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일자 오피니언면 '변용식 칼럼'에 이 신문 변용식 편집인이 쓴 글입니다. 네티즌 여러분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1등은 없다는 것을 새삼스레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미국 최대의 자동차제조회사 GM(제너럴 모터스)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GM은 세계 최대의 제조업체이자, 제조산업의 스탠더드 그 자체였다. 미국 자동차시장에서 점유율은 절반이 넘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고급승용차 캐딜락은 아메리칸 드림의 표상이기도 했다.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 1950년대 GM의 현직 사장으로 있다가 국방장관으로 발탁된 찰스 윌슨은 미 상원 군사위원회에 나와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정도였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1967년 ‘6일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 총리를 미국 대통령이 만났다. “당신네 나라의 뛰어난 장군 몇 사람을 우리 장군들과 바꿀 수 없겠는가?”이스라엘 총리는 답했다. “제너럴 모터스를 주면 그렇게 하겠다.” GM은 영원히 무적(無敵)인 것처럼 보였다.

    지난달 저세상으로 떠난 피터 드러커 교수를 경영학의 우상으로 만들어 준 것도 GM이었다. GM은 아직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드러커를 초청해 당시 알프레드 슬론 사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인터뷰를 허락하면서 기업 경영을 연구하게 했다. 여기서 1946년에 나온 책이 그를 일약 경영학의 대가로 만든 ‘기업의 개념(The Concept of the Corporation)’이며, 1980년대까지 미국 기업의 4분의 3가량이 이 책의 지침에 따라 분권적 모델을 택했다고 한다.

    모든 사물의 이치가 그렇듯이 가장 잘 나갈 때가 쇠퇴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GM은 비만해지기 시작했다. 자동차노조(UAW)는 임금·연금·의료혜택 비용을 끊임없이 올렸다. 1970년대에는 넉넉한 연금과 의료보험을 갖고 50대 초에 조기 은퇴하는 협상을 밀어붙이기도 했다. 판매·이익이 아무리 줄어도 공장가동률은 80% 이하로 내려갈 수 없게 했고, 공장문을 닫거나 해고하면 회사는 페널티를 물어야 했다. 일거리가 없어 조립 라인을 중단해도 일시 해고된 근로자에게 나가는 비용은 줄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생산직 근로자 천국이 되자, GM의 미국 내 20개 공장 생산직 근로자의 평균 연령은 51세로 고령화되었다. 회사가 어떻게 되든, 근로자 이익에는‘철의 장막’을 친 셈이었다.

    현재 GM의 현직 근로자 한 명은 2.5명의 퇴직자 의료비를 부담하고 있다. 회사가 고정적으로 부담하는 연간 의료비 부담은 60억 달러에 육박한다. 3분의 2 가량이 퇴직자에게 들어가는 비용이다. 자동차 한 대당 평균 1500달러의 고정의료비용이 들어가는 꼴이다. 도요타의 한 대당 의료비는 미국산이 201달러, 일본산이 97달러. 한마디로 경쟁이 안 된다. 노조는 임금과 복지 증진에 주력한 만큼 품질 향상에는 게을리했다. 1980년대가 되자 GM뿐 아니라 포드·크라이슬러 모두 불량품의 대명사가 되었다. 토·일요일에 실컷 놀 생각에 얼렁뚱땅 만드는 금요일 출고차는 절대 사지 말라는 얘기는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경영진도 마찬가지였다. 디자인과 품질 쪽보다는 가격을 깎아주는 마케팅에 매달렸다. 오일값이 치솟는 지금도 기름을 많이 먹는 SUV 개발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한다.

    GM 경영진은 “지난 5년을 다시 경영할 수 있다면…”하고 후회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미국 내 시장점유율은 더는 견디기 어려운 25%대로 내려갔고, 채권은 정크(휴지) 수준으로 폭락했다. GM은 도산위기설과 싸우는 단계까지 왔다. 부랴부랴 5개 공장을 폐쇄하고, 3만 명을 해고하겠다고 나섰지만, 시장에서는 “돼지 입술에 립스틱을 바른다고 달라질 게 있느냐”는 싸늘한 반응들이다.

    GM은 이르면 내년쯤 마른 수건도 다시 짜서 쓴다는 도요타자동차에 1위 자리를 빼앗길 전망이다. 도요타 경영진과 근로자들 모두 GM과는 다른 길을 간 결과다. 도요타 경영진은 미래의 기름절약형 자동차에 엄청난 투자를 했고, 근로자는 회사가 사상 최대의 100억 달러 흑자가 나도 스스로 임금을 동결했다.

    피터 드러커는 “내 책은 미국 기업·공공기관·정부에 즉각적인 영향을 주었지만 막상 GM에서는 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드러커를 태어나게 한 당사자는 변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GM은 이제 “GM에 나쁜 것은 미국에도 나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운명에 처했다. 한국의 잘 나가는 기업과 노동조합에 GM은 정말 훌륭한 교과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