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성공단 남측 근로자 유모씨 억류사건이 3일로 35일째를 맞으면서 남북 합의의 모호성 문제가 본격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문제가 되는 남북합의는 2004년 1월29일 체결된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지구의 출입 및 체류에 관한 합의서(이하 합의서)' 제10조 신변안전보장과 관련한 조문들이다. 정부는 이 조문을 근거로 `북이 유씨에 대한 접견 및 변호인 입회를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합의를 위반하고 있다'며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문제삼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북한은 이에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북측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총국)은 지난 1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우리 정부의 합의위반 지적을 "궤변"으로 규정하면서 남측이 계속 문제를 제기하면 사태가 더 엄중해질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남북이 가장 큰 입장차를 보이고 있는 조문은 `북측은 인원이 조사를 받는 동안 그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한다'는 합의서 제10조 3항이다. 우리는 피의자 조사시 변호인 입회, 접견 등을 허용하는 것은 `기본적 권리'에 당연히 포함된다고 보고 있지만 북측은 합의 어디에도 변호인 입회 등이 기본권으로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에 조사가 종결되기 전에는 접견 등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북측은 지난달 3일 사태 해결을 위해 방북한 조건식 현대아산 사장에게 이 같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정부 당국자는 "과거 북측과 합의서를 만들기 위해 회담할때 비록 합의서에 명시는 하지 않았지만 변호인 입회, 접견 등은 피조사자의 기본적인 권리로 보장한다는 데 대해 남북간에 양해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피조사자 기본권'의 내용이 적시돼 있지 않다 보니 북의 접견 불허 등에 대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지만 법적 문제로 몰고 가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남북한 형사소송법에 모두 존재하는 변호인 입회 허용 조항과 조사기간 조항이 남북 합의에는 명시돼 있지 않은 탓에 극단적으로 보자면 북한이 몇년간 접견을 불허한 채 유씨를 조사하더라도 법적으로 문제삼기 어렵게 돼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모호한 합의의 `불씨'는 또 있다. `위반 정도에 따라 경고 또는 범칙금을 부과하거나 남측으로 추방하되 남과 북이 합의하는 엄중한 행위에 대하여는 쌍방이 별도로 합의하여 처리한다'는 합의서 제10조 2항에 `합의처리'하도록 한 `엄중한 행위'가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때문에 지난 1일 총국의 입장 표명에서 유씨 행위를 `엄중한 행위'로 규정한 북이 유씨를 기소해야겠다며 남북간 협의를 요구해올 경우 상당한 진통이 불가피해 보인다. 비록 여태까지 북측이 남측 인원의 위반 행위에 대해 추방 이상의 조치를 취하려 한 적은 없지만 남북관계가 경색된 지금 `좋았던 시절'의 사례는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사실 정부는 2004년 합의서를 만들 당시 우리 인원이 북한법에 의해 처벌받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합의처리' 조항을 북측에 끈질기게 요구, 관철시켰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합의처리'가 필요한 엄중한 위반 행위가 어떤 것인지를 애초 합의때 합의서에 명시하지 않은데 이어 후속협의에서 보완도 하지 못한 점이 이제서야 큰 아쉬움으로 다가오는 양상이다. 결국 `좋았던 시절' 하등 문제될 일 없었던 남북합의의 모호성이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은 향후 남북대화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