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1절 태극기 집회

     3. 1절 태극기 집회에 나가보았다.
    누구 말처럼 선동을 받아서 나간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정치인의 선동 따위는 더더욱 받지 않았다.
    그냥 내 결정에 따라, 내 발로 나갔다.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은 채 개인자격으로 나갔다.
    어느 단체나 조직이나 패거리에 소속된 바도 없이 나갔다.

  • 뭐, 자중하고 신중하라고? 너나 자중해라.
    나는 충분히 자중하고 있다. 자중했으니까 이렇게 차분히 걸어 다니기만 하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는가?
    왜, 신경 쓰이던? 이런 자발적이고 독립적인 개인들이
    너희들 말 안 듣고 손에 태극기 든 채
    개미군단처럼 새까맣게 광장을 메우니까 두렵더냐?

    나는 연단의 열변보다 광장을 메운 참가자들의 얼굴에 더 관심이 있었다.
    관상가는 아니지만 나이가 드니까 사람 얼굴을 대충 한 번 훑어보면
    아하, 대강 이러 저러한 유형(類型)이구나 하는 게 한 눈에 들어온다.
    광장의 다수는 한 마디로, 특별할 것 없는 개인들,
    생업에 여념이 없으면서도 “행여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어떻게 될까봐” 끌탕하는
    성실한 보통사람들이었다.

    문 밖에만 나가면 골목에서, 한 길에서, 공원에서, 시장에서
    오며 가며 마주치는 일상의 평범한 이웃들이었다.
    그게 좋았다.
    조직원, 꾼, 살기서린 행동대원들, 교활한 음모가들 아닌, 그냥 개인들 말이다.
    이들이 왜 이 광장엘 나왔는가?
    걱정돼서다. 화가 나서다.
    이건 직업 활동가들과 조직원들이 의례 그러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정말 진지하고도 순박한 실존적 각성이요 결정이요 개입이다.

    자유-민주-공화 진영은 왜 특정 이념 파(派)에 비해 싸움에 약하냐고 개탄 하곤 했지만,
    이번 태극기 집회의 엄청난 인파를 보고 난 다음에는
    “아, 우리도 화나니까 되는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자기발견을 한 건 아닐런지?
    이들 한 사람 한 사람들은 그 무슨 ‘강철대오’니 ‘투쟁조직’이니 하는
    전체주의적 규율에 매여 거리로 나온 ‘떼'나 “패’가 아니다.
    그야말로 한 사람 한 사람이 자발적으로 깨어나 걸어 나온 개인들이다.
    이게 자유-민주-공화의 자산이요 힘이다.

     이들이 ”이건 아니지...“ 하고 사적(私的) 공간을 나와 공적(公的) 공간을 메우면서
    양심선언을 할 때 그게 바로 행동하는 시민이요 시민정신이고
    참된 여론이자 공론(公論)이다.
    그 어떤 가짜 뉴스도, 조작된 여론도, 포장된 여론도, 선동도, 휘몰이도
    이들 각성한 개인의 영혼을 영구히 기만하거나 훼손할 수는 없다.
    이런 ‘개인의 탄생’ 즉 계몽(enlightenment)의 시대를 거쳐야만
    비로소 우리는 근-현대적 자유-민주-공화의 주역으로 설 수 있다.

    청계천 2가에서 버스를 내려 시청 앞 서울광장을 거쳐 광화문 4거리에서 다시 종로 2가까지
    한 바퀴 돌며 김평우 변호사와 김진태 의원의 열변을 귓가에 들으면서도
    나는 시종 이들 깨어난 개인들, 자유인들, 자발적 참여자들,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의 얼굴과 표정을 접하고
    기분이 한결 맑아짐을 느꼈다. 탁한 것의 반대 말이다.

    휘파람이라도 불고 싶은, 맑고 청량한 ‘사이다 기분’이랄까?
    이런 감흥은 저주와 증오와 악의와 남 탓과 살기등등함과 오만함에선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가을하늘 같은 공활함이다. .

    이들의 생각을 나는 알 만하다.
    “문제는 언제, 어느 때나 항상 있다. 누가 없다고 했나?
    그렇다고 그걸로 대한민국을 몽땅 흔들어? 안보정책까지? 사드배치까지?
    김정남 암살도  우리가 관계됐다고?  이건 아니지...”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