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식인들이 이우환 화백처럼 '주장'하면...
     

  •  “미술계에선, 모두 진짜라는 이우환 화백의 주장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화백이 자신의 작품을 취급한 대형 화랑들에 미칠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위작 파동이 국제적 명성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모두 진짜'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
    (조선일보 2016/7/1. 김미리, 김민정 기자)”

      미술, 미술계, 미술품 감정에 문외한인 필자로서는
    조선일보 두 기자의 기사가 소개하고 있는 ‘미술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라는 쪽에
    더 기울 수 밖에 없다. 이우환 화백의 ‘진품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대목 말이다.
    이 에피소드가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지식인의 ‘주장’이 라는 것이 일으키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숱한 정치-사회적인 갈등과 병증이 지식인의 ’주장’에 의해 발생하고 악화된다.
    자연과학에선 ‘주장’이란 있을 수 없다. 주관적 ‘주장’은 주로 인문사회과학 쪽에서 제기된다.
    그러더니 이젠 예술분야인 미술계에서까지 ‘주장’이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국과수가 “이건 가짜다”라고 과학적으로 입증한 것인데도
    이우환은 ”아, 내가 진짜라고 하는데 누가 뭐라고 하느냐?“는 식이다.
    ‘막무가내’인 것이다.
    그러니 갈리레오와 코페르니쿠스가 아무리 지동설을 ‘과학적’으로 설파했던들,
    당시의 가톨릭 교회가 ”아니다“라고 우기면 그건 ‘아닌 것‘이 될 따름이었다.

     우리 고기잡이 어부들이 아무리 북한 것임이 틀림없는 어뢰 잔해를 낚아 올렸어도
    특정 이데올로기 교(敎)에 심취한 일부가 “천안함 폭침은 북한 소행이 아니다”라고 우기면
    대한민국 영토 안에 사는 인구 중 27%에겐 그건 “북한소행이 아닌 것”으로 된다.
    거기서 과학 따위는 명함을 내밀어봤자 말짱 헛짓이다.
    “아, 내가 아니라고 하는데 과학이 아무리 기라고 한들 그게 무슨 소용 있느냐”는 것이다.

     중국 닝바오에 있는 북한 측 유경식당 지배인과 종업원 등 13명이
    아무리 제 발로 탈출해 한국 땅엘 찾아 왔어도
    북한당국이 “그건 남조선 당국의 유괴-납치다”라고 주장하면
    대한민국 영토 안에 사는 인구 중 다만 얼마는 우리 당국의 발표보다는
    북한 당국의 ‘주장’을 더 믿으려 한다.
    이런 친구들일수록 북한 땅 오지에 우리 국군포로가 지금껏 억류당하고 있다는 사실과 진실,
    그리고 북한 여러 곳의 정치범수용소에는 정치범 20만 명이 수감돼 있다는 사실과 진실엔
    한사코 눈길을 주지 않는다.

    국내정치에서도 일단 먼저 우겨놓고 보는 x이 장땡이다.
    “한미 FTA는 이완용 짓이다”라고 웬 x이 냅다 소리를 지르면 그게 한 동안 간다.
    “제주해군 기지는 해적기지다”라고 소리 질러도 그게 한 동안 간다.
    한다하는 주류 종교 지도급들까지 ”그 말 맞다“고 맞장구를 쳤으니 말이다.
    하기야 그들의 직계 선배들이 갈릴레오-코페르니쿠스를 배척했으니
    그 후배들이 그러는 건 당연(?)하다 하겠다.

     지식인과 종교인이 ‘과학’보다는 그들만의 ‘주장’에 더 집착하면
    역사도, 역사교과서도 날조되기 십상이다.
    “남한의 산업화는 종속(從屬)의 심화과정”
    “38선 이남엔 민족적 정통성이 없다”
    “소련군은 해방군, 미군은 점령군” 어쩌고 하는
    일각의 오인(誤認)이 그래서 터 잡았다.

    고등학교 검인정 국사교과서 8종 가운데 7종이
    우리 현대사를 그렇게 비틀어놓고 있다.
    8종 중 단 하나가 “그건 그렇지 않다”고 썼지만,
    그래서 그게 전국에서 꼭 한 개 학교에서 채택됐지만
    웬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일제히 교장에게 공갈, 협박을 퍼부어
    결국은 포기하게 만들었다.
    백주의 테러 아니고 뭔가?

    난감해진 정부는 7종 교과서 집필자들에게
    일단 왜곡된 부분의 수정을 요구해보기로 했었다.
    그러나 단어 몇 개 바꾼다고 왜곡이 시정되는 건 아니었다.
    관점 자체가 민중사관인데 일부 지엽말단의 표현 몇 개 쯤 바꾼다고
    ‘대한민국 내리깎기 사관’의 틀 자체가 없어질 수 있겠는가?
    그럼 어떡하나?
    이래서 나온 궁여지책이, 국사교과서를 다시 ’국정‘으로 돌린다는 방침이었다.
    그러자 좌파는 말할 것도 없고 일부 비(非)좌파 지식인들까지
    “이건 안 된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일부 비(非)좌파 지식인들의 반대는
    그 나름의 ‘양심의 표현’이었다는 점을 충분히 존중할 수 있다.
    지식인의 자존심에서 국가가 학문에 관여한다는 게 용납될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현행 검인정 국사교과서 7종이 담고 있는 ‘대한민국 깎아내리기’ 내용은
    그대로 둬도 할 수 없다는 체념인가?
    이왕 고민을 하려면 내용과 형식, 원인과 결과를 동시에 다 고민했으면 한다.
    본말을 전도해선 안 된다.
    어느 게 본(本)이고, 어느 게 말(末)이라 해야 할 것인가?
    현실은 어차피 차악(次惡, 덜 나쁜) 선택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지식인의 ‘주장’ ‘우기기’ ‘신념’은
    사실과 진실보다 ‘관점’을 더 우위에 둠으로써
    사실과 진실과 현실에 대해 난폭한 폭력을 휘두르기 일쑤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인 셈이다.
    지식인들이 ‘엄밀하게 인지(認知)하고 진술(陳述)하기’만 제대로 지킨대도
    이 세상 갈등과 파란의 아마 반쯤은 족히 없어질지 모른다.
    배움이 없는 사람들의 편견도 사회에 곧잘 해악을 끼친다.
    그러나 배웠다는 사람들의 막무가내 ‘주장’은
    그보다 몇 배나 더 큰 해악을 세상에 끼친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