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玄覺 스님의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

     

  •  하바드 출신 불교 승려 현각(玄覺) 스님.
    그가 한국불교 조계종을 떠난다고 선언했다.

    “내가 어떻게 그 조선시대 정신에만 어울리는
    교육(을 하는 조계종단)으로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서양 사람들,
    특히 서양 여자들을 보낼 수 있을까?”
    “한국 선불교를 전 세계에 전파하고 누구나
    자신의 성품을 볼 수 있는 그 자리를 기복 종교로 만들었다.
    왜냐하면 ‘기복 = 돈’이기 때문이다.
    참 슬픈 일이다”라고 그는 개탄했다.

      현각 스님이 그 어떤 인연법(因緣法)에 따라서인지
    처음 한국에서 구도(求道) 생활을 시작했을 무렵부터
    필자는 그분이 책을 통해서나 인터뷰를 통해서 하시는 말씀에
    항상 마음 깊이 공감하곤 했었다.

    한국적 종교문화에 비해 서양인인 그분의 ‘지적(知的) 분위기'가
    필자에겐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이걸 “신앙이 아직 덜 뜨거워서..”라고 일부는 말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덜 뜨거워도 좋으니 나에겐 그게 더 좋다”고 생각했다.

  • ▲ 현각 스님(연합뉴스)
    ▲ 현각 스님(연합뉴스)

     ‘지적(知的) 분위기’라고 필자가 말하는 건
    “종교는 지식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있다”는 걸 부정하는 게 아니다.
    종교를 신실하게 믿더라도 지성적인 사유(思惟)의 형식을 함께 껴안고 가면서 믿어도,
    아니, 그러는 게 훨씬 더 좋지 않겠느냐는 것뿐이다.
    예컨대 “종교를 믿는다고 해서 지동설 아닌 천동설을 ‘진리’라고
    권력으로 강제하거나 맹신하는 게 과연 참 종교적 자세였느냐?”는 물음이다.
    더군다나 근래에 와 일부 종교인들이 특정 정치성향으로 급경사하면서부터,
    필자의 실망감은 더 커졌다. 

      성당 문 위에 “4대강 지지자들일랑 이번 지자체 선거에서 찍어주지 말자”는
    현수막을 일부(소수이겠지만) 천주교 사제들이 내걸질 않나,
    도심 폭력시위 책임자 한상균이 부녀자 신도들 앞에서
    빤쯔 바람으로 난리법석을 피우는데도
    일부(소수이겠지만) 불교 승려와 단체가 그 범법자를 마치
    '쫓기는 피난민'인양 봐주질 않나...하는 등등의 어이없는 행태를 보고서
    필자는 "종교를 믿는다"는 게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를 헷갈릴 지경이 되었다.  

      그런 종교인들은 말할 것이다.
    “우리는 세속적인 정치-사회 문제와 관련해서도
    정의와 진리에 대한 배타적 해석권(解釋權)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 마디로 그냥 씩 웃어주겠다.
    현각 스님의 떠남도 이런 한국적 종교계 풍토에 대한
    환멸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불교적 영성-불교적 진리-불교적 구도(求道) 자체를 떠난 건 아닐 것이다.
    종교적 심성을 떠난 건 더더욱 아닐 것이다.
    아니, 그는 오히려 이 떠남을 계기로 종교적 영성이 더  심화될 것이라 믿는다.
    그의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