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류근일 칼럼>
                              "지옥은 바로 그런 것이다"


     "우리 사회에선 책임감이 강하고 지시를 잘 따르는 사람에게 개죽음만 남을 뿐입니다."
    이건 서울 지하철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숨진 비정규직 근로자 김모군의 어머니가
    기자들 앞에서 울부짖은 말이다.
    이 애처로운 희생을 계기로 우리 사회를 달구어 온 '갑(甲)과 을(乙)' 문제가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어찌할 것인가?
    우리는 이 문제를 더 이상 피해 갈 수 없다.

     이는 전 세계적 현상이기도 하다.
    뉴욕의 젊은이들이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를 일으키자,
    이 물결은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호주 등 여러 나라에 급속히 파급되었다.
    각지의 시위엔 공통점이 있었다.


  • 상위 1%를 뺀 99%의 삶이 너무 팍팍하다는 비명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취직이 안 되고, 소득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이래도 절벽, 저래도 벼랑이라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에도 '헬(지옥) 조선'이란 현상이 있다.
    낙오감과 상실감으로 가득 찬 젊은이들은 외친다.
    "기득권층은 '대한민국이 이렇게 살기 좋은 나라다'라고 선전하면서
    뒤로는 원정 출산, 이중 국적 취득, 국적 포기를 하고 있다.
    남은 자들에겐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라'고 한다.
    이게 '헬 조선'이다. 노력해 봤다. 그런데 성공은 못 하더라."

     '1% 대 99%' 논란에 대해선 상반된 두 견해가 대립해 있다.
    '암세포 가설(A)'과 '진화 가설(B)'이 그것이다.
    A는 상위 1%, 즉 재벌의 문제점은 암세포처럼 자라기 때문에 수술밖엔 길이 없다고 하는 주장이다. 그리고 B는 시장 논리에 맡겨두면 매사 자연스레 치유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무소속 유승민 의원은 최근 성균관대 학생들 앞에서 '암세포 가설'을 주장했다.
    "수구 보수는 '성장이 불평등을 치유한다'고 우긴다. 재벌이 살아야 한국 경제가 산다고 한다.
    재벌이 비실비실하면 꼭 도와줘야 하고, 재정·금융 지원을 해줘야 하고, 세금을 깎아줘야 하고, 규제를 풀어줘야 하고, 그러면서도 불평등 문제엔 전혀 관심 없이 '오로지 성장 지상주의'였다. 그 결과 미래가 죽어가고 있다."

     이와는 달리 한국경제연구원이 펴낸 '한국의 대기업 정책'이란 책은
    '진화 가설'을 주장하고 있다.
    "대기업 횡포를 막는 법은 이미 수없이 나와 있다. 세계경제가 예측하기 어려운 불황 늪에 빠져 있고, 애플과 삼성의 법적 공방이 보여주듯, 해외시장에서 한국 대기업이 심하게 견제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기존 법규의 합리적 운영이지 '1% 대 99%'라는 해괴한 수치를 내세워 '부자'나 '대기업'을 잡는 새로운 규제 도입이 아니다."

     

  • ▲ 무소속 유승민 의원. ⓒ뉴데일리
    ▲ 무소속 유승민 의원. ⓒ뉴데일리

     

     '헬 조선'론에 대해서도 젊은이들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다.
    대학원생 S씨는 말한다.
    "위 세대는 개개인의 능력과 상관없이 사회가 그들을 끌고 갈 수 있을 만큼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대에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지금은 개인이 무능하면 나락으로 떨어지고 사회가 그를 구원해주지도 못한다. 그런데 위 세대는 그 불안감에 대한 이해는 없이 '네가 노력을 안 해서 문제'라고만 탓한다."

     학부생 K씨의 생각은 그러나 다르다.
    "시리아 난민들을 보면서 당신은 무엇을 생각했는가? 바다에 떠내려 온 세 살짜리 아이의 죽음
    앞에서 불쌍하다 하지 마라. 지옥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난민'이 되어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바로 지옥을 경험하는 것이다. 진정한 지옥을 경험해 보려면 멀리도 말고 북한을 보라. 지옥은
    바로 그런 것이다. 서푼도 안 되는 투정일랑 부리지 마라."

     자, 그렇다면 결론을 내려보자.

    네이션 빌딩(나라 만들기) 세대가 지금까지 온통 '헬 조선'과 '기울어진 운동장'만 만들어왔다는 식으로 말하진 말자. 그들은 엄혹한 여건에서 최선을 다해 이만큼 이뤘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처럼 했으면 어쩔 뻔했나? 우리도 먹을 게 없어 거리에 나가
    개, 고양이 사냥을 했을지도? 우리가 이룩한 성취의 뒤안길엔 그러나,
    고쳐야 할 부분이 없을 리 없다. 다만 그걸 공멸(共滅)이 아닌 윈·윈 방식으로 풀어가야 한다.
    철밥통, 금수저, 갑질, 흑막은 여-야, 좌-우, 탈법 오너-귀족 노조,  헌 정치-새 정치 할 것 없이 어디에나 다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IMF는 "한국 경제가 고령화, 노동시장 왜곡 등 구조적 어려움에 부닥쳐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재정 건전성 유지, 노동 구조 개혁, 사회복지 지출의 '신중하고 선별적'인 확대"를 주문했다. 이 역시 '로빈 후드 방식'보다는 노·사·정 모두의 상호적 체질 개선을 권유한 말로 들린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