 지위의 기억을 갖고 있는 일본도 경계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인종주의적 가해자가 되려는 최근의 경향도 스스로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신종 플루 사태를 보며 얼핏 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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