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4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이규민 대기자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오는 지방선거에 여당 후보로 나선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미국 국적의 아들을 군에 ‘자원입대’시킴으로써 ‘선거 악재’ 하나를 제거하려는 중이다. 선거와 무관한 자발적 판단이라고 가족은 주장하지만 왜 하필 이 시기에 아들이 갑자기 군에 가기로 마음을 바꿨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진 씨는 “(아들이) 심란해하고 있어 가슴을 저미는 고통을 나도 느끼고 있다”고 말했는데, 혹 그가 낙선한다고 해서 아들이 당장 제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때는 이 가족의 ‘저미는 고통’이 두 배가 될지도 모른다. 진 씨는 그동안 정치 입문을 원하지 않았지만 집권 세력이 여론조사를 근거로 ‘징병’했다는 게 관변의 얘기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인기도 때문에 지방선거에 ‘차출’된 사례로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도 있다. 기록을 보면 그 역시 여러 차례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끝내 그 마음을 지키지 못했다. 그는 벌써 ‘청담동 고급 의상실’에서 옷을 맞췄다는 등 구설수에 올라 마음고생을 시작하면서 정치판의 흙탕물에 발을 담갔다. 본인은 필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고가 의상 구입을 부인했지만 이번 해프닝으로 입은 상처는 앞으로 그가 정치판에서 겪을 험한 일들에 비하면 아주 작은 가려움 정도일 것이다.

    정당이 후보를 선택할 때 여론은 물론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러나 그 여론이라는 게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는 그동안 치러진 선거들이 결과로 말해 준다. 1997년 대선 때 박찬종 씨는 선거를 1년여 앞둔 시점까지 당선자인 김대중 씨보다 지지율이 두 배 이상 높았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대통령 역시 선거 6개월 전까지만 해도 상대적 약세 후보였다. 아침저녁 바람의 방향이 다른 것처럼 쉽게 변할 수 있는 게 민심이지만 정치인들은 여론조사 결과에 매달려 승리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문제는 시작된다. 선거철이 되면 갑자기 강연장에 정치 지망생들이 빈번하게 등장하고 후보들은 가 본 일 없던 재래시장을 휘젓고 다니며 고급 요리에 길들여진 입에 싸구려 순대나 떡을 한 점씩 집어넣는 서민적 모습을 연출한다. 생전 알지도 못하던 사람을 십년지기라도 만난 듯 반가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부둥켜안기도 하고 자기 조상에게도 안 하던 큰절을 연단 앞 청중에게 하기도 한다. 없어져야 할 이 역겨운 모습들은 아직도 이런 게 여론으로 반영되는 우리의 정치 풍토와 수준 때문에 계속되고 있다.

    집을 살 때 파는 사람이 다정하게 손잡아 주고 넙죽 큰절해 줬다고 감격해서 계약서에 덜컥 도장 찍는 사람은 없다. 번지르르한 외모에 반해 순간적으로 결혼을 작정하는 사람도 흔하지 않다. 그러면서 왜 선거에서만은 이른바 이미지 정치, 감성 정치에 빠져 이성적 판단보다 ‘필(feel)이 꽂히는’ 후보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지 의문이다. ‘눈물 글썽이는 후보의 선거 포스터에 감동했다’거나 ‘호호호 웃는 모습이 귀엽다’는 등 비정치적 요소에 여론이 지배당하면 정치는 지금의 꼴을 면하기 어렵다. 후보자의 능력과 실적, 그리고 그의 성향과 가치관, 소속 정당이 추구하는 이념 같은 이성적 요소가 도외시될 때 선거 결과는 유권자에게 가장 큰 손해로 돌아간다.

    선거는 인기투표가 아니다. 오래전 한 외국 언론은 한국 대통령이 인기에 영합해 고통이 전제되는 정책을 도외시한다며 우리의 국가원수를 ‘빌보드 차트(인기가요 순위) 대통령’이라고 조롱한 적이 있다. 하긴 지금 같은 인기 제일주의 세상에서는 이효리나 박지성, 이승엽처럼 대중적 인기가 높은 사람이 출마하면 무슨 자리에든 당선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물론 이들이 지금 거론되는 후보들보다 정치를 못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빌보드 차트 정치인’들이 얼마나 나라에 해악을 끼쳤는지 무수히 목격해 왔다. 그렇게 된 결과는 물론 정치인 당사자들에게 일차적 책임이 있지만, 감성적으로 그들을 뽑은 사람들도 근원적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민주주의에서 대표자를 선출하는 데 있어 선거 이외의 다른 대안이 없다면 후보 선택은 좀 더 현명하고 신중하게 할 필요가 있다. 유권자들은 정권의 포퓰리즘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마음속 포퓰리즘에서부터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