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3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강인선 정치부 차장대우가 쓴 칼럼 <변화한 한국에서 '낙제생'이 되고 싶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워싱턴 특파원 근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한국에서는 모든 일이 너무 빨리 변해서 일주일만 떠나 있어도 진도 따라잡기 어렵다는데, ‘촌사람’ 노릇을 할 일이 걱정돼 한숨부터 나왔다. 그런 나에게 친구들이 이런 충고를 해주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유행도 세태도 급변하기 때문에 ‘축적’의 강점이 별로 없다. 한국에서 10년 계속 산 사람이나 온 지 열흘밖에 안 된 사람이나 황당하기는 매한가지인 사건이 수시로 터진다. 그런 큰 사건을 두세 번 겪으면서 같이 분노하고 기막혀 하다 보면, 어느새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느낌은 사라질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겉으로는 ‘세상에 이럴 수가’ 싶은 사건들도 알고 보면 그리 새로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 사회가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지만 본질적인 변화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정권이 바뀌어도 비슷한 사건이 계속 발생한다. 세부사항은 좀 다른 것 같아도 구조는 같은, 언젠가 일어났던 사건의 재탕에 불과하다. 문제가 생겼을 때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뜯어고치지 않기 때문에 비슷한 사건은 계속 일어난다.

    과연 그럴까? 인천공항에 발을 딛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짐 찾는 곳에서부터 삶의 치열함이 밀려왔다. 교통체증으로 꽉 막힌 도로만 빼면, 모든 것이 어지러울 정도로 핑핑 돌아갔다. 그 속도감은 황홀하고도 심란했다. 일상생활의 속도감은 감동적인 반면, 매일 빠르게 전개되는 각종 사건을 이해하는 일은 간단치 않았다.

    컴퓨터가 고장 나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었더니 다음 날로 사람을 보내주었다(미국이라면 일주일 후에 왔을 것이다). 집수리를 하려고 알아보니 “언제든 하고 싶을 때 시작해서 일주일이면 끝낼 수 있다”고 한다(미국에서는 석 달 기다려 3 주 동안 수리했을 것이다). 그리고 은행 창구 직원의 신기에 가까운 빠른 일처리! 느려터진 나라에서 느꼈던 속 터지는 심정이 다 씻겨 내려갔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터지는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는 일은 혼란스러웠다. 워싱턴에서도 마음속 안테나의 반은 한국을 향해 있었는데도, ‘현장감’이 더해지니 무심코 지나치던 사건들도 마음이 찌릿하도록 다가왔다.

    귀국 후 며칠은 모든 사회현상을 ‘양극화에 대입시켜 이해하기’ 연습을 해야 했다. 마치 ‘전투지역’에 들어선 듯한 긴장감과 강박감에 사로잡혔다. 론스타 탈세 사건, 김재록 로비의혹 사건, 현대차 비자금 사건 등이 연달아 터지는 것을 보고 있으니 사건이 폭우처럼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또 며칠이 지나자 다시 그 모든 것에 익숙해졌다. 많은 일들이 ‘데자 뷔 현상’처럼 어디선가 보고 경험한 듯했다.

    미국 사회는 느리고 치밀하다. 사실 이제 ‘은근과 끈기’는 우리가 아니라 미국사람들의 것이다. 질기기로 말하자면 미국 사람들처럼 독한 사람들이 또 있을까 싶을 때가 많다.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 신분노출 사건인 리크게이트는 처음 문제가 불거진 후 부통령 비서실장이 물러나기까지 2년도 넘게 걸렸다. 9·11 테러 진상조사 보고서도 사건 발생 3년 후에야 나왔다. 30년 전에 나온 워터게이트 스캔들 상원보고서가 아직도 읽히는 나라다.

    그런 환경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니 시험과목은 두 배로 많고 진도는 네 배쯤 빠른 학교로 전학 온 것처럼 벅차고 어리둥절하다. 그래도 ‘무엇이 얼마나 변했을까’하는 기대에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즐겁다. ‘귀국 후 적응코스’에서 고전해도 좋으니까,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사회에 본질적인 변화가 별로 없었다던 친구들의 말이 틀렸으면 좋겠다. 변화에 적응 못해 좌절할지라도, 업그레이드된 변화 앞에 ‘즐거운 낙제생’이 될 각오는 얼마든지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