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못 이루는 '꼰꼰대'의 밤
      
  •  그제(9/8) 밤 11시 45분 쯤 K 교수가 문자를 보내왔다.
    당장이라도 인터넷에 들어가 꼭 읽어보라는 것이었다.
    대체로 다음과 같은 글이었다.
     
      “부패 언론인의 표상처럼 된 송희영 조선일보 전 주필은
    어떤 사람일까? 그는-(중략)-평균 2년에 한번 꼴에 달하는
    초고속 승진을 했다. 그는 파격적인 인사를 거치면서
    단계적으로 조선일보를 장악해 갔다.
     
      그가 조선일보를 움켜쥐기 시작하던 1994년 6월,
    나는 공채 33기로 조선일보에 입사했다. 이 시기 편집국에는
    이른바 ‘송희영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것이 있었다.
    공식적인 이름이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이 모임이 자발적 으로 만들어진 건지,
    아니면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조직된 것인지도 알지 못한다.
    다만 2~5년차 주니어 기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일종의 ‘송빠 모임’이 편집국 안에 있었으며,
    당시 일부 기자들이 이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석했던 것은 사실이다.
     
      내게도 ‘이 모임에 들어오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있었다.
    지금은 조선일보를 떠나 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C기자로 기억한다.
    그가 직접 “송 국장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서
     “우리는 송 국장을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가끔씩 모이고 있다. 모임에 참석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해와, 망설이다 거부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모임에 속했던 멤버 중 다수는
    지금도 여전히 조선일보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는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사회의 기득권층을 통틀어 공공연하게 ‘꼰대’라고 비판했다. 
      위계질서가 엄격한 조선일보에서 부국장급 후배가 편집국장을 지낸 대선배(I 씨)의 경영능력을 공개 비판한데 이어, 조선일보를 대표하는 대 논객(K 씨)을 다시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사실상 퇴진을 촉구한 사건은 젊은 기자들 사이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젊은 기자들은 송 전 주필의 ‘도전’을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였고,
    송 전 주필은 그런 기자들을 흡수했다. "
     
      이상, 부분적으로 인용한 글은 1994년 6월 공채 33기로 조선일보사에 입사해
     18대 노조위원장을 역임했다는 이범진이란 이름의 집필자가 인터넷 공간에 올린 것이다.

    필자는 조선일보 출신이지만 이범진이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가 현재 조선일보에 근무하고 있는지 어쩐지도 필자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가 올린 글의 세부적인 정확성 여부도 판단할 처지에 있지 않다.
    잘 모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출신이 어떻게 그런 걸 모르느냐고?
    사내 정치, 사내 권력투쟁(?)에 관심이 없었으니 잘 모를 수밖에.
    필자는 그저 좌우 돌아보지 않고 글만 죽어라 하고 쓰고 살았다.
     
      여기서 이범진이란 이름의 집필자가 올린 글을 일부 인용한 까닭은,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새삼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꼰대’를 비판하고 제치려 한 신진기예가 오히려
    ‘꼰대’들보다도 먼저 도태(淘汰)의 대상이 되었으니,
    인생은 정말 끝까지 살아보기 전에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매사 섣불리, 함부로 말하고 처신해선 안 되고, 두려워하는 마음가짐으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듯이 항상 조신하고 겸손하게 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양상훈 조선일보 논설주간이 때마침 송희영 사태와 관련해
    독자에 대한 사과와 함께, 역대 주필들에 대한 송구한 마음을 칼럼으로 썼다.
    필자 역시 그 ‘역대’의 말석에 앉았었던 몸인지라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하던 차에
    어제 아침엔 그 글을 일고, 또 밤에는 위의 글을 읽고,
    다시 오늘 밤까지도 착잡한 감회에 빠져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맥주라도 몇 잔 마셔야 잠이 오려나?
     
      어제 오후엔 TV 조선 시사 프로에 출연해 엄성섭 앵커가
    “양상훈 칼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기에
    “저도 선배 된 입장에서 삼가 독자들께 엎드려 용서를 빕니다”며,
    정중하게 화면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런다고 쉽사리 ‘상한 마음의 독자들’의 용서를 ‘절대로’ 받진 못하겠지만... 
     
     다시 이범진 집필자의 한 대목을 더 인용한다.
     
    “이 시기는 우리 사회가 보수-진보의 이분법으로 갈라지면서,
    이른바 ‘안티조선’의 조선일보에 대한 공격이 거세지던 때였다.
    당시 조선일보 내부에서는 젊은 기자들을 중심으로
    보수 일변도의 보도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었다.
    이 같은 일련의 배경에서 단계적으로 전개된 송희영 전 주필의 ‘꼰대론’은
    과거에 대한 비판이자 차기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졌고,
    동시에 조선일보의 젊은 기자들을 겨냥한 포퓰리즘으로 해석됐다.”
     
     어차피 필자 세대는 지금의 조선일보 세대에 비하면 고조선 사람들이다.
    그러니 고조선 사람들로서야 지금의 조선일보 사람들이
    어련히 매사 잘 알아서 추스르고 재기하려니 믿고
     ‘꼰꼰대’의 참선(參禪)에나 들면 될 줄 안다.
    ‘꼰꼰대’가 뭐냐고?
    송희영 세대도 이미 ‘꼰대’가 됐으니 우리는 ‘꼰꼰대’로 더 올라갈 밖에.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