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3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이신우 논설위원이 쓴 시론 '새마을운동을 아시나요'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올해의 지방선거에서건 아니면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건 적어도 충청도 지역만은 열린우리당의 표밭이 될 가능성이 크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집권당은 물론이고, 정치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전망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지난 대선에서 수도이전 공약으로 재미 좀 봤다고 실토한 대로, 행정중심복합도시가 충청도로 간만큼 이 지역 유권자들의 표심이 뒤따를 것으로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돌아가는 모습은 예상 밖이다. 정작 공을 들인 열린우리당보다는 행정도시에서 물먹은 한나라당이나 신생 정당인 국민중심당이 의외의 강세를 보이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새마을운동’이 커다란 성공을 거두면서 여촌야도(與村野都)의 지지 판세를 구축해놓은 것과는 전혀 딴판이다.

    행정도시만이 아니다. 현 정부는 전국 각 지역을 대상으로 혁신도시, 기업도시 혹은 국토균형발전론이니 하며 갖가지 떡고물 나눠주기를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도 5·31지방선거에서의 낙관적 전망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쯤되면 입 싹 씻은 유권자들이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나눠주기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특혜를 나눠주는 방식에서 잘못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새마을운동의 태동 과정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69년 박 대통령은 “자기의 빈곤을 타인의 책임인 것처럼 불평을 늘어놓는 농민은 몇백년의 세월이 걸려도 결코 일어설 수 없다”면서 자조정신을 일깨우는 새마을운동을 벌이자고 호소한다.

    다음해 정부는 전국 농어촌 3만4665개 마을에 시멘트를 300~350포대씩 무료로 배급해 준다. 마을 공동사업에 써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물론 그 성과는 마을마다 각양각색이었다. 이같은 보고를 받자 박 대통령은 아주 색다른 지시를 내린다. 성과가 좋았던 1만6600 곳에는 시멘트 500포대와 철근 1t을 추가 배분해주는 대신 실패로 끝난 다른 1만8000여 마을에는 일체의 지원을 해주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엄격한 실적평가요, 신상필벌이었다.

    오랫동안 박 대통령 밑에서 경제정책을 이끌었던 김정렴씨는 저서 ‘한국경제정책 30년사’에서 “(이같은 정책은) 무기력하고 태만하던 농민에게 ‘경쟁심’과 ‘협동정신’을 주입시켜 노동의욕을 불러일으켰으며, 급기야 새마을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에 퍼져갔다”고 회고했다.

    최근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국책사업으로 채택한 중국정부 역시 이런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같다. 진징이 중국 베이징대 교수가 “한국 새마을운동에서 배워야 할 것은 자율적 협동정신”(문화일보 3월21일자)이라고 갈파한 것은 중국정부의 공식 입장을 그대로 반영한 듯싶다.

    반면 현 정부가 주도한 행정도시나 혁신도시는 철저히 특혜분양 방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경쟁을 통한 성과 배분에는 어느 누구도 그 정당성에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객관적 평가 과정없이 일방적 시혜나 특혜로 받아들여질 경우, 받는 쪽이야 좋아도 받지못한 쪽은 당연히 불만을 품게 마련이다. ‘받은 쪽은 뭐가 잘났고, 못받은 우리는 잘못한 게 뭐냐’는 식이다.

    따라서 행정도시가 충청도의 특정지역으로 정해지자 그 주변지역들은 일제히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되고 그같은 감정은 자연히 특혜를 베푼 측에 대한 반감이나 분노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행정도시가 충청도로 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는 충청도 전체가 환호했지만 특정 지역으로 낙착되면서부터 충청도는 둘로 갈라져 버린 셈이다. 전국의 혁신도시 주변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현 집권 세력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다른 게 아니다. 중국정부조차 충분히 파악하고 있는 새마을운동의 성공 배경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식구조가 일방적으로 퍼주면서도 열매는 맺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 정도라면 양국 정치인들 간의 질적 차이를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