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순실이 대체 뭐라고?

      


  • "최순실씨는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저의 선거 운동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한 말이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했다.

     그런데 신문 방송들이 보도하는 바에 따르면 최순실 씨는
    홍보 뿐 아니라 인사(人事)에도 관여한 정황이 점차 감지되고 있다.
    김종 문체부 차관이 어떤 사람의 이력서를 전해 받고
    이를 다시 최순실 씨에게 전달했다는 보도가 예컨대 그런 것이다.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대통령 측근들 역시 최순실 씨가 소개했다는 보도도 있다.

     전에 어떤 인사가 청와대 주요 수석비서관으로 취임했을 때도 지식인 사회에는
    “저 인사가 대체 무슨 연줄로 저 자리에 앉았나?”라며 궁금해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논란과 관련돼 최순실, 차은택, 고영태, 김종덕...이란
    이름들과 함께 그의 이름이 신문-방송에서 함께 거론되었다.
    퍼즐 조각들이 조금씩 꿰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정황들은 최순실 씨가 단순한 “(연설문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 나름대로 인맥을 거느린 ‘막후 실력자’ 노릇을 한 건 아닌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왜 굳이 딸과 함께 외국으로 잠적했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고, 모르다가도 알 것 같은 증상들이다.

     대통령도 물론 친한 사적(私的) 인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정치인이나 후보시절에서 나아가 일국의 국가원수가 되면
    그때부터는 매사를 공공의 채널에서만 다뤄야 하지,
    그 어느 대목도 사사롭게 덮어선 안 된다는 게 동서고금 문명국의 철칙이다.
    그래서 옛 왕(王)들은 사관(史官)으로 하여금 일일이 현장에 입회해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도록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소시 적, 부모님을 비명에 잃은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다.
    따듯한 숨결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함께 아파해 줄 쓰라린 비극이었다.
    그래서 당시의 ‘근혜 양’이 어떤 끌리는 인맥에 마음을 열고 의지하려 했다면
    그 심리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그 인맥이 ‘근혜 양’ 아닌 ‘대통령 박근혜’로 바뀐 다음에도
    인사와 홍보 등 주요 국정에 입김깨나 불어넣는 ‘그림자 실세’로 존속했다면
    그건 안 될 일이다.

     ‘박근혜 후보’는 박근혜 대통령이 되면서부터 그들을 정리했어야 한다.
    왜 그들이 지금까지 ‘비선실세’나 되는 것처럼 여기저기서
    호가호위(狐假虎威) 하는 정황이 포착되기에 이르렀는지, 의아하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최순실이 뭐라고 그녀의 이름 석 자가 문체부에서, 이화여대에서,
    미르재단에서, K스포츠재단에서, 전경련에서, 독일에서
    저렇게 불거지고 있다는 것인가?
    그녀가 대체 뭔가? 당신은 정말 뭔가?

     문제는 최순실 논란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시인사과’ 이후
    자유민주주의 진영 전반이 무엇에 얻어맞은 듯, 혼돈에 빠져버렸다는 사실이다.
    ‘시인사과’ 한 게 잘못이란 뜻이 아니다.
    김정일의 핵 공갈 앞에서 힘겹게 자유민주 체제를 위해
    ‘가치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신바람 날 일은 고사하고
    저토록 맥 빠질 일만 일어나는 게 딱하고 황당하고 애석하다는 것이다.
    운(運)도 복(福)도 지지리도 없는 자유민주 시민사회다.

    류근일 /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