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식인의 오만과 편견 ⓒ 뉴데일리
    ▲ 지식인의 오만과 편견 ⓒ 뉴데일리

    1946년 창간된 이래 현재도 출간되고 있는 월간 <세카이>는 일본 최고의 정론지이자 진보 지식인들의 공론장이다.
    그러나 《세카이》가 한국 독자의 이목을 끄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한반도 문제에 대해 늘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점이다. 특히, 냉전 분위기가 지속되던 1970~1980년대에는 지속적으로 북한 김일성을 인터뷰하고 기획기사를 게재하는가 하면, 정기적으로 북한방문기를 싣는 등 다른 매체들이 흉내조차 낼 수 없었던 과감한 시도를 계속해왔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도 집요하리만치 예민한 관심을 표명해 왔다.
    1972년부터 1988년까지 장장 16년에 걸쳐 <세카이>에 연재됐던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은 국내외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TK생이란 필명의 필자가 당시 한국 내부의 비공식 자료들을 토대로 한국의 폭압적 정치상황을 외부에 폭로하는 형식으로 연재한 일종의 기획물이었다.
    <세카이> 2003년 9월호에 오까모또 아쓰시 편집장과 지명관 교수의 대담이 실렸다. 이 자리에서 지명관 교수는 “72년 11월부터 88년 3월호까지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썼다”고 밝혀 자신이 TK생이란 필명의 실제인물임을 밝혔다.

    지난해 지명관 교수는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출간했다. 책이 출간되자 여러 언론에서 내용을 소개했고, 일반의 반응도 지 교수와 오까모또 편집장의 생각에 동조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카이>와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둘러싼 정황은 그리 간단치 않다.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이 연재되었던 시기는 한국에서 경제적 자립과 정치적 민주화란 근대화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과정과 궤적을 같이한다. 이 시기는 한국이 세계역사상 유래 없는 고도성장을 이룩한 기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세카이>는 이런 복합적인 근대화 과정의 한쪽 측면만을 과도하게 부각시키며 한국에 대해 유래 없는 비난의 화살을 쏘아댔다. 특히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연재는 이웃에 대한 우호적 관심의 차원을 뛰어넘는 내정간섭 수준의 기획이었다. 지식인들이 가져야할 최소한의 덕목인 ‘사실의 확인’과 ‘실증적 태도’가 결여되었던 것은 물론이고, 자기기만에 가까운 ‘선험적 인식론’에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에 대한 세간의 호의적인 평가 또한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의 선입견과 상응되는 것은 아닐까? 특히, <세카이>는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연재가 시작된 이후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과의 접합면을 크게 확대했다. 문익환 목사를 비롯해서 이영희, 백낙청, 황석영, 고은처럼 글을 실었거나 대담·포럼 등을 통해 <세카이>와 행보를 같이한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의 면면도 대단히 화려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활동이 <세카이>의 반한친북이란 선험적 인식론의 알리바이로 이용당한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세카이>란 일본 최고의 집단지성이 왜 한반도의 상황에 대해서만은 이러한 선험적인 선입견에 매몰될 수밖에 없었을까 하는 문제제기가 바로 이 책의 출발점이다. 필자는 이런 의문의 해답을 찾고자 <세카이> 창간호부터 최신호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기사들을 실증적으로 추적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접 자료들을 <세카이>의 내용과 교직시키면서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의 의식세계를 파헤쳤다.

    결국, 필자는 남북한을 흑백논리로 재단한 <세카이>의 편향된 시각이 진보적 지식인의 ‘허위의식’에서 표출된 배리현상임을 밝혀낸다. 그리고 <세카이>의 편향된 시각은 “자신의 감정을 만족시키기 위한 감정적 선입감(sentimental prejudice)”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런 위선적 태도야말로 지식인의 ‘허위의식’과 ‘자기기만’의 회로(回路)임을 명철하게 분석한다.
    기파랑 펴냄, 383쪽, 1만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