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바람에 흔들리는 언론현실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주필이 주필 직에서 물러났다.
    물러난 거 자체는 일상 있는 일이다.
    신문사 주필 직 뿐 아니라 세상 모든 직위들엔 항상 인사이동이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물러나게 된 사연이 과연 고개가 끄떡거려지는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공인의 공(公)적 사항은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는 주필 직을 물러나면서 “나를 싫어하는 정치세력이 많다”고 했다.
    한 마디로 그런 세력이 기피하는 인물이라서 현직에서 ‘명예로운 퇴직’이 아닌,
    썩 좋지 않은 방식으로 밀려나게 됐다는 함축이다.

    그렇다면 이건 사회적인 공론의 주제가 되고도 남을 문제다.
    한 신문사 주필의 헌법상의 권리인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로 인해
    그에 대한 인사(人事)권을 쥔 사람들이 특정 정치집단의 압력을 받거나,
    받을까 보아 그를 주필 직에서 밀어냈다면
    이건 언론의 자유와 독립이라는 원칙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어떤 직장에서나 해고(解雇)는 흔히 있는 일이다.
    “너 때문에 내가 불편하니 너 그만 둬” 하면 그만 두는 수밖에 없다.
    요즘엔 노조의 힘이 세져서 함부로 목을 잘랐다가는 광장이 가득 차버리는 수가 있다.
    그러나 간부들의 경우일수록 그런 보호막이 없다.
    그래서 부장까지는 안전운행을 해도 이사(理事) 대우서부터는 목이 내일 잘릴지 모레 잘릴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목 잘림이 공적인 시비 거리가 될 수 있는 사례일 경우엔,
    그리고 그런 사실이 사회에 널리 알려졌을 경우엔
    그건 아무리 사기업 내부의 인사문제라 할지라도 공적인 논의의 대상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언론인이 그의 논조로 인해 특정 정치세력의 공격대상이 된 결과
    사(社)측이 그의 보직해임을 결정하게 되었다면,
    그건 이 시대 언론의 현주소와 관련해 심각한 사회적 정치적 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정규재 주필은 그의 논조와 정규재 TV의 성향으로 보아
    특정 세력의 당연한(?) 타깃이 되었을 법하다.
    문제는 그들이 “저 사람은 안 된다” 해서 회사 측에 우형무형의 압력을 넣으면
    그게 통한다는, 기구한 현실이다.

    이게 ‘블랙리스트’가 아니면 뭔가?

    이게 만약 오늘의 언론 상황의 전반적 경향이라고 한다면
    한국의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언론사의 독립은
    엄중한 시련에 마주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더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이런 기피인물 지목, 회사에 대한 압력 행사,
    회사의 ‘알아서 기기’, 찍힌 인물의 물러남...이라는 현상이
    오늘의 시점에선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위력으로 발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의 풍향을 누가, 어느 쪽이 좌지우지 하고 있느냐의 판단에서는
    웬만한 귀신보다 더 민감하고 정확한 게 민간 거대집단, 즉 회사들이다.
    이런 회사들은 지금 어느 쪽 힘을 더 두려워할까?
    삼척동자(三尺童子)라도 족히 알 만한 일이다.
    세상이 이미 그렇게 간지 오래다.
    더군다나 “차기 정권이 어디로 갈까?” 하는 데 대해서도
    회사들은 나름대로 일정한 예측과 채비를 했을 것이고...

     이에 비해 다른 한 쪽의 정(政)-관(官)-민(民)의 결의와 실력은 너무나 초라하고 초췌하다.
    “정치는 싸움이다, 그러니 우리는 전사(戰士)가 돼야 하고, 목숨 걸고 싸워야 하고,
    집요해야 하고, 정교한 마인드 컨트롤(선전선동)을 해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그 쪽엔 아예 없거나, 있어도 아주 미약하다.
    그러니 회사들이 그 쪽을 무서워할 까닭이 뭐가 있겠는가?
    그냥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이래서 오늘의 싸움은 미디어 부문을 포함해
    한 쪽으로 이미 기울어져도 한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하는 싸움이다.
    정규재 주필 해임은 이런 현실의 구조적인 틀 안에서 발생한
    하나의 씁쓸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러나 이게 언론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언론을 포함해 공공부문, 사기업부문, 문화계, 교육계 등 국가, 사회 전반에서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총체적인 기울음인 셈이다.
    그러나 이게 완전한 전복(顚覆)으로 가느냐,
    아니면 혹시 기사회생의 유턴을 하느냐는
    너무 낙관도, 너무 비관도 할 게 아니다.
    그저 최선을 다하고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를 갖추는 게 정도(正道)일 성싶다.

     
    류근일 2017/3/31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