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전직 국방부 장관들을 비롯, 각군 참모총장 등 역대 군 수뇌부 70여명은 26일 오전 서울 송파구 신천동 재향군인회 중역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노무현 대통령의 지난 21일 민주평통 행사의 발언의 취소와 사과를 요구했다. 전직 군 수뇌부가 집단적으로 대통령의 발언을 문제삼아 반박하면서 발언 취소와 사과를 요구한 것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로,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오전 11시 기자회견을 앞두고 재향군인회 중역회의실로 속속 들어서는 전직 군 수뇌부의 얼굴 표정에는 분노와 함게 비장함이 역력했다. 특히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데 대한 우려감도 다분했다. 이정린 전 국방차관은 "잠 한숨 못잤다. 외국에서 어떻게 볼까 참 부끄럽다"고 기자회견에 임하는 심정을 내비쳤다. 이날 회견장에는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대통령이 국민을 오도한다" "거들먹기리기는 누가 거들먹거렸냐"는 등의 격한 발언이 쏟아졌다. 

    김성은 전 국방장관은 기자회견에 앞서 인사말을 통해 "현재 상황이 정말 부끄럽다"며 "국방전문가들인 전직 장관 등이 이것만은 절대 안되겠다고 하면 일단은 대통령이 귀를 기울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노 대통령을 직격했다. 김 전 장관은 이어 "21일 민주평통 발언은 뜻대로 안 되니까 군 원로 등을 싸잡아 매도한 것"이라면서 "식견이 있는 사람인지, 정말 의심이 간다"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특히 "외국에 가서 대접받고 예우를 받는 것은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싸웠다. 그때 싸워서 지키지 않았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었다"며 "자신들이 거들먹거려놓고, 여기 떡사먹고 거들먹거린 사람 있으면 손 한번 들어보라"고 분개했다. 김 전 장관은 이어 "노 대통령은 즉각 발언을 취소하고 국군장병들에게 사과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순간, 함께 참석한 군 원로들은 일제히 끓어오르는 분노를 표출하면서 환호했다. 이들은 이어 30여분간의 비공개 회의를 갖고 노 대통령의 민주평통 발언 취소와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을 채택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노 대통령의 민주평통 연설은 국민과 국군, 헌법을 모독하고 신성한 국방의무를 폄훼했다. 분노와 실망을 금할 수 없다"며 "노 대통령은 발언을 취소하고 즉각 사과하라"고 말했다. 이들은 이어 "국가안보는 0.01%의 불확실성이 있어도 안되는 것인데도 국가안보와 전 국민의 생사가 걸린 이(전시작통권 단독행사) 문제를 놓고 대통령이 국민을 오도했다"며 "대통령은 나라의 위중한 안보현실을 오도하지 말라"고 직격했다.

    이들은 '역대 국방장관과 참모총장들이 직무유기를 했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도 "우리들의 구국의 일념을 폄훼하고 마치 국방비를 헛되게 낭비한 주범으로 몰아붙이는 것을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즉각적인 발언 취소를 요구했다. "모든 국민이 오늘날 이 나라가 자유와 평화를 유지하고 막강한 국군으로 발전하는 데 군원로들의 역할이 컸음을 잘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이를 직무유기라고 보는 것은 근본적으로 인식이 잘못됐다고 할 수 밖에 없다"고도 했다. 

    이들은 또 "'젊은이들 군대에 가서 몇년씩 썩히지 말고 그 동안에 열심히 활동하고 장가를 일찍 보내야 아이를 일찍 낳을 수 것 아니냐'는 노 대통령의 발언은 참으로 어이가 없다"면서 "국민의 신성한 병역의무를 모독하지 말고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분개했다. 이들은 "이 문제는 군 인력수급의 어려움과 전투력의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국가안위에 대한 중대 사안"이라며 "정치적인 목적으로 군 복무기간을 단축시키려는 시도를 강력하게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이어 "한미동맹을 더 파괴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정부는 '주권' 문제나 '자주' 문제와는 전혀 무관한 전시작통권 단독행사 계획 추진을 중단해라"며 "대한민국은 유사 이래 최대의 안보위기에 처했다. 국가적 안보위기 극복을 위해 국민들이 일치단결해 총력안보 태세를 갖춰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전날(25일) 열린우리당 우상호 대변인이 전작권 단독행사 반대운동을 펼친 전직 국방장관과 예비역 장성 중에 '독재정권 앞잡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권에 관여한 사람'이 포함돼 있다는 고 한 발언도 첨석자들의 분노를 한껏 돋웠다. 이정린 전 국방차관은 "그런 식으로 공격하면 안 된다"며 '대꾸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다'는 입장을 내보였다. 김성은 전 국방장관은 "자격이 없다는 식으로 우리의 입을 봉쇄하려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자가당착"이라고 힐난했다. 김 전 장관은 "이것은 자식이 아버지를 욕하는 것"이라면서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이날 회견장에는 예비역 장성 모임인 성우회 김상태 회장을 비롯해 김성은 오자복 이기백 이병태 최세창 정래혁 서종철 전 국방장관과 김종환 전 합참의장, 김동진 남재준 전 육군총장, 나중배 정진태 전 한미연합사부사령관 등 역대 군수뇌부 70여명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