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25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이신우 논설위원이 쓴 시론 '유시민 대통령'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필자는 지난해 10월13일자 문화일보 칼럼(제목 ‘강정구 구하기’)을 통해 국회의원 유시민씨가 차기 대통령에 출마할지 모른다는 시중 유머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런데 말이 씨가 된다더니 이런 농담이 현실화할지도 모를 일이 벌어지고 있다. 유 의원이 국민연금 개혁을 내걸고 보건복지부 장관에 내정된 것이다. 

    누구든 간에 한국사회 최대의 국정과제로 꼽히는 국민연금 개혁에 성공한다면 그는 차기 대통령감으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 국민연금 개혁은 내용과 가치면에서 ‘청계천 효과’정도쯤이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국민연금은 우리 사회 최대의 정치적 과제이며 그런 만큼 웬만한 정치인은 감히 손도 대지 못하는 풀기 어려운 숙제로 꼽힌다. 

    집권 열린우리당이나 야당인 한나라당은 이를 놓고 서로 내 손에 피묻히고 싶지 않다는 태도다. 책임회피적이고 비겁하다는 점에서 여야가 전혀 다를 바 없다.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 위기가 거론될 때마다 혼자 숲속으로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속삭인 것만 봐도 이것이 얼마나 폭발성이 큰 주제인가를 짐작케 한다. 여야도 이 문제에 관한한 책임회피와 비겁함에 전혀 차이가 없다. 

    한국의 국민연금 제도는 출발부터 잘못돼 있다. 적게 내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자연히 오는 2036년부터 적자로 돌아서고 2047년에는 연금재정이 바닥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백주대로에서 정부가 며칠만 지나면 뻔히 드러날 거짓말을 한 셈이다. 우리 사회에 횡행하는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유시민 장관내정자는 바로 이 국민연금 개혁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이 과업은 어찌 보면 세상의 돌팔매질마저 각오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만일 유 내정자가 이 문제를 풀기만 한다면 필자는 본란을 통해 과거의 비례(非禮)를 정중히 사과할 것이며, 그런 사과를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런 사과를 할 수 있게 해준 유 내정자에게 진심으로 감사해할 것이다. 

    다만 조건이 있다. 유 내정자는 국민연금만 언급하고 있으나 한국사회의 연금제도는 국민연금만 원죄를 짊어지고 있는 게 아니다. 군인연금을 포함한 공무원연금도 국민연금 이상으로 재정에 부담을 주고 있다. 군인연금은 이미 1973년에 기금이 고갈됐고, 공무원연금은 2003년부터 막대한 적자를 내는 상태다. 그런데도 적자 전액을 정부예산으로 메워주고 있다. 지난해엔 공무원연금에 7300억원, 군인연금에 8500억원의 보전금을 책정했다. 

    공무원연금은 국민연금에 비해 보험료를 덜 내면서 연금은 훨씬 많이 받도록 설계돼 있다. 따라서 일반 국민은 국민연금으로 손해보는 다른 한편으로 공무원이나 군인연금의 적자까지 떠안아야 하는 불쌍한 인생들이다. 게다가 지금 국회에 계류중인 정부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의 수익비율은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참여정부라면 유달리 ‘평등’을 주창하는 집권세력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연금에 관해서만은 차별의식이 의외로 강한 것 같다. 집단적 저항력이 큰 세력이나 이익단체에는 혜택을 그대로 유지한 채, 힘없는 일반 백성에게만 협박과 체벌을 강요하려드는 꼴이다. 이러니 국민연금만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 바꾸자면 국민 가운데 어느 누가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지난해 11월 국민연금 적용 대상인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임직원에 대해 제한적으로 공무원으로 간주, 공무원연금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는 사건이 있었다. 연금에 관해서라면 첨단 지식을 갖춘 사람들이 국회의원들과 결탁해 집단으로 국민연금에서의 탈출을 시도한 꼴이다. ‘가라앉는 배와 쥐’에 관한 속담에서 보듯 국민연금이라는 배가 가라앉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런데도 유 내정자가 집단으로 표가 움직이는 공무원, 군인, 교원집단은 외면한 채 국민연금만 갖고 개혁 운운한다면 그것은 국민 전체에 대한 배신이다. 얼마전 ‘약팽소선(若烹小鮮)’이라는 사자성어를 배운 바 있다. 작은 생선을 구으면서 젓가락으로 이리저리 뒤집듯, 힘없는 백성을 들들 볶지말라는 뜻이란다. 아무리 연금개혁에 대한 ‘원천기술’을 갖고 있다고 떠들어댄들 그것은 한마디로 대국민사기극에 불과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