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8일자 오피니언면 '중앙시평'란에 성균관대 김일영 교수(정치학 전공)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강정구 교수 사건과 북한 인권 문제가 보수와 진보의 차원에서 논의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황우석 교수 파문까지 보수와 진보로 갈려 논란을 벌이는 것은 어쩐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강 교수 사건과 관련하여 그를 감싸는 진보 진영은 기본권 보호, 특히 사상과 양심의 자유라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조한다. 그들은 그 연장선상에서 한국 국민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제약하는 국가보안법을 하루빨리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강 교수의 발언을 문제 삼는 보수 진영은 남북분단이라는 한국의 특수성을 중시한다. 분단 상황에서 국기(國基)를 뒤흔들 정도의 발언까지 허용할 수는 없으며, 더구나 그의 발언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훼손했다고 하면서 국가보안법이라는 코리안 스탠더드를 적용하라고 요구한다.

    강 교수 사건에서 한국의 보수와 진보가 보이던 태도는 북한 인권 문제로 가면 완전히 역전된다. 이번에는 보수 진영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진보 진영은 코리안 스탠더드를 들고 나온다. 보수 진영은 인권이라는 인류보편적 기준에 입각해 북한의 김정일 정권에 북한 주민의 인권을 개선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정부와 진보 진영에도 그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진보 진영은 북한 인권 문제는 분단 상황이라는 한국적 특수성에 입각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압박을 가하기보다 원조와 교류 협력을 통해 장기적인 개선을 도모하는 우회적 접근이 낫다는 것이다.

    요컨대 박정희 대통령의 '한국적 민주주의'와 김정일의 '우리식 사회주의'를 놓고 전자는 이해해도 후자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보수이고 그 역이 진보다. 강 교수 사건과 북한 인권 문제는 이런 두 진영이 각각 필요에 따라 글로벌 스탠더드와 코리안 스탠더드를 선택적으로 갖다 쓴 결과 논란이 증폭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황 교수 파문은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며, 보수와 진보로 확연하게 갈라질 만한 문제가 아니다.

    애초 황 교수 파문은 난자 취득 과정의 적법성과 윤리성 문제로 시작되었다. 황 교수를 비판하는 측은 생명윤리와 여성인권 보호라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들고 나왔고, 옹호하는 측은 코리안 스탠더드에 입각해서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지적하는 데 무게를 두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보수와 진보가 황 교수에 대한 찬반으로 확연하게 갈리지는 않았다. 가톨릭 같은 보수적인 종교계도 윤리적 이유 때문에 반황우석 진영에 가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태가 황 교수 연구 결과의 진위문제로 번지자 진보는 반황우석, 보수는 친황우석으로 갈리는 기묘한 양상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이 때 비판 진영은 알 권리와 진실규명이라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들고 나왔고, 옹호 진영은 황 교수의 연구 결과가 지니는 국가(애국)적 의미라는 코리안 스탠더드에 방점을 찍었다.

    그러나 이런 평가 기준의 차이가 보수와 진보의 입장을 결정한 주된 요인이었는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보수 언론이 황 교수를 국민적 영웅으로 만들었다는 전제 아래 보수 언론에 대한 찬반 여부가 이 문제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태도를 결정한 측면이 적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진보 진영이 반황우석에 나선 것은 생명윤리나 알 권리 차원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친황우석적인 보수 언론과 싸우는 진보매체를 거들기 위함이 더 컸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 진보매체는 알 권리라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위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반하는 행위, 즉 취재 대상을 속이고 협박하는 행동도 불사했다. 

    최근 여러 논란의 배후에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코리안 스탠더드 사이의 대립이 깔려 있다. 이 점에서 문명 충돌은 국가 간이 아니라 지금 우리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문명 충돌보다 더 심각한 것은 자기 패거리의 이익을 위해 두 기준을 편의적으로 갖다 쓰는 것이다. 작금의 한국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