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벼랑끝에 선 자유민주주의 진영

  •  자유민주주의 진영이 벼랑끝에 섰다.
    자유민주주의 진영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이나 새누리당(친박 비박 할 것 없이)이
    유일하게 지도하고 지휘해온 진영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고(有故)가 되거나 새누리당이 망한대도 자유민주주의 진영은 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권위를 잃고 새누리당이 무력화되면서
    자유민주주의 진영 전체가 도매금으로 휘청했다.
    풍랑이 몰아치는 깜깜한 밤바다에서 선장도 선원도 나침반도 없이 흔들리고 있는
    일엽편주(一葉片舟)-이게 지금의 한국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모습이다.

     하나의 진영은 리더, 간부진, 전사(戰士)단, 정치 파트, 문화 파트, 오피니언 집단, 대중조직 등으로 구성된다. 지금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경우는 이 중 앞쪽 대부분이 날아간 셈이다.
    문제는 이 날아간 부분을 즉각 대체할 휴먼 자산이 눈에 띠지 않는다는 점이다.
    잠용(潛龍) 5인이 회동했다고 하지만 간(肝)에 기별이 가지 않는다.
    시시하기 짝이 없다.
    그들이 잠용? 누가 시켜준 잠용인가?
    그들 중 누가 대중적 신망을 받는 리더 감이란 소리를 듣고 있나?
    하나도 없다. '셀프 리더'들일 뿐이다.
    렌즈 앞에서 연기자 같은 웃음이나 생글생글 짓고, 오렌지 좌파 시늉이나 하고,
    모나게 깝작거리기나 하고, 머릿속이 텅텅 비었거나,
    대중적 친화력이 없어 따로 놀거나 하는 식이다.

     친박은 벌써 '멀박' 소리를 듣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지자 대통령 근처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려는 자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비박은 불난 집안구석에서 잇속 챙길 궁리나 하고 있다.
    상황을 즐기는 것이다. 양쪽 다 치사를 극한 얌체족인 셈이다.
    이런 위인들을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정치적 대표집단이랍시고
    뽑아주고 바라보고 기대해온 자유민주주의 진영 유권자들만 딱할 따름이다.
    정말 운(運)도 복(福)도 지지리도 없는 자유민주주의 유권자들이다.

     이런 택도 없는 새누리당 위인들이기에 어느 날 갑자기 벼락을 맞자마자 하는 짓이라는 게
    야당의 '거국내각' 소리에 "그래 그렇게 해주세요"라며 백기부터 번쩍 든 것이다.
    그러니까 야당은 "좋아하네, 누가 정말 하자고 했어?" 하며 놀려댔다. 놀림을 받아 싸다.

     거국내각이란 대체 무얼 어떻게 하자는 건가?
    연립내각 비슷한 것인 모양인데, 그럼 그런 게 어찌 어찌 해서 간신히 되었다 할 때
    그 내각은 여당의 사드 배치 찬성을 따를 작정인가,
    아니면 야당의 사드 배치 반대를 따를 것인가?
    대답해 보라.
    여당이 생각을 바꾸든지 야당이 생각을 바꾸든지 해야 할 터인데
    그게 그렇게 될 수 있는 일인가?
    여당이 생각을 바꿀 경우 한-미 사이의 사드 배치 합의는 휴지조각이 될 판인가?

     새누리당은 또 거국내각이란 것의 총리감으로
    야권의 손학규, 김종인, 김병준을 하마평에 올렸다.
    그렇다면 자기 진영엔 총리감이 하나도 없다는 걸 자인한 꼴이다.
    이게 한 나라의 여당이란다.
    정히 그런 지경이라면 아예 백기 들고
    정계에서 은퇴하는 편이 차라리 솔직하지 않겠는가?

     새누리당은 차라리 자폭하고 제로 베이스에서 신당을 만드는 게 어떨지?
    새누리당 위인들에게 과연 그런 비장한 결기라도 있을지
    확신이 없기에 그냥 한 번 해보는 소리다.
    그러나 그럴 경우 정통 자유-보수 노선을 걷는 사람들과,
    잇속 있으면 중도좌파 시늉도 하는 사람들은
    이제 그만 빠이빠이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김진태와 유승민이 같은 당을 한다는 건 코미디이기에 말이다.
    친박과 비박이 '아직도' 같은 당을 한다는 것도 3류 신파극이고.

    대선은 불과 1년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이 시점에서 정권이 붕괴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대형 참사가
    자유민주주의 진영을 엄습한 요즘이다.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희망은 과연 있나?
    희망을 만날 길은 꼭 하나-
    "살려고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으려고 하는 자는 살 것이다"라는 명언이 그것이다.
    오늘의 자유민주주의 진영은 이걸 할 수 있을까?
    죽음과 절망을 살아서 체험해 보지 않은 자는
    삶과 희망을 누릴 자격이 없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진영도 나락까지 떨어져 봐야
    다시 솟구쳐 오를 힘을 얻을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