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26일자 오피니언면에 안국신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가 쓴 포럼 '끝나지 않은 노무현 불경기'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경기가 좋다 보면 어느 땐가 나빠지고 나쁘다 보면 어느 땐가 좋아진다. 경제학이 가르치는 경기변동의 기초사실이다. 

    우리 경제는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 올해 5%대의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대부분의 기관이 예측하고 있다. 반가운 소식이다. 대통령도 연초 성명에서 경제가 지난 3년간은 어려웠지만 이제 전체적으로 좋아지고 있으며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여 내용 면에서도 좋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경기는 2000년 8월에 제7순환의 정점을 기록했다. 종전의 평균 수축기간은 19개월이다. 이에 걸맞게 경기는 2002년 봄부터 견고한 회복세를 보였다. 그런데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회복세가 실종되고 더블 딥의 경기침체가 뒤따랐다. 그 결과 작년 여름이 경기순환의 바닥이라 치면 수축 국면이 사상 유례없이 5년이나 지속됐다. 언론이 경제위기설과 파탄론을 들먹인 이유이다. 무엇 때문에 경기가 그렇게 오래 나빴을까?

    참여정부는 북핵 문제, 이라크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유가 등의 각종 해외 충격과 카드채, 신용불량자 문제 등 이전 정권의 정책 실패 탓으로 돌린다. 과연 그럴까? 지난 3년간 세계적인 호황이고 수출이 연속 두자릿수로 늘었기 때문에 각종 해외 충격이 오랜 경기침체의 주범이라 할 수 없다. 앞 정권의 정책 실패도 설득력이 낮다. 가계부채나 신불자와는 관계없는 고소득층의 소비와 기업의 투자도 아주 부진했기 때문이다.

    미증유의 환란이 일어났을 때의 경기수축기간도 29개월로 2년반이 되지 않았다. 환란 못지 않은 다른 특수한 요인을 찾아야 한다. 필자는 참여정부 집권 실세들의 황당한 언행과 정책이 특수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참여정부 불경기’ ‘노무현 불경기’인 것이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집권 실세들은 집권 초부터 실로 대담한 말들을 거침없이 토해냈다. ‘노동운동이 설사 불법이라도 폭력적이지 않으면 사회적 세력의 균형화 차원에서 용인한다’ ‘지배세력 교체를 위해 수도를 옮긴다’ ‘오욕의 역사를 그대로 두고 1인당 소득 3만달러로 가 봐야 무슨 소용이냐’ ‘시민혁명이 진행중이다’. 이런 겁주는 말들과 더불어 정치논리로 이른바 4대 개혁법안과 수도 이전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이것들이 대기업과 고소득층 등 이른바 가진 자들의 경제하려는 의지를 얼마나 꺾었는지 참여정부는 모른다. 대통령도 지적했듯이 시장경제는 심리라고 하지 않는가.

    통계청이 작성하는 소비자 기대지수가 필자의 주장을 뒷받침해 준다. 대통령이 미증유의 탄핵을 당했는데도 2004년 3월부터 5월까지 소비자 기대지수는 전반적으로 탄탄한 회복세를 보였다. 고건 당시 총리가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했고, 이를 본받아 대통령이 복귀하면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한 때문이다. 특히, 4월의 소비자 기대지수는 참여정부 들어 가장 높았다. 그러나 국민이 기대했던 바와는 달리 대통령이 복귀하여 과거사 청산을 내세우며 서슬 퍼렇게 나오자 소비자 기대지수는 급격하게 떨어졌다. 

    시장경제와 경제논리를 우습게 아는 집권 실세들의 행태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나쁘다 보면 어느 땐가 좋아질 때가 있다는 시장경제의 속성 덕분에 ‘노무현 불경기’가 끝난 것 같다. “당장은 증세(增稅) 주장 안하겠다”는 데에서 종전보다 좀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참여정부의 독선적인 정치논리와 거대담론은 별로 나아질 것 같지 않다. 따라서 경기회복세는 예전의 V자형보다 L자형에 가까울 것으로 전망된다. 

    여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앞으로 10년은 더 집권해야 한다고 자가발전하고 있다. 현 여당이 더 집권하더라도 참여정부가 보여 온 돈키호테 속성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한 일본보다 더한 ‘잃어버린 15년’을 경험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