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5일자 오피니언면 '시론'에 올라온 구재회 프리덤하우스 북한인권국장(정치학 박사)의 이말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오는 10일은 세계인권선언이 선포된 지 57주년 되는 날이다. 전 세계의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억압에 희생된 이들을 상기하며, 지금도 처참한 국가적 압제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권리 개선 노력을 재다짐하게 될 것이다. 이번 주에 많은 한국인들은 ‘인권 주간’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며, 그 열기는 서울에서 열리는 북한인권국제대회를 통해 절정에 달하게 된다. 

    최근까지도 한국민의 목소리는 너무나 조용했다. 이러한 침묵은 국내외적으로 많은 의구심을 불러일으켰고, 외국에선 얼떨떨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당혹해했다. 한반도의 남쪽은 자유 아래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 반면, 북쪽은 김정일이라는 한 개인의 변덕에 수갑과 족쇄가 채워진 채 살아가고 있다. 

    미국의 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는 북한 내의 비참한 상황을 지난 33년 동안 ‘세계자유상황 보고서’(Freedom in the World)를 통해 지적해 왔다. 북한은 언제나 최저수준인 7-7을 기록, 세계에서 가장 억압이 심한 정권인 ‘최악 중의 최악’ 명단에 포함된다. 

    다른 국제기구들은 보다 상세한 보고서들을 내놓고 있다. ‘미국 북한인권위원회’는 ‘비밀 수용소:북한의 강제수용소를 폭로하며’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캄보디아와 르완다 학살에 관한 기록을 남긴 바 있는 조사관 데이비드 호크는 이 보고서에서 증언과 위성사진들을 통해 숨겨진 비밀수용소들의 대규모 인권유린 상황을 폭로했다. 내용이 워낙 구체적이고 사실적이어서 어느 누구라도 믿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지난 10월 두 차례와 최근 3주간 한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프리덤하우스의 대표 자격으로 많은 한국 정부 관리들과 정당 관계자들을 만났다. 비공식으로 진행된 만남에서 관리들은 한국 정부가 북한 이슈들을 제기하지 못하는 이유들을 말해줬다. 그들은 심각한 인권유린이 벌어지고 있지만 인권문제 제기가 남북한 관계를 손상시킬 것이며, 그 결과는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강조했다. 따라서 평화가 최선의 방책이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전쟁이냐, 포용이냐’는 논란은 잘못된 이분법이다. 인권·자유·민주주의 운동을 벌이는 입장에서는 포용 정책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사실, 우리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포용을 지지한다. 우리는 지역안보와 인간의 권리 수준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속적인 평화는 독재정권들이 문명화된 국제사회의 가치와 기준을 받아들일 때만 이뤄질 수 있다. 냉전 기간 중 미국과 구(舊)소련의 대립과 위협은 세계 안보에 훨씬 더 위험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구소련의 평화적 개방을 촉진했던 비정부기구들의 활동 ‘헬싱키 프로세스’를 통해 정치·경제·안보 문제들이 논의되고 다뤄진 전례가 있지 않은가. 

    한국과 미국의 많은 정책 결정자들이 핵 문제와 인권은 분리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이 정책에선 의견이 엇갈릴 수 있지만, 북한 정권을 혐오하는 데는 이견이 없다. 민주당 중진들도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전제로 현저한 인권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공언한 바 있다. 다시 말해서, 북한이 체제 보장을 받으려면 인권 개선과 그에 따른 워싱턴과의 관계 정상화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핵 문제와 인권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얘기다. 

    세계 여론을 효과적인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최근 프리덤하우스는 북한 인권 실상을 알리기 위한 1년간의 국제 캠페인을 시작했다. 프리덤하우스는 다른 민간단체들과 함께 미국·한국·중국·일본·유럽국가들이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하도록 설득하고 영향력을 가하고 있다. 

    프리덤하우스의 활동은 북한 정부에 직·간접적인 압력을 넣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또 중국 정부와 한국 정부에도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촉구할 계획이다.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북한 내의 인권 상황은 남한의 형제들이 반드시 문제 제기를 해야 할 사안이다. 침묵은 더 이상 방안이 될 수 없다. 행동해야 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