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27일자 오피니언면에 동아광장란에 남진우 명지대 교수가 쓴 글 '역사 바로 세우기와 역사 뒤집어 보기'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최근 사극으로는 보기 드문 흥행 성과를 기록하며 많은 화제를 낳고 있는 영화 ‘왕의 남자’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작품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한 남자 배우의 ‘미모’에 대한 열기 어린 반응이나 그동안 금기시돼 왔던 동성애에 대한 적극적 수용도 적잖이 문제적이지만 특히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작품이 내장하고 있는 정치사회적 의미일 것이다. 이 영화를 둘러싸고 현실 정치권에서 여야 간에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의 해석과 공방을 벌이는 것을 보면 작품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이 영화가 현재 우리 정치 현실의 예민한 성감대를 건드리고 있다고 분명하게 여겨진다.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의 전작 ‘황산벌’을 염두에 두고 볼 때 이 감독의 관심사는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난다. 역사 뒤집어 보기를 통한 권력 비판이다. ‘황산벌’에서 여성과 민초의 시각을 빌려 남성 중심적, 영웅 중심적 역사 해석에 이의를 제기한 감독은 ‘왕의 남자’에선 천민으로 범죄자이기까지 한 광대의 시각을 빌려 왕과 중신으로 이루어진 봉건적 세계에 대한 우리의 관념에 교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왕과 장군들이 목숨을 건 승부를 하는 전장의 풍경을 비속어와 사투리를 통해 한순간에 웃음판으로 만들어 버리는가 하면 황음(荒淫)에 취한 폭군과 도덕적 명분을 앞세운 사대부 간의 대립을 광대의 흉내 내기와 익살을 통해 한순간에 전복시켜 버린다. 

    따라서 이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역사는 끊임없이 ‘뒤집어 보는’ 대상이라는 점을 인식하게 된다. 특정 정권이 역사를 바로 세운다거나 과거사를 재평가한다고 나서는 것은 결국 한 시대의 지배권력이 행사하는 이데올로기적 작업의 일환으로 귀착되지 않을 수 없다. 예술적 상상력에 가치가 있다면 바로 이러한 지배이데올로기에 균열을 내고 대상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한다는 데 있다. 역사는 그렇게 단순하고 편리하게 정리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며 늘 모순 속에서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왕의 남자’에서 연산군이나 당시 중신들은 쉽게 선과 악으로 재단해서 어느 한편을 들기 어려운 면모를 하고 있다. 연산군도 단지 폭군이 아니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존재로 그려져 있으며 중신들의 모반 또한 나름대로 명분이 있는 것으로 제시된다. 역사교과서가 가르쳐 주는 익숙한 설정을 따라가는 대신 왕권과 신권(臣權)의 대결이라는 ‘그들만의 싸움’에서 비켜나 있는 광대의 시각을 제시한다.

    광대가 표상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체제 내에서 웃음을 무기로 체제 바깥을 환기시킬 수 있는 존재이다. 그는 가장 비천한 존재이면서 가장 고귀한 존재를 연기할 수 있으며 현자이면서 바보이고 악당이면서 혁명가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모호하고 이율배반적인 존재이다. 영화 속에서 남성이면서 여성적 매력을 뿜어내는 공길이라는 캐릭터가 그러한 것처럼.

    도입부에서 놀이패의 우두머리를 죽이고 달아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영화의 중심인물인 광대 장생과 공길은 도망 다니는 노예의 신분이며 그들은 끝없는 탈주를 자신의 존재 근거로 삼는 자들이다. 속인들의 장터에서 왕의 궁정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항상 길을 떠나는 여행자의 형상을 하고 있다. 반면 최고 권력의 자리를 놓고 극한 대결을 벌이는 왕과 중신들은 집착과 정주(定住)를 속성으로 하고 있다. 죽은 어머니에게 고착된 연산군이 그러하고 과거 자신들이 저지른 비리에 제 발 저려하는 중신이 그러하다. 그들은 광대의 유희를 유희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광대의 연기와 실제를 구분하지 못한다. 극중극의 형식을 빌린 영화 속의 몇몇 장면은 과거의 망령에 붙들린 채 열등감과 피해의식 속에서 자멸해 가는 존재들의 슬픈 운명을 때로는 비감하게, 때로는 희화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눈을 잃은 장생과 공길이 줄타기를 하면서 다시 태어나도 광대가 되겠다고 선언하는 대목은 아마도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장면일 것이다. 광대는 상하의 수직적 질서를 전도(顚倒)하면서 사람들 앞에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존재이다. 그는 전제군주의 명령을 거부하고 변신과 변형을 통해 닫혀 있는 공간에 숨구멍을 튼다. 그의 신성 모독적이고 반권위주의적인 담론은 장난과 웃음으로 포장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괴력이 있다.

    역사를 특정 정치세력이 독점해야 할 일종의 점령지처럼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귓전에 메아리치는 광대의 웃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