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8일자 오피니언면 '태평로'란에 이 신문 진성호 인터넷뉴스부장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택시를 타고 MBC 가자고 말하기가 겁난다.”

    MBC 직원이 했다는 이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PD수첩 사태’로 지금 MBC는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MBC 제작진의 부도덕한 함정 취재, 말 바꾸기, 안일한 조직 시스템의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인터넷에는 화난 네티즌들의 함성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네티즌들은 이미 PD수첩 광고 12개를 ‘통째로’ 사라지게 만들었고, 뉴스데스크 광고도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있는 중이다. MBC 인터넷 홈페이지는 ‘저주’가 쏟아지는 전장(戰場)이 돼 버렸다. YTN이 PD수첩의 강압 취재를 특종보도한 다음 날, 조선닷컴도 올 들어 가장 많은 기사 클릭 수를 기록했다. 조선닷컴 데스크로선 ‘전율할’ 수준이었다.

    이 대목에서 갑자기 기자는 지난해 봄을 생각했다.

    “미친 놈은 때려잡는 것이 과거의 상식…옛날 방식이 맞다” “조선일보를 지지한다는 사람이 대낮에 활개 치는 세상이 더 이상 아니다”…. ‘국민의 힘’ 등이 지난해 4월 21일 낮 서울시의회 앞에서 개최한 안티조선 집회에서 공영방송 노조위원장이 내뱉은 말이다. “(한나라당 찍은 것을 예로 들며) 전 국민이 보는 TV에서 공개적으로 내가 ‘또라이’라는 얘기를 누가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말도 했다. 당시 한국PD연합회장은 “조선일보는 요괴”라고 했다. 마이크를 잡은 연사는 점심 식사를 마치고 회사로 들어서는 조선일보사 간부나 기자들 이름을 거론하며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 기자는 적어도 택시를 잡아타고 “조선일보 가자”고 말하는 것이 겁나지 않았다. 정권을 등에 업고, 코드에 맞는 광기어린 말들을 쏟아내는 이들은 무섭지 않았다. 당시 공영방송 노조와 PD협회 간부들의 이런 생각들은 그들이 생산하는 프로그램에 고스란히 담겨 왔다. ‘PD저널리즘의 폐해’란 지적을 받은 이번 PD수첩 사태는 어쩌면 이런 그들 정신세계의 반영물일지 모른다. 위험천만한 시한폭탄이 뒤늦게 터진 것은 아닐까. 지금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PD수첩의 비극은 황우석 박사 연구의 윤리성 문제를 취재했다는 이유 때문은 아니다. 황우석 팀도 결코 언론 보도의 성역(聖域)이 될 수는 없다. 문제는 취재 과정에서의 비윤리성과 과학저널리즘의 본령을 어긴 파울플레이다. 물의를 빚은 PD수첩 연출자는 지난 6월 27일 방송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신의 아들과의 전쟁’ 편에서 병역 비리 실태를 추적해 시청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은 PD였다. 

    조선닷컴의 PD수첩 관련 기사에는 “MBC가 비판받으니 조선닷컴 신났구나”라는 투의 댓글도 적지 않게 달린다. 그렇지만 그게 과연 전적으로 ‘남의 일’일까? 그렇지는 않다. 그래서 ‘묘한 동병상련(同病相憐)’마저 느낀다. 아무리 환영받던 기자나 연출자도 한 순간의 ‘부당한’ 기사·프로그램 때문에 전 국민의 공적이 될 수도 있다는 현실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기자에게 저널리즘 원칙이 있다면, PD에겐 다큐멘터리 정신이란 게 있다. 기자가 아니라 PD가 취재를 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는 식의 주장엔 동의할 수 없다. 그보다는 ‘공정성’이란 공영방송의 가장 초보적인 룰을 파괴한 PD수첩 팀의 완패다. 

    기자든, PD든 정작 무서워해야 할 것은 정권의 탄압이나, 비이성적인 일부 집단의 광기어린 공격이 아니다. 직업인으로서 최소한의 기본을 지키지 못해 독자와 시청자로부터 외면받는 일이다. 

    ‘PD수첩’의 비극을 ‘기자수첩’이 밟아선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