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6일자 오피니언면 '광화문에서'란에 실린 이 신문 이기홍 문화부 차장의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1. 결혼을 앞둔 신부답지 않게, 후배의 얼굴엔 때때로 슬픔이 어렸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데…. “지난 일요일엔 아빠가 ‘딸을 위한 특식 요리’까지 해주시더라고요.” 홀아버지 걱정이 눈에 가득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유일하게 마음 붙일 곳인 딸과의 헤어짐을 앞두고, 오히려 더 명랑해지려 하는 아버지가 그럴수록 더 안쓰러워 보인다고 했다. 문득 여름에 전남 여수 앞바다의 한 섬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다. 

    아침 안개가 끼어 있던 나루. 노인 부부가 소를 끌고 왔다. 어미 소 옆엔 송아지가 따라왔다. 어미 소도 송아지도 머리만 흔들 뿐 한없이 조용하고 순했다. 배가 들어오자 노인 부부가 일어섰다. 배에서 나온 중년 남자가 송아지를 데리고 배로 들어갔다. 송아지는 뒷발에 힘을 주고 버티다가 결국 배 안으로 사라졌다. 어미 소는 눈망울만 굴리며 보고 있었다. 노인 부부는 연방 어미 소의 머리와 등을 어루만져 줬다. 배가 떠나자 노인 부부는 소의 고삐를 쥐고 다독였다. 갔다, 이제 집에 가자. 묵묵히 따라가던 어미 소는 머리를 돌려 바다 쪽을 한동안 바라보다 낮은 울음소리를 냈다. 그리곤 다시 순한 발길을 옮겼다.

    #2. “노 후보가 고맙다고 하기에, 국민에게 고맙다고 하라고 해 줬지. 국민에게 큰 빚을 졌잖아.” 2003년 2월 송기인 신부가 한 말이다. 1982년 한 회식자리에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 등장인물 이름을 쭉 꿰는 30대의 변호사에게 송 신부는 “복잡한 이름을 어떻게 다 외우노?”라고 물었다. 변호사는 “이런 머리 갖고 대학 문도 밟지 못하게 된 사회가 정상적 사회입니꺼?”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시작된 송기인-노무현의 관계는 ‘정신적 대부’로 모실 만큼 신뢰와 호의로 충만했다. 

    호의를 베푼 사람에게 잘해 주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파울루 코엘류의 소설 ‘오 자히르’에는 ‘호의은행’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은행에 예금을 맡기듯 사람들은 호의를 베풀고(예금하고), 또 받아들이며 산다. 노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한 예로 지난 수년간 TV토론 등을 통해 그에게 호의를 예금한 언론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고급 승용차가 제공되는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 면에서 송 신부는 ‘노무현 호의은행’의 VIP 예금주이면서도 호의를 정말 호의로만 끝내려 했던 거의 유일한 인물이었던 듯싶다. 그런 송 신부가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된 것이 보답 차원이라곤 추호도 생각지 않는다. 그가 장관급 지위에 혹할 그런 부류가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기자는 집권세력의 ‘이념적 둥지로의 회귀 욕구’를 다시금 확인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 노 대통령은 최대의 예금주인, 자신에게 표를 준 국민의 호의를 저버린 것은 아닐까. 대선 당시 노사모류의 ‘이념적 지지층’은 후보 교체론이 나올 정도로 얄팍했지 않았던가. 

    송 신부는 대선 후 “내 소원은 앞으로 5년간 노 대통령을 만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다짐했던 ‘이별’은 이뤄지지 않았다. 

    홀아버지를 두고 결혼하는 딸의 안쓰러워하는 마음, 송아지와 헤어지며 나직이 울고 돌아서는 어미 소의 슬픔을 기자는 ‘아름다운 이별’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1980년대식 이념으로 뭉친 동지들에게 그 같은 이별은 너무도 어려운 일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