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지호의 '시민운동을 검증하라'는 제목의 조선일보 '아침논단'의 글을 보면 그의 ‘오만과 편견’이 잘 드러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과거의 지적경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과거의 지적경험을 통해 형성된 ‘인지 지도’에 따라 사물을 이해하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신지호의 인지지도는 그의 학생시절 ‘골수 사회주의자’로 활동하던 시절에 형성된 것 같다. 그러면서도 그가 마치 자유주의의 대표인양 행세하는 것은 오로지 오만과 편견 탓인 것 같다.

    그의 오만함은 1992년의 '아직도 혁명을 꿈꾸는가'라는 글에서 비롯된 것 같다. 자신은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따른 혁명노선이 잘못된 것을 깨달았음에도 아직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우월감에서 오만함이 탄생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가 사회주의 혁명을 포기한 것이 지적 성찰의 결과라기보다는 소련의 해체에 따른 자기 합리화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리 오만할 이유도 없다. 많은 사람들은 소련의 붕괴를 보기 이전부터 공산혁명의 반동성과 비인간성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편견은 그가 마치 '자유주의'를 대표하며 그것도 한국에서 가장 권위적인 자유주의자인척 하는데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그가 자신을 '뉴라이트'로 분류하고 소위 '올드라이트'와 차별화하면서 그의 편견은 극에 달한 것 같다. 그의 뉴라이트니 올드라이트의 구별 기준이 이념과 정책이 아니라 오로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부정적 행위에 초점을 맞춘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수구기득권' 세력이란 특정 인물들을 지칭하는 것이지 건전한 보수세력의 이념적 지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뉴라이트로서 도덕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것은 좋지만 아직 검증되지 않은 권위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다가 어느 날 잘못을 깨달았다고 하여 곧 바로 그가 자유주의의 대표가 되었다고 자부하는 것은 개인적 주장에 불과하다. 그의 자유주의적 성향은 자신이 판단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 동료 및 국민이 판단할 문제다.

    '시민운동을 검증하라'에서 그는 "뉴라이트는 모든 형태의 근본주의(fundamentalism)를 배격한다"고 말하였지만 자신의 '자유주의'만이 한국의 자유주의를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바로 '근본주의'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또한 '올드'와 '뉴'를 구별하여 오직 '뉴'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근본주의적 폐쇄주의에 해당한다.

    그는 '성숙한 시민사회'를 기준으로 소위 '여당 NGO'와 '야당 NGO'를 싸잡아 비난하고 있다. 흔히 듣는 양비론적 시각이다. 그러나 이것은 핵심을 피하기 위한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양비론적 접근을 통해 그는 한국 시민운동의 근본적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그는 여당 NGO의 문제로 '코드 인사'니 '고성불패(高聲不敗) 신화'니 사법부를 대신한 '사회적 심판 기능'이니 하는 문제를 거론하고 있지만 이것은 소위 집권세력의 시민운동을 미화한 것에 불과하다.

    집권세력의 시민운동의 본질적 문제는 그들이 합법 비합법의 모든 조직과 수단을 동원하여 공산혁명을 획책하고 있으며 그들의 활동자금이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된다는 사실이다. 이들이야말로 현 집권세력의 홍위병이며 북한 군사독재자의 대남전략의 행동대로서 활동하고 있고 한미동맹 와해를 위해 반미운동을 집요하게 전개하고 있다. 이들이 한국사회에 끼치는 폐악은 중국의 홍위병에 못지 않다. 이 본질적 문제를 외면하고 성숙한 시민운동을 논하는 것은 단지 오만과 편견일 뿐이다.

    그는 또한 소위 야당 NGO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다. 그는 자유애국세력의 시민운동에 대해 "깃발만 올리고 바로 개점휴업에 들어가는 대표자 명함용 단체, 빈약한 내실을 가리기 위해 유명 정치인을 초청해 화려한 '언론발'로 허장성세(虛張聲勢)하는 얄팍함, 아무리 지적 재산권이 통용되지 않는 세계라지만 남의 아이디어를 자기 작품인 양 떠들고 다니는 뻔뻔스러움, 주사파 출신 386의원들에게 고해성사를 요구하면서도 자신이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뉴라이트로 '개종'했는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설명도 않는 이중 잣대, 자신이 주도권을 잡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깽판'을 놓겠다는 소아병"이라고 매도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이러한 평가가 바로 신지호 자신이 주도하고 있는 '뉴라이트' 운동에 해당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특히 "자신이 주도권을 잡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깽판'을 놓겠다는 소아병"이라는 잣대에서 자신이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신지호의 자유주의 운동은 주도권을 잡기 위한 한 방편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게 된다. 그의 글에서는 대한민국의 건국과 발전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 바친 정통보수세력, 다시 말해 자유애국세력에 대한 애정을 찾아볼 수 없다. 자신이 올라서기 위해 과거의 정통세력을 짓밟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따라서 그는 우리가 투쟁해야 할 대상을 잘 못 잡고 있다. 그는 친북좌파 반역세력보다 대한민국의 정통세력에 대해 더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따라서 신지호의 전선은 불명확하다. 비유하자면 그는 한나라당에 몸담고 있으나 친북좌파 반역세력과 연대하여 공동전선을 펴는 원희룡과 같다. 보수진영에 진지는 구축하였으나 관심은 적진에 있지 않은지 의심스럽다. 그래서 그런지 신지호는 지나치게 포퓰리즘적이다. 그가 말하는 ‘삼류’ 시민운동이 자신을 지칭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봐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건국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북한의 공산군사독재정권에 충성하여 대한민국에 반역하는 무리들이 득세하여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체제가 위태롭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을 지키려는 자유애국세력이 뭉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이 때에 '뉴'니 '올드'니 하면서 배타적 폐쇄주의적으로 편을 가르고 오로지 자신만이 새로운 세력을 대표할 자격이 있는 것처럼 깃발을 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 깃발이 네편 내편으로 편가르기 용도로 사용된다면 그것이야말로 근본주의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며 오만과 편견의 소치다. 신지호 대표는 자신의 잣대로 남을 비판하러 들지 말고 자신의 잣대로 자신을 비판하는 내적 성숙의 과정을 거쳐야 할 것 같다.

    <객원칼럼니스트의 칼럼 내용은 뉴데일리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정창인 객원칼럼니스트/한국군사평론가협회 부회장·정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