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체모를 '변종바이러스'의 출현으로 북미지역 출입국시 검역이 강화되고 있다.  ⓒ 연합뉴스
    ▲ 정체모를 '변종바이러스'의 출현으로 북미지역 출입국시 검역이 강화되고 있다.  ⓒ 연합뉴스

    멕시코인플루엔자와 SI는 전혀 다른 존재

    돼지독감→돼지인플루엔자(swine influenza)→북미인플루엔자→멕시코인플루엔자(Mexican Flu)‥. 지난 23일부터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한 이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는 높은 치사율로 악명을 떨치는 것도 모자라, 이젠 며칠 새 이름마저 ‘진화’를 거듭하며 전 세계 사람들을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 따르면 이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는 기존 바이러스와는 다른 변종, 신종으로서 사람과 돼지와 조류의 유전자가 복합된 신형 인플루엔자이다. 한 마디로 우리가 그동안 언론 보도를 통해 알고 있었던 것처럼 돼지인플루엔자(swine influenza), 즉 SI와 이번에 멕시코에서 발생한 변종 바이러스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얘기다.

    물론 멕시코와 미국에서 발생한 독감이 돼지인플루엔자에서 기원한 변종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돼지에서 유행하고 있으며, 사람에게는 감염되지 않는 돼지 인플루엔자(classical swine influenza)와는 엄연히 차별돼야 한다는 게 검역원의 입장이다.

    국제수역사무국(OIE) 역시 지난 27일 현재 돼지에서 바이러스가 확인된 바 없고, 따라서 돼지 인플루엔자(Swine Influenza)라고 불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발생지 명에 따라 명명하는 것이 논리적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보건 당국은 최근 “돼지 인플루엔자와 돼지독감 등 용어가 혼용됨에 따라 잠정적으로 SI를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기로 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돼지·조류·인체 바이러스의 정보를 함께 가지고 있는 멕시코發 ‘변종 바이러스’와 기존의 SI는 양자 간 전혀 다른 존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돼지독감 발발' 보도로 고사 직전에 놓인 양돈업계

    결국 사실 확인과 용어 정립을 제대로 하지 않은 일부 언론의 성급한 보도 덕분에(?) 정작 죽어나가는 건 양돈 농가와 소매점 들이다.

    대한양돈협회에 따르면 지난 28일 전국 14개 공판장(2,805두)의 돼지 지육(뼈와 살이 붙은 고기) 시세는 kg당 평균 4,011원을 기록, 전날보다 450원 가량이 떨어진 수치를 보였다. 이는 멕시코인플루엔자가 발생하기 전 4,900~5,000원 사이를 오르내리던 것과 비교해 볼 때 10% 이상이 급락한 수치다.

    이에 대해 양돈협회 관계자는 “멕시코인플루엔자 여파로 시장에서 수요가 줄어들 것을 우려해 도매 주문이 대폭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며 “출하두수를 줄이라고 농가들에게 주문을 하고 있긴 하지만 소비자들의 구매의욕 역시 침체돼 있는 것으로 파악돼 농가는 물론 유통업체들이 수익 개선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형 할인점이나 삼겹살 전문 식당 등에서 돼지고기의 매출은 가파른 ‘감소세’를 보이고 있어 업계의 시름 또한 깊어지고 있다.

    홈플러스에 따르면, 지난 주말 멕시코인플루엔자 소식으로 인해 전주 대비 돼지고기 매출이 -7.7%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4일 동안 원산지로 비교해 보면, 국내산은 -2.3%, 수입산은 -32.8% 매출이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현재 홈플러스에선 국내산이 94.5%, 수입산은 5.5%를 취급하고 있으며, 수입국가는 프랑스와 캐나다이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전주에 돼지고기 행사가 있었기 때문에 크게 매출이 줄어든 것은 아니”라고 해명은 했지만, 최근 멕시코인플루엔자에 대한 언론 보도가 터져나온 탓에 소비자들의 구매의욕이 일시적으로 감소한 것은 자명한 사실로 보여 진다.

    신세계 이마트 역시 28일 현재 돼지고기 매출이 전주 대비 15.1% 가량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롯데마트도 전주, 같은 요일과 비교해 27일 -4.2%, 28일 -16.2%의 신장율을 보이며 각각 큰 폭의 하락세롤 기록했다.

    대형할인점 ·식당서 돼지고기 판매  "찬바람 쌩쌩"

  • ▲ 돈사에 방역 처리를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 돈사에 방역 처리를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그렇다면 삼겹살을 파는 일반 식당 분위기는 어떨까? 29일 늦은 오후 기자가 찾아간 서울 중구 소재의 한 삼겹살집에는 여느 때처럼 술 한잔 걸치고 고기를 먹으려는 학생들과 직장인들로 붐볐다.

    “글쎄요, 저희 가게는 그렇게 어려운 편은 아니지만 확실히 지난주보다는 매상이 준 것 같네요. 하루 평균 120~130만원 정도 하던 돼지고기 매출이 3분의 1정도로 감소했습니다.”

    자신이 워낙 낙천적인 성격이라 아직은 별 걱정을 하지 않는다는 가게 사장님. 그러나 “좀 이러다 좋아지겠죠”라고 내뱉는 그의 얼굴은 말과는 다르게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근처에 있는 다른 삼겹살 집을 찾아갔다. 이 식당의 주인은 “요즘 어떠시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뜸 “몰라서 물어?” 라고 퉁명스럽게 답하며 대화를 회피했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살벌한(?) 분위기상 이 집 역시 멕시코인플루엔자 ‘공포’로 인한 소비 위축으로 큰 타격을 받고 있는 듯 했다.

    주위의 지인들로 마찬가지. 웬만하면 삼겹살 대신 불고기 집을 가거나, 어쩌다 삼겹살 등 돼지고기를 파는 식당에 가면 자신도 모르게 ‘이거 국산이에요?’, ‘돼지독감 걸인 거 아니죠?’ 라고 주인에게 물어본다는 것.

    정부, 북미산 '살아있는 돼지'  전면 수입 중단

    농림수산식품부나 양돈협회 등에서 “돈육가공식품으로는 해당 바이러스가 전파되지 않는다.”, “바이러스는 71도 이상 가열하면 죽기 때문에 익혀서 먹는 고기는 100% 안전하다.”, “SI는 호흡기를 통해서만 감염되기 때문에 만일 감염된 고기를 먹었다 손치더라도 감염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고 아무리 설교해도, 돼지고기에 대해 패닉증상에 빠진 소비자들의 마음이 쉽사리 돌아설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돼지고기 제품을 통해 멕시코인플루엔자가 전파된다는 증거는 없다는 OIE 의 공식 발표가 있었으나 농림수산식품부는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진 민심을 감안해 미국, 캐나다에서 씨돼지(종돈)를 수입하던 것을 잠정 중단한 상태다. 씨돼지는 지난해 1,800여두가 수입됐는데 이 중 미국산이 592마리, 캐나다산이 970마리로 나타났다(합계 1천562마리).

    또한 농림부는 미국, 멕시코 등에서 수입되는 돼지고기 제품에 대해 매 건별로 SI 바이러스 검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미국, 멕시코 등에 수출용 돼지고기에 대한 도축검사 강화를 요청했다. 나아가 북미가 아닌 기타 지역에서 수입된 돼지는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위해 전수검사를 실시키로 했다.

    '공장식 사육'에 지친 가축의 복수인가?

    이 같은 ‘괴 바이러스’가 출몰한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이항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는 28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50~60년 동안 인수공통 전염병의 발생은 과거보다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대량 축산이 야기하는 유전적 다양성의 부족과 열악한 환경이 원인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공장식 축산업은 인간의 수요를 충족하는 품종을 보통 근친번식을 통해 만들어내는데, 유전적 다양성이 낮아져 특정 질병에 집중적으로 노출될 뿐만 아니라, 밀집한 사육환경이 급속한 전염의 배경이 된다는 것.

    특히 이번 돼지인플루엔자의 변종 바이러스는 돼지·조류·인체 바이러스의 정보를 모두 가지고 있어, 전염도가 매우 높은 치명적 질환일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이 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변종 바이러스의 전파 과정 역시 베일에 싸여있다.

    과연 이 바이러스가 조류인플루엔자라 불리우는 H1N1형 바이러스와 SI바이러스가 합쳐진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바이러스가 뭉쳐서 변종이 탄생한 것인지, 변이가 일어난 축종이 돼지인지 조류인지조차 명확치 않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