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3일자 오피니언면 '아침논단'란에 자유주의연대 대표인 신지호 서강대 겸임교수가 쓴 '시민운동을 검증하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뉴라이트가 지향하는 사회는 ‘작은 정부, 큰 시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성숙한 시민사회’가 동행(同行)해야 비로소 선진 한국의 기본 골격이 갖춰진다. 뉴라이트는 모든 형태의 근본주의(fundamentalism)를 배격한다. 시장을 신뢰하지만 그것이 완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장의 맹점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 이와 관련, 뉴라이트는 ‘시장의 실패’보다 ‘정부의 실패’가 인류에게 더 큰 재앙을 안겨 줬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래서 시장의 맹점을 정부가 모두 보완해야 한다는 사고를 경계한다. 예컨대, 국가권력의 강제력에 의한 증세(增稅)보다는 시민사회의 자발적 기부 확산을 훨씬 선호한다. 이렇듯 ‘성숙한 시민사회’는 ‘작은 정부’의 온전한 실현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이제 공공부문 업무는 더 이상 정부의 독점이 아니다. 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하는 ‘민관협치(民官協治)의 신(新)공공관리(New Public Management)’ 방식이야말로 21세기의 새로운 거버넌스(governance) 개념이다.

    권력 밀착 '여당 NGO'들 홍위병 논란에 이권 앞장까지

    이처럼 시민사회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시민사회는 이러한 흐름에 부응할 태세를 갖추고 있는가? 근년 한국의 시민사회를 대표해 온 ‘여당 NGO’들의 활동을 보면, “아직 멀었구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겉으로는 ‘시민운동의 순수성’과 ‘정치적 중립성’ 운운하면서 정치권력과 밀착하여 코드 인사의 수원지(水源池)가 되고 심지어 홍위병 논란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여론이 아닌 공론(公論)을 중시해 ‘성찰적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의 실현에 앞장서야 할 본연의 임무를 내팽개치고 특정 이익집단과 밀착해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고성불패(高聲不敗) 신화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마치 사회적 공동선의 체현자인 양 사법부를 대신해 사회적 심판 기능마저 수행하려 하고 있다.

    그렇다면 ‘야당 NGO’들은 어떠한가? 뉴라이트 등장 이후 참으로 많은 단체가 깃발을 올리고 있다. 어떤 이들은 ‘우파의 르네상스’라며 반색하고 있는데 정말 그럴까? 깃발만 올리고 바로 개점휴업에 들어가는 대표자 명함용 단체, 빈약한 내실을 가리기 위해 유명 정치인을 초청해 화려한 ‘언론발’로 허장성세(虛張聲勢)하는 얄팍함, 아무리 지적 재산권이 통용되지 않는 세계라지만 남의 아이디어를 자기 작품인 양 떠들고 다니는 뻔뻔스러움, 주사파 출신 386의원들에게 고해성사를 요구하면서도 자신이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뉴라이트로 ‘개종’했는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설명도 않는 이중 잣대, 자신이 주도권을 잡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깽판’을 놓겠다는 소아병…. 좌건 우건 현재 한국의 시민운동에는 삼류가 즐비하다. 

    ‘야당 NGO’에도 3流 즐비 시민운동에 외부 감시 필요 

    정치인은 선거를 통해 심판받고 기업인은 시장에서 평가받지만, 시민운동가에 대한 검증·평가 장치는 미흡하기 짝이 없다. 잘못을 범하고도 살아남기가 가장 수월한 분야가 시민운동이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정치인과 관료, 기업인들에게는 혹독하면서 유독 시민운동가들에게 관대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현재의 시민운동가들은 ‘새벽 쓰린 가슴 위에 찬 소주를 붓던’ 춥고 배고픈 존재가 아니다. 지금은 오히려 시민운동의 과도한 권력화를 걱정해야 할 때다.

    어떻게 할 것인가? 가장 좋기는 시민운동 스스로 자정(自淨)기능을 갖추는 것이다. 그러나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역시 외부로부터의 감시가 필요하다. 나는 그 역할의 상당 부분을 언론이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도 부합된다. 이제 언론은 주저함 없이 시민단체와 운동가들을 철저히 검증해 위선자들과 무자격자들을 솎아내야 한다. 그것이 중장기적으로 시민사회의 건강성을 확보하는 길이다. 선진국은 일류 정치인과 관료, 기업인들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류 시민운동가들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제 시민운동가라는 이유 때문에 대접받던 시대는 끝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