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원순 '사회적 경제'의 정체성은 뭔가?
     
     
 박원순 서울시장이 내년 대통령 선거정치에 끼일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는 깐깐한 검증을 마다해선 안 된다.

그는 우선 안보문제와 관련해
“북한이 4~5차 핵실험을 할 당시 박근혜 대통령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했겠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선 담대한 마인드와 결정이 있어야 하는데,
 악화되는 남북 상황에서 누군가가 먼저 선순환으로 바꿀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선순환은 김정은이 핵-미사일 개발을 멈출 때라야 가능하다.
 “누군가가 먼저 담대한 마인드와 결정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 말은 이렇게 고쳐 말해야 더 적실하다.
“김정은이 핵 폐기를 담대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왜?
남북관계가 꽉 막히고 한반도 전쟁위기가 고조된 건
대한민국 대통령이 무얼 잘못 한 탓이 아니라,
북의 김정은이 자신의 폭정을 유지하기 위해
개혁-개방과, 대화에 의한 공존-교류-통일추구를 마다하고
핵-미사일을 만들어 ‘서울 불바다’와 ‘남한 잿더미’를 호언한 탓이다.
 
  그러니 이제 와 우리더러 뭘 얼마나 어떻게 더 하라는 것인가?
우리는 생돈을 퍼 줄 대로 퍼줬고, 대화를 ‘애걸’ 할대로 ‘애걸’ 했다.
그러고도 안 됐다.
우리 몸에 더 이상 ‘담대하게’ 벗어버릴 옷이라곤 이제 남아있지 않다.
여기서 더 벗으라는 건 아예 가죽을 벗겨 버리라는 소리나 다름없다.
 
 경제문제와 관련해 박원순 시장은 자유주의자들을 향해 엄청 치열한 논쟁을 걸어왔다.
 그가 대기업 위주 시장경제의 역기능을 비판한 것까지는 ‘리버럴’ 또는 ‘진보적’ 지식인들 사이에 흔히 있는 일이다. 보수라 한들 그 누가 일부 대기업의 갑(甲)질과 일탈을 잘한다고 할 것인가?
그러나 그가 그 대안으로 제시한 ‘사회적 경제’ ’협동조합 체제‘라는 건 논란의 여지가 매우 크다. 그는 스페인 바스크 지방에서 시작된 몬드라곤(Mondragon) 협동조합 기업을 새로운 모델로
추켜세웠다.
 
 협동조합 운동은 물론 마르크스 사회주의-공산주의와는 흐름을 달리하는 모델이긴 하다.
이 모델은 주주(株主)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노동자-생산자-소비자의 참여와 자율관리와
나눔의 공동체를 추구한다. 문제는 그러나 이것이 시장경제를 대치하는 것이냐, 아니면 시장경제 안쪽에서 그 약점과 실패를 보완하자는 것이냐의 논쟁이다.
 이와 관련해 박원순 시장이 그토록 예찬한 몬드라곤이란
‘사회적 경제단위’가 2011년엔 파산지경까지 이른 사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당시, 몬드라곤의 계열사인 파고르(Fagor)란 가전제품 회사는
누적되는 부채를 감당할 길이 없어 파산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스페인과 유럽 등 세계경제 전체가 불황의 늪에 빠진 탓이다.
둘째는, 중국의 값싼 노동력 때문에 경쟁력에서 밀린 탓이다.
이건 무얼 말하는가?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경제단위’도 보다 큰 규모의 지구적 경제동향에서
초월해 있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경제단위’도 지구적 시장경제의 완전 대치물이 될 수 없고,
현재로선 시장경제가 원활히 돌아가야만 지속가능하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경제단위’라는 게 시장경제와 전혀 동떨어져서,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제풀에 생겨나, 자족적으로 지속가능한 게 아니라는 증좌인 것이다.
 
그야 물론, 협동조합 체제로 자본주의를 100% 대치하고 나면
그 체제가 지금 같은 시장경제 없이도 능히 지속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고도-첨단-기술’ 기업경영이 선도하는 지구적 시장경제가 소멸할 경우
협동조합인들 제대로 존립할 수 있을까?
 
 마르크스의 실패한 공산주의 실험이 있기 전에도
공상적 사회주의자라고 불리는 로버트 오웬과 푸리에(Fourier) 같은
무정부주의자들의 ‘국가 없는 협동조합’과 ‘기업경영’ 없는 공동체주의 실험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다 실패했다.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는 건 시장경제와 그것을 선도하는 ‘고도-첨단-기술’ 기업경영뿐이다.
 
 ‘고도-첨단-기술’ 기업경영도 물론 망할 수 있다.
반면에 신흥하는 ‘고도-첨단-기술’ 기업경영도 있다.
시장경제 자체도 완전무결한 건 아니다.
그래서 협동조합 같은 자조(自助)적이고 상부상조(相扶相助)적인 보완물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고도-첨단-기술’ 기업경영을 100% 대치하는 것이라고,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고 단정하고서 시작할 일은 아니다.
 
 박원순 시장은 과연 어느 쪽인가?
그는 ‘생활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가 보다 큰 지구적 시장경제와
‘고도-첨단-기술’ 기업경영의 대치물이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종의 ‘근본주의자’인가,
아니면 시장경제의 테두리 안에서 시장의 약점을 보완하는 정도의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만에 하나 전자(前者)일 경우, 더군다나 대통령을 지망하는 사람의 생각이 그럴 경우,
그건 문제라고 보기에 묻는 것이다.
 
 박원순 시장이 아닌 일부 운동가들은 ‘협동조합 체제’와 ‘사회적 경제’를
‘시장 전체주의(이 말은 시장경제를 폄하하기 위해 갖다 붙인 딱지다)’를
완전히 대치할 체제라고 말하거나 쓰고 있다.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