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2>미국을 끌어들여 이용하세

    12장 대한민국(5) 1949년 4월 21일 양자강을 건넌 중공군은 파죽지세로 4월 24일 남경을 거쳐 5울 27일 상해를 함락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장개석의 국민당군을 대만으로 밀어붙이고 10월1일, 북경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 공산당 주석 모택동이 중국을 평

    2011-05-09
  • <371>대마도를 점령하라

    12장 대한민국 ④  건국이 되자마자 제적의원의 압도적 찬성을 받아 가동되었던 반민족행위처벌 특별위원회는 1년이 지난 1949년 9월 22일에 해산되었다.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일제시대 고등계 형사로 악명을 떨친 노덕술을 반민특위가 체포했다가 경찰과 갈등을 일으킨데다

    2011-05-07
  • <370> 눈물 많은 국방장관

    12장 대한민국 ③ 신성모는 윤치영의 뒤를 이어 2대 내무장관이 되고나서 1949년에는 국방장관을 맡았다. 그러나 신성모는 군인 출신이 아니다. 1891년생인 신성모는 당시 58세로 보성전문을 졸업하고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 신채호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다.그러다가 난

    2011-05-06
  • <369>워싱턴에서 배운 것

    12장 대한민국 ②  나는 당파에 구속되지 않는다. 상해임정에 6개월간 머무는 동안 파벌에 싸여 고난을 겪은 후부터 조직의 필요성을 느끼기는 했다.그러나 지도자는 자신의 파벌만 싸안고 국정을 운영하면 안된다고 믿는다. 모두 내 경험에 의한 산물이다. 그래서 건국 이후로

    2011-05-05
  • <368>백범이 추앙받는 날

    12장 대한민국 ①  「백범 선생의 암살로 민심이 흉흉 합니다.」다음날 중앙청에서 열린 각료회의때 내무장관 김효석이 보고하자 회의장 안은 무거운 정적에 덮여졌다. 12부처의 장관이 다 모여 있었다. 분위기에 위축된 듯 김효석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이었다.「안두희의 배

    2011-05-04
  • <367) 김구도 죽다

    11장 분단 (30) 나는 분단된 한반도의 남한을 대한민국이란 이름의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건국했다. 북한이 소련 체제를 모방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건국(建國)! 아무것도 없는 바탕에 새 나라를 세운 것이다.나는 이것을 신라나 고려, 또는 조선의 개국(開國)보다 더

    2011-05-03
  • <366> 한민당이 '독재자' 공격, 왜?

    11장 분단 (29) 내각제를 추진했던 의원들의 명분은「이승만 독재」를 방지하자는 것이었는데 아무데나「독재」를 붙이는 것이 그 시절의 유행이된 모양이다. 그런데 36년동안이나 노예 취급을 당했던 일제에 대해서는「독재」라고 부르는 것을 별로 듣지 못했다. 혹시

    2011-05-02
  • <365>조봉암과 함께 농지개혁

    11장 분단 (28) 내가 첫 개각때 조봉암을 농림장관으로 임명한 것은 그의 토지개혁에 대한 입장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1945년 해방과 동시에 남북으로 분단 되었다. 그리고 남한은 1948년 8월 15일에 단독정부를 수립하고 만방에 건국을 공표했지만 북

    2011-04-30
  • <364>임정보다 혼란스런 나라

    11장 분단(27) 「왠 고기야?」식탁에 앉은 내가 묻자 당황한 프란체스카가 어물거렸다.「마리아가 가져온 고긴데요.」이기붕의 부인 박마리아다. 마침 프란체스카를 도우려고 물그릇을 들고오던 박마리아에게 내가 물었다.「그대는 이 고기를 어디서 가져온거야?」그리고는 바로 내

    2011-04-29
  • <363>김구는 무엇을 노리는가

    11장 분단(26) 「온갖 소문이 다 들립니다.」박기현이 말했으므로 나는 머리를 들었다. 1949년 초, 저녁 무렵이다. 경무대 응접실에서 나는 농지개혁법 초안을 드려다 보는 중이었다.「미군이 철수하면 납북통일이 된다고 합니다. 남한 정권은 석달이 못가 붕괴되고 남북한

    2011-04-28
  • <362>유어만 보고서

    11장 분단(25) 내 이야기는 지난일을 회상하며 쓰는 자서전 형식이다. 나는 온갖 방해와 모략, 그리고 암살 위협을 무릅쓰고 대한민국을 건국했다는 자부심과 긍지가 있다. 초대 대통령으로 건국을 했으니 나에게 무슨 미련이 남았겠는가? 건국 방해 세력에 대한 한(限)과

    2011-04-27
  • <361> 한민당의 반란 조짐

    11장 분단 (24) 이기붕(李起鵬)은 1945년 내가 귀국했을때부터 비서로 일했는데 미국 아이오와주 데이버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활동하다가 1934년에 귀국했다. 1896년생이니 해방 당시에는 50세의 장년에 내 비서가 된 것이다.성품이 조용해서 박기현, 이철상등

    2011-04-26
  • <360>한민당의 권력욕

    11장 분단 (22) 애둘러 말하지 않겠다. 그 한민당이 나를 밟고 나가려고 했다. 내가 국내 저항세력을 가장 높게 평가했듯이 모든 일에는 앞뒤가 있다. 한쪽만 보고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내가 대통령제를 주장한 반면 한민당은 내각제를 주장했다. 내가 대통

    2011-04-25
  • <359> 누가 뭐래도 한민당이 대표정당

    11장 분단 (21) 해방전,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3개 애국세력이 존재했다. 그것은 해외의 독립운동 세력, 국내의 독립운동 세력, 그리고 국내의 저항세력이다.국내의 저항세력은 살기 위해서는 어쩔수없이 일제에 현력하는「시늉」을 내지만 「애국」인사라고 나는 간주한다. 결

    2011-04-23
  • <358> 김구도 모르는 김일성

    11장 분단 (25)김구는 대외적으로는 미·소 양국군이 철수하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평화론 이다. 전쟁은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세우기 위한 핑계, 소심한 승세라고 말했다. 이것도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이다. 「같은 민족끼리는 죽일 수 없다.」는 말은 듣기에는

    2011-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