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hn Tracy Clinic                                                

    얼마 전 LA에 있는 John Tracy Clinic에 다녀왔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명배우 Spencer Tracy 부부가 1943년 아들 John 의 이름을 따 세운 청각장애아들을 위한 무료 클리닉입니다. 
    이 클리닉에서는 청각 장애 의심이 가는 어린이들을 진단하고, 장애가 있는 경우 재활교육을 실시합니다.
     
    갓난 아이, 한 두 살짜리, 서너 살짜리, 연령에 따라 교실이 각각 따로 있고 선생님 한 분이 여섯 명 정도 아동을 지도합니다. 그리고 아이들 결에서 부모들도 선생님의 지도 방법을 배웁니다.

    John이 태어난지 열 달 정도 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John의 어머니 Louise는 심한 바람에 쾅 하고 닫히는 문소리에도 계속 잠을 자고 있는 아들을 보고 의심을 하게 됩니다.
    병원에서 John이 청각 장애라는 진단을 받고 나서도 Spencer Tracy 부부는 날벼락 같은 이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경우, 모든 부모들이 그렇듯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용하다는 의사는 다 찾아가 봅니다. 그러나 결국 John이 Usher Syndrome이라는 희귀한 병에 걸렸고 청각뿐 아니라 시각도 점차적으로 잃어가게 된다는 기막힌 현실에 부딪칩니다.
     
    악몽에 시달리며 밤을 새운 뒤, 새벽에 일어나면 다시 희망을 가져봅니다. 청각 장애라는 진단은 의사의 오진이었다고. 밤새 잠을 잘 자고 일어난 아이는 정상이 되어 있을 거라고. 그리하여 일부러 접시도 바닥에 떨어뜨려 보고, 청소기도 돌려 보고, 문도 닫았다 열었다 해보며 기적을 바라지만 여전히 전혀 반응이 없는 아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마음속에 부글부글 이는 노여움은 대상도 없는 증오로 변하기도 합니다.
    사람들과 만나기조차 싫어집니다. 아이에 대해 묻는 사람들조차 미워집니다.
    “잠시 감기 기운에 귀가 막혔을 뿐이다. 영구 청각 장애는 아닌 것 같다.”고 진단하는 의사가 있으면 그 의사 말이 진리인 듯, 그 의사에게 매달리게 됩니다. 이런 경우 기적을 바라며 1년, 2년이 지나가고 그만큼 아이에게 올바른 지도 방법이 늦어지게 됩니다. 

    이런 참담한 심정을 겪으면서, Tracy 부부는 청각 장애 아동들과 그 부모들을 위한 무료 Clinic을 오픈하기로 결심하고 John의 어머니는 평생을 이 사업에 종사합니다.

    전문 의사들의 진단에서부터 심리학자까지 모두 무료인 이 clinic의 요구 사항은 딱 하나입니다.
    아이가 교실에서 공부하는 동안 부모도 결에서 함께 공부해야 합니다. 뿐 아니라 부모들을 위한 특별 강의에도 빠짐없이 참석해야 합니다. 
    청각 장애아가 여느 아이들이나 마찬가지로 밝고 명랑하게 자라 성인이 되었을 때 사회에 유익한 인간이 되도록 인도하기 위해서는 선생님과 의사, 부모, 형제, 친척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부모 참여”를 필수조건으로 내세운 취지입니다.
    부모뿐 아니라 아이에게 형제가 있으면 형제도 한 달에 한번 센터에 가서 함께 지내야 합니다. 물론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이 시간 외에 오빠든 동생이든 함께 오고 싶으면 언제라도 함께 와 교실에서 같이 지낼 수 있습니다. 

    부모교실에서는 강사의 강의시간보다 부모들끼리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경험을 나누며 위로하고 희망을 갖도록 격려하는 것입니다.

    한 젊은 엄마는 아이가 영구 청각장애라는 것을 알았을 때, 차라리 아무도 모르게 어딘가 갖다버리고 싶었다고 고백하며 울었습니다.
    “귀 수술을 해주면 보통아이처럼 들을까요? 보통아이처럼 말을 할까요? 아니, 정상 아이처럼은 못한다 하여도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될까요?”
    “그럼요. 됩니다. 분명 됩니다. 내 딸애가 일 년 전에 수술했는데 지금 말을 많이 알아듣고 의사소통을 거의 다 합니다.”
    떨리는 음성으로 이것저것을 질문하는 한 엄마에게 다른 엄마가 자신 있게 답을 합니다.    

    강의실에서 나온 다음에도 엄마들은 복도에서 계속 의견을 주고받습니다.
    한 살짜리 첫 아이가 청각장애라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는 엄마는 “내가 정말 좋은 엄마 노릇을 할 수 있을지 겁이 난다. 솔직히 자신이 없다.”며 다른 엄마 어깨에 기대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잘 해 나갈 수 있고말고요. 나도 막막하고 분하고 그런 심정 다 거쳤습니다. 하지만 보세요. 아이들이 명랑하잖아요?”
    정서적으로 행복한 아이는 정상아이나 다름없이 잘 자라 제대로 교육 받고,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센터의 믿음이고 목적입니다.

    Hope, Guidance and Encouragement!
    센터 복도 한 켠 벽에는 이 센터에 기부금을 낸 사람들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Gregory Peck, Carry Grant 등 유명한 배우들 이름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미국 시민이 아니라 해도 이 센터 혜택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 경우, 수강료 같은 게 있나요?”
    교실에서 나와 Clinic President, Barbara E. Hecht 박사와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이것을 물어보았습니다.
    너무나도 훌륭한 시설에, 자상한 선생님들, 그리고 전문 의사팀, 이 모두가 외국인들에게도 무료인지, 한국 사람도 이 시설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물론입니다. 단 부모가 함께 공부해야 합니다. 듣기 공부를 정상인과 달리 해야 하는 이 힘들고 먼 길을 아이 혼자 해낼 수 없습니다. 부모와 함께 하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인뿐 아니라 전 세계 누구든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직 한국어로 만들어진 팸플릿이 없어 아쉽습니다. 한국에도 이 클리닉이 알려져 많은 어린이들과 부모들이 혜택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에게 닥친 슬픔과 고통을 승화시켜 평생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던 그 숭고한 인간애.
    Spencer Tracy 부부. 그들은 세상을 떠났고, John Tracy도 82세로 몇 달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세운 이 센터는 오늘도 많은 청각 장애아들, 그리고 그들의 부모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John Tracy Clinic
    806 W. Adams Blvd.
    Los Angeles, CA 90007
    www.jtc.org

    김유미 작가의 홈페이지 www.kimyum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