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이야기’는 2006년 2월 발간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을 쓴 저자 이영훈 교수가 ‘조금 알기 쉽게, 읽기 쉽게’ 다시 쓴 책이다. 처음 원고는 EBS 라디오 방송의 요청을 받아 특강 형태로 일반인에게 공개되었지만 일주일간의 강의 내용을 수정 보완, 세 배쯤 되는 분량의 완성된 책으로 발간한 것이다.
    ‘대한민국 이야기’는 한국 근현대사를 전면 재해석하고 있다. 결국 역사는 해석이지만, 격동의 20세를 거친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우리는 ‘민족주의’라는 정서에 묶인 역사만을 얘기하고 해석해온 것이 사실. 저자는 우리를 옭아 맨 민족주의를 해체하고 분별력 있는 이기심을 본성으로 하는 인간 개체를 역사 서술의 단위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선왕조가 패망한 원인, 식민지 수탈론, 친일파청산 문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현대사의 중요한 문제와 쟁점들도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가고 있다. 이 책은 일본 ‘문예춘추’가 ‘大韓民國の物語’라는 책명으로 일본어판으로 펴내기도 했다. 뉴데일리는 저자 이영훈 교수와 도서출판 기파랑의 허락을 받아 책의 내용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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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빗나간 역사의식, 극단의 20세기


    지난 20세기는 기나긴 인류역사에서 어느 세기보다 파란만장한 시대였습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전쟁이 있었습니다. 그러고서도 세기말까지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죽거나 다치거나 학살되었습니다. 대규모 재난도 20세기의 특징이었습니다. 20세기 후반 아프리카대륙에서는 대규모 기근이 발생했습니다. 어떤 연구자는 20세기에 걸쳐 대략 1억 8천만의 사람들이 전쟁과 혁명과 학살과 기근으로 죽었다고 하는군요. 그렇게 20세기는 전대미문의 살인적인 세기였습니다.

    20세기는 인류의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인간이성의 위대한 실험이 행해진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두 차례의 세계전쟁을 전후하여 러시아와 중국에서 사회주의혁명이 성립하였습니다. 인류의 1/3이 사회주의체제에 포섭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혁명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사회주의는 인류의 사회·경제생활이 걸어온 정상적인 진화의 코스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을 계급적이며 공동체적인 존재로 규정한 사회주의자들의 인간 이해는 잘못이었습니다.

    대조적으로 자본주의는 번영하였습니다. 20세기 전반만 해도 자본주의는 위기의 시대였습니다. 도무지 희망이 없어 보였지요. 그렇지만 20세기 후반 자본주의는 일찍이 누구도 상상한 적이 없는 거대한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1만 년 전 신석기 농업혁명이 있은 이래 최대의 변화가 지구적 범위해서 발생했다고 합니다. 과학과 기술의 놀라운 발전이 그 근본 원인이었습니다. 그 결과 지구상의 많은 지역에서 사람들은 빈곤과 질병의 굴레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물질생활만이 아니지요. 대중교육의 보급, 대중민주주의의 확산, 여성의 해방 등 정신생활의 면에서도 20세기 후반의 세계는 위대한 성취를 목도했습니다. 한마디로 20세기는 극과 극이었습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은 20세기를 가리켜 ‘극단의 시대’(The Age of Extremes)라고 하였는데요, 그 말이 참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홉스봄의 그 말을 들으면서 20세기 한국사만큼 극단적인 시대가 달리 어디 있을까라고 생각합니다. 1910년 대한제국이 망했습니다. 한반도는 이웃나라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이후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일제가 패망하자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의 분할 점령체제로 바뀌었습니다. 두 강대국의 후견으로 한반도의 남과 북에서는 서로 다른 정치체제의 국가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수백만 명이 죽고 다친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적인 전쟁이 벌어졌지요. 전쟁이 끝난 뒤 1950년대의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다가 1960년대부터 ‘대질주’(big spurt)라 불릴 만한 고도경제성장의 한 세대가 전개되었습니다. 인간들의 물질생활이 비약적으로 충족해졌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경제에서 교역 규모 11위의 중강국(中强國)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경제만이 아니지요. 1980년대 후반부터는 정치의 면에서도 민주주의가 성립하였습니다. 정치, 사상, 언론, 결사의 자유가 지나치다고 느낄 만큼 넘칩니다. 그래도 큰 혼란이 발생하지 않은 것은 다 대한민국의 저력이라고 하겠습니다. 흔히들 2차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국 140여 나라 가운데 대한민국만큼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성공한 나라는 없다고 합니다만, 사실 그대로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선진국 진입이 무성하게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선진국이 무엇인지 확실치 않습니다만,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세계를 리드하는 국가의 반열에 든다는 것이지요. 그러한 정치적 구호를 들을 때마다 저는 무엇에 홀린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지난 20세기의 한국사가 너무나 극과 극이기 때문입니다. 불과 3세대 전에 세계정세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식민지로 떨어진 나라가 선진국이 되겠다고 하니 그런 일이 가능한 법인가. 역사에서 그런 비약은 있을 수 없는데, 우리가 무엇을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저 역시 선진국의 국민이 되고픈 소망이 간절합니다만, 그럴수록 “무언가가 빠져 있어”, “이대로는 곤란해”라는 일종의 불안과 두려움 같은 것을 느낍니다. 그 점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군요. 빠져 있는 그 무언가는 아마도 정신문화의 영역일 겁니다. 경제나 정치와 달리 정신문화의 진보는 그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습니다. 백 년을 단위로 또는 몇백 년을 단위로 겨우 약간의 변화가 관찰되는 것이 정신문화라고 하지요. 그런 정신문화의 영역에서 지난 100년간 우리는 과연 세계적으로 선진적이라고 평가될 만한 변화를 이루어 냈던가. 저는 이 점에 회의적일 때가 많습니다. 특히 정신문화의 기층을 이루는 역사의식과 관련하여 그런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잘못 세워진 나라'


    한국인들의 역사의식은 개인적이라기보다 집단적이며, 개방적이라기보다 폐쇄적이며, 실체적이라기보다 관념적이며, 실용적이라기보다 도덕적이며, 통합적이라기보다 갈등적입니다. 그러한 역사의식으로는 극과 극을 달렸던 20세기의 한국사를 총체적으로 조화롭게 이해하기 힘듭니다. 마찬가지로 극단의 시대였던 세계사를 이해할 수 없음은 물론이요, 좋든 싫든 한국사가 그 속에서 자리했던 위치를 올바로 잡아내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잘못된 역사의식은 사회와 국가를 분열시키고, 이웃 나라와는 부질없는 역사전쟁만 야기할 뿐이지요. 그래서는 결국 정신문화와 국제협력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선진국 진입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들의 관념적이며 도덕적이며 갈등지향적인 역사의식에 대해 좀 더 설명하겠습니다. 예컨대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은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그리 잘 세워진 나라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었던가요. 전국에서 수만 명이 참가한 제2건국위원회라는 것이 만들어진 적이 있지요. 1948년 8월의 제1건국에 무언가 심각한 하자가 있어 지금까지 문제가 많았는데, 지금부터라도 다시 건국하는 기분으로 잘 해보자라는 취지였다고 기억합니다. 건국사에 대한 도덕적인 비판은 현임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보다 강력한 어조로 표명되었습니다. 취임 직후인 2003년 3·1절의 경축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의 근·현대사는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정의는 패배했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다”라고 했습니다. 노 대통령의 연설만이 아닙니다. 이러한 취지의 건국사 비판은 우리의 주변에서 대학 강단이나 대중 방송을 통해 너무나 흔하게 접하는 것이어서 조금도 이상할 정도가 아니지요.

    무슨 뜻일까요. 비판의 앞뒤를 잘 들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제 하 식민지기에 민족의 해방을 위해 희생한 독립운동가들이 나라를 세우는 주체가 되지 못하고, 엉뚱하게 일제와 결탁하여 호의호식하던 친일세력이 미국과 결탁하여 나라를 세우는 통에 민족의 정기가 흐려졌다는 것이지요. 민족의 분단도 친일세력 때문이라는 겁니다. 해방이 되자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 친일세력이 미국에 붙어 민족의 분단을 부추겼다는 겁니다. 그런 반민족세력을 대표하는 정치가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이승만은 친일세력을 단죄하기 위해 열린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1949)의 활동을 강압적으로 중단시켰습니다. 그렇게 살아남은 친일세력이 주체가 되어 나라를 세웠으니 그 나라가 잘 될 리가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60년간 정치가 혼란스럽고 사회와 경제가 부패한 것도 다 그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제2건국’을 하거나 ‘과거사청산’을 하자는 것 아니겠습니까.

    건국사에 대한 이 같은 비판이 그 주관적 선의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역사의식을 선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릴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서는 이른바 민족이 역사의 기초 단위로 설정되고 있지만, 그 민족이란 것이 우리가 생각해 왔던 것만큼 확실한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하에서 누차 강조하겠습니다만, 민족이란 20세기에 들어 구래의 조선인이 일제의 식민지 억압을 받으면서 발견한 상상의 정치적 공동체입니다. 민족은 20세기의 한국사를 조명하는 중요한 시각이긴 합니다만, 그것만이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보다 더 본질적이고 실체적인 역사의 단위가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개별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본성은 자유이고 도덕적 이기심이고 협동능력입니다. 그러한 본성의 인간들이 상호 경쟁하면서 또 상호 협동하면서 건설해 가는 생산과 시장과 신회와 법치와 국가의 역사가 진정한 역사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문명사라고 자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문명사의 시각에서 지난 20세기를 보면 민족사에만 초점을 맞출 때와는 상이한 역사가 보입니다. 인간들의 삶을 규정한 여러 차원의 질서에서 적잖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음을 관찰하게 됩니다. 식민지기에 독립운동이 중요했음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습니다만, 그것만이 역사의 전부가 아님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방 이후 국민국가를 건설할 주체로서 근대문명을 이해하고 실천할 능력의 인간군이 생겨나고 있었음도 식민지기에 있었던 마찬가지로 중요한 역사이지요. 민족이 분단되었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잘못 세워진 나라라는 주장은 관점을 돌려놓기만 하면 애당초 성립하기 어려운 주장이지요.


    《해방전후사의 인식》 비판


    이 책은 그러한 탈민족과 문명사의 관점에서 지난 20세기의 한국사를 전면적으로 재해석하고자 한 것입니다. 무모하다고나 할까요, 아직은 시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서술의 대상은 20세기 전체가 아니라 대한제국의 패망 이후 식민지기를 거쳐 대한민국이 성립한 초창기인 1950년대까지입니다. 흔히들 그 시대를 해방전후사라고 합니다. 이제부터 그 해방전후사를 대상으로 지금까지 지배 학설이었던 민족주의 역사학을 논리적으로 또 실증적으로 치열하게 비판하면서 나름의 대안을 제시해 가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비판의 표적을 명확히 하기 위해 《해방전후사의 인식》(한길사, 1979~1989, 이하 《인식》으로 약칭)이란 여섯 권의 책을 소개하겠습니다. 《인식》은 해방전후사를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해석한 결정판입니다. 이 책은 1980~1990년대에 대학을 다닌 한국인들에게 너무나 큰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읽지 않은 대학생이 거의 없을 정도여서 여섯 권 합하여 100만 권 가까이나 팔려 나갔다고 하는군요. 재야 시절의 노무현 대통령도 이 책을 탐독했다는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현 집권세력의 요처에 포진한 이른바 386세대라는 젊은 정치가들의 현대사 인식은 이 책을 통해 형성되었습니다. 현 정부가 20세기 한국사 전체를 대상으로, 심지어는 1894년의 동학농민봉기까지를 대상으로 해서, 무려 16개에 달하는 특별법을 제정하여 이른바 ‘과거사청산’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도 이 책을 읽으면 그 역사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식》의 각 권에는 총론이 있습니다. 총론은 책의 성격과 내용을 대변합니다. 그 총론을 중심으로 《인식》 각 권의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제1권의 총론은 언론인 출신의 송건호 씨가 썼는데, 주로 대한민국의 건국세력에 대한 도덕적 비판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표현이 거칠고 감정적인 데가 많지요.
    예컨대 다음과 같습니다. 해방 후 점령군으로 온 미군정 하에서 “친일파 사대주의자들이 득세하여 애국자를 짓밟고 일신의 영달을 위해 분단의 영구화를 획책하여 민족의 비극을 가중시켰다.” 그리하여 “1948년에 성립한 대한민국은 신생정부임에도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참신한 기풍을 볼 수 없어 마치 노쇠국과 같았다” 등입니다.

    이러한 도덕적 비판을 넘어 《인식》이 나름의 논리체계를 세우기 시작하는 것은 제2권부터입니다. 제2권의 총론은 강만길 교수가 썼는데, 그의 유명한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이 거기서 펼쳐집니다. 요컨대 식민지기에는 민족해방이 지상과제였듯이 해방 후의 분단시대에는 민족통일이 지상과제라는 겁니다. 민족통일이 성취되기 이전에는 완전한 시민사회와 근대국가가 성립했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이에 민족의 지상과제인 통일을 성취하기 위해 남한과 북한의 정치는 민족정치이어야 하고, 경제도 민족경제이어야 하고, 문화도 민족문화이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정치와 경제와 문화의 모든 것을 민족적인 것으로 바꿀 수 있는가. 바로 60년 전 김구 선생이 38선에 섰던 것처럼 우리도 휴전선에 선 중간자의 입장이 되어 남과 북이 갈라지고 전쟁을 치르고 분단을 고착시켜 간 역사적 과정을 비판적으로 객관화할 필요가 있다. 이상이 강 교수가 이야기하는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입니다.

    이렇게 제2권의 총론이 역사인식이라면 제3권의 총론에서는 사회경제의 분석과 그에 기초한 혁명이론이 제시됩니다. 제3권의 총론자는 박현채 선생입니다.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 되었습니다만, 박 선생은 한국전쟁 당시 전남 백아산에서 소년 빨치산으로 활동한 분입니다. 박 선생에 의하면 식민지기와 미군정기는 식민지반봉건사회(植民地半封建社會)입니다. 세계사적으로 크게 보면 자본주의사회이지만, 아직 제국주의의 지배하에서 지주제를 중심으로 한 봉건적 부문이 강하게 남아 있어 사회경제적 변혁이 반(反)제국주의와 반(反)봉건적 토지개혁을 주요 과제로 하는 사회라는 뜻입니다. 좀 더 풀이하면 아직 자본주의의 발전 정도가 미약하여 공산당이 당장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할 객관적 여건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선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여 민주주의적인 토지개혁을 수행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농민의 지지를 확보하여 정권을 확실히 장악한 다음, 적당한 때를 보아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가자는 주장이지요.

    아시아의 정치사에서 이러한 사회주의 혁명의 이론을 개발하고 실천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중국 공산당의 마오쩌둥(毛澤東)이지요. 그는 위와 같은 2단계 혁명을 신민주주의혁명이라 불렀습니다. 해방 후 한국의 공산주의자들은 마오의 이 같은 혁명이론을 수용하고 실천했습니다. 박현채 선생도 그러한 사상을 계승 한 사람이지요. 그래서 위와 같은 혁명이론을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1970년대까지 한국에서 그러한 주장을 공개적으로 제기하기는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자본주의가 중진 단계로 발전한 1980년대 중반부터 사상과 학문의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그러자 다시 마오의 혁명이론으로 해방전후사를 재해석하고자 했던 것이 제3권의 총론이라고 하겠습니다.

    제4권의 총론은 최장집과 정해구 두 교수가 함께 쓴 것인데 《인식》 여섯 권 전체를 하나로 아우르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논문입니다. 두 교수는 앞의 세 권까지의 도덕심판과 역사인식과 혁명이론을 전제한 위에 한국전쟁의 기원과 성격에 관해 설명을 덧붙임으로써 해방, 분단, 건국, 전쟁에 이르는 전 역사 과정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그야말로 스케일이 큰 논문입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북한 정권의 성격에 관한 언급이 나오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두 사람의 주장을 들어보면 북한은 혁명적인 소련국의 지원하에 혁명적인 공산주의자와 혁명적인 민중이 연합한 정권으로서 미제와 반민족·반혁명 세력의 지배하에 있는 남한을 해방시킬 ‘민주기지’였습니다. 한국전쟁은 남한과 북한의 그러한 성격 차이 때문에 거의 불가피했던 내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미국이 전쟁에 개입함으로써 남한의 해방과 혁명은 좌절되고 말았다는 겁니다. 이렇게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는 이야기가 대한민국 내부에서, 그것도 제도권에 속한 대학사회에서, 최초로 제기된 아슬아슬한 대목이 바로 제4권의 총론이라고 하겠습니다.

    제5권의 총론은 김남식 씨가 썼습니다. 이 분의 경력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만, 어쨌든 여기서는 일층 대담무쌍하게 북한의 역사적 정통성이 주장되고 있습니다. 북한을 두고 김남식은 반제반봉건(反帝反封建)민주주의혁명에서 사회주의혁명으로 나아가는 혁명국가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북한의 역사와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체사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김남식은 역설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제6권의 총론은 박명림 교수가 썼는데, 제4권의 총론과 대동소이한 내용의 반복이라는 느낌을 주고 있기 때문에 자세히 소개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이상과 같이 《인식》은 마오의 신민주주의혁명론에 입각하여 대한민국의 건국사를 비판한 다음, 북한의 주체사상에 기대어 민족통일을 전망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아니 그것, 시대착오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 황당한 주장을 펼치는 사람이 아직도 있는가. 과연 그렇습니다. 다 아시는 대로 1990년대 이후 사회주의 국제체제가 해체되었습니다. 사회주의 중국도 사실상 자본주의체제로 바뀐 가운데 고도성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그러한 변화를 거부하고 있는 북한에서는 1990년대에 들어 대규모 기근이 발생하였습니다. 세계사의 현실이 엄연히 그러할진대 지금도 신민주주의혁명론이나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추종할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새삼스레 《인식》을 비판할 필요조차 없지 않을까요. 비판보다는 오히려 《인식》의 시대적 역할에 대해 좀 더 우호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인식》을 비판할 때마다 그런 반비평이나 불평을 자주 듣습니다. 예컨대 《인식》의 제1권이 출간된 1979년은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체제가 서슬도 시퍼렇게 사람들의 정치적 권리를 억압하고 있던 때입니다. 그 시절에 나온 《인식》은 갖은 정치적 박해를 무릅쓰면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앞당기는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겁니다. 사실 그 점을 평가함에 인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대충 얼버무릴 일은 아니지요. 제가 《인식》을 물고 늘어지는 것은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제시된 대한민국 건국사에 대한 비판과 그 바탕을 이루는 민족주의 역사의식만큼은 여전히 오늘날 한국의 사회와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힘으로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의 서술체계로까지 공식화하여 다음 세대의 역사의식까지 지배하는 권위로 군림하고 있는 실정이지요.


    역사교과서의 현대사 인식


    예컨대 《한국근현대사》라는 현행 고등학교 교과서를 봅시다. 7종의 검인정 교과서가 대개 마찬가지입니다만, 가장 널리 채택되고 있는 금성사판 교과서를 예로 들지요. 이 교과서에서 한국 현대사가 시작되는 제4부 이하를 보면 맨 먼저 해방과 건국을 규정한 국제정세로서 다음의 세 가지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무기 없는 전쟁에서 무력충돌로”로서 곧 미국과 소련 간의 냉전을 가리킵니다. 둘째는 1949년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과 변화”입니다. 셋째는 ‘제3세계의 형성’으로서 1955년 반둥회의에서 성립한 제3세계의 비동맹을 말합니다. 첫째의 동서냉전은 그렇다 칩시다. 둘째의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과 셋째의 제3세계 비동맹은 무슨 이야기입니까. 그것들과 우리의 현대사와는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중국은 한국전쟁에 개입하여 한국과 군사적으로 대립했던 나라입니다. 그리고 한국은 제3세계의 반둥회의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제3세계는 한국을 위시한 신흥공업국가가 놀라운 경제성장을 거두자 사실상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역사적 사실이 그러할진대 어찌하여 중화인민공화국과 제3세계의 성립을 두고 대한민국의 건국을 규정한 세계사적 조건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요.

    제가 보기에 대한민국의 성립이나 발전과 관련하여 1945년 이후 미국이 주도한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빼놓는다면 아무것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 점은 모두가 다 아는 상식과도 같은 것입니다. 한국이 해방된 것은 미국이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인본제국주의를 해체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1960년대 이후 한국이 고도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미국이 펼친 세계 자유무역체제라는 판 위에서였지요. 교과서는 당연히 구래의 제국주의체제를 대신하여 1945년 이후 세계자본주의를 주도한 미국 헤게모니체제와 그 성격을 한국 현대사의 전제조건으로서 서술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과서는 어찌하여 실패하거나 해체되고 만 중국 사회주의와 제3세계의 비동맹을 그렇게나 중시하고 있을까요.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교과서의 서술체계를 잡은 교육부의 검증위원들, 그리고 교과서의 집필에 참여한 역사가들이 실제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인식》의 영향하에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마오쩌둥의 신민주주의혁명론이나 북한의 주체사상에 입각해서 한국 현대사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식》을 두고 아직도 지배적인 힘으로 살아 있다 한 것입니다.

    다소 극단적인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인식》과 그에 입각한 현행 역사교과서를 그냥 두고서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념적이고 후진적인 역사의식으로는 선진국 진입에 요청되는 정신문화 영역에서의 도약을 기대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실은 작년 2월에 뜻을 같이 하는 동료 교수들과 함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책세상, 2006, 이하《재인식》으로 약칭)이란 두 권의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탈민족주의의 관점에서 해방전후사를 재인식하는 데 도움이 될 학술적으로 우수한 국내외의 논문 28편을 묶은 것입니다. 그러자 세간에서 적잖은 호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원래 학술지에 실린 논문들이라서 보통 사람들이 읽기엔 어렵다는 불평이 많이 들렸습니다. 좀 쉽게 해설해 줄 수 없느냐는 부탁도 있었지요. 제가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은 다른 한 가지 이유는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 저는 《재인식》에 실린 논문을 한두 편씩 언급하면서 그것들을 해설해 가는 기분으로 한 장씩 써내려 갈까 합니다. 그렇지만 이 책이 《재인식》의 단순한 해설판은 아닙니다. 그 점을 명확히 해두고 싶군요. 생각하고 말을 하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저이고, 제 생각을 펼치는 데 유력한 근거를 제시하는 차원에서 각 논문을 끌어와 설명하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굳이 이 말을 해두는 것은 각 논문을 쓴 사람의 원래 취지와 저의 생각이 어긋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활자화된 논문은 저자의 손을 떠난 공공재(公共財)로서 그것을 어떻게 소화하는가는 읽는 자의 몫이기도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