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9일자 오피니언면에 변호사 이두아씨가 쓴 '시론'입니다. 네티즌 여러분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저는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강 대사님의 후배 변호사입니다. 제게 강 변호사님은 10년 전 서울 인사동에서의 하루 저녁 이후 아름답게 얼굴을 붉히는 ‘꿈꾸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계십니다. 지금 강 변호사님은 대한민국 여자 중고생이 닮고 싶은 인물 중 부동의 1위가 되셨습니다.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고도의 전문직 종사자이자 아마추어 춤꾼으로 얽매이지 않는 삶을 영위하는 사람을 청소년들이 닮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편이 이상한 일이겠지요.

    대한민국 여성인권대사를 맡고 계신 강 변호사님께 8일부터 10일까지 서울에서 개최되는 북한인권국제대회에 참석해달라는 초청장을 보냈더니 “참석이 어렵겠다”는 회신을 주셨습니다. 지난 4월 제네바 유엔인권위원회에 불참하셨을 때처럼 무슨 사정이 있으시겠지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싸해졌습니다. 그런데 강 변호사님께서 인권주간을 앞두고 방글라데시·네팔·스리랑카 등을 도는 인권여행을 하셨다는 언론 보도를 접하고 서운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인간은 악하기보다는 약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존을 위한 폭력이 소수자와 약자를 상대로 이뤄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인권이 투쟁을 통한 쟁취의 대상이었지만 이곳에서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보호막”이라는 말씀, 그리고 “아시아 여성 인권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호소하신 대목에서 안으로 곰삭인 아픔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여성 인권 문제는 바로 우리 옆에도 있습니다. 지난달 UN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되었습니다. 그 문헌은 ‘북한 여성의 인권 및 기본적 자유의 지속적인 침해, 특히 매춘 또는 강제결혼을 목적으로 하는 인신매매, 강제유산, 그리고 송환된 여성의 자녀를 공권력이 살해하는 일’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2003년 미국을 공식방문하셨을 때 “6·25 동란 당시 미국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지금쯤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북한 어딘가의 정치범 수용소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라고 강제수용소의 존재와 인권유린의 실태를 확인해 주셨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도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며 인권 문제는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인류가 양보해서는 안 되는 지고(至高)의 가치라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언명하시곤 했습니다.

    그래서 강 변호사님께서 지난달 16일 국제인신매매방지 전문가회의에 참석, “이제는 한국 정부도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말해야 할 때”라고 발언하신 것은 중요합니다. 국제사회가 “한국인들은 자기 이익에 따라 그때그때 말과 행동을 따로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근거와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선배님이 여전히 ‘꿈꾸는 사람’, 얼굴을 붉힐 줄 아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아 계시는구나 싶어 그날 하루 종일 행복했습니다. 

    강 변호사님, 엄동설한에 목숨을 걸고 압록강과 두만강의 살얼음을 건너, 가족들의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식량을 구하고자 자진해서 인신매매에 나서야 하는 북한 여성들의 눈물을 닦아주십시오. 당신의 말 한마디, 발걸음 하나는 혹독한 인권 탄압에 내몰리고 있는 북한 여성들에게도 꽃이요 희망이며 빛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 비겁한 시대의 침묵을 깨어주십시오. 

    이번 서울 북한인권국제대회에서 뵙기는 어렵겠지만 강금실 여성인권대사님과 북한 동포들을 위한 노란 손수건을 같이 매달고 싶습니다. 강 변호사님의 건강과 건승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