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은 해묵은 틀 걷어찬 '자유로운 시민체'의 반란3당 鼎立 체제 출현엔 진일보한 정치문화 열망 담겨
  • 4·13 총선 민심은 한마디로 '거역(拒逆)'이었다. 유권자들이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던 해묵은 틀을 걷어차고, 각자 '필 꽂히는 대로' 한 표를 던졌다. 광주-호남 유권자들은 친노-친문-운동권 야당을 배척하고, 제3당을 선택했다. 상당수 보수 유권자들도 정당투표에선 여당을 제치고 제3당을 찍어주었다. 대구 수성 갑 유권자들은 전통적인 '새누리 텃밭'임을 거부하고 김부겸 후보 손을 들어주었다. 부산-경남 유권자들은 다섯 군데서나 비(非)여당 후보를 뽑아 주었다.


    이렇게 해서 친야(親野) 아닌 친여(親與) 유권자들이 대거 이탈해 여당에 결정타를 날렸고, 친여 아닌 광주-호남 유권자들이 친노(親盧)-친문(親文)-486 운동권에 치명타를 먹였다. 4·13 민심은 바로 이거였다. 기존의 '특정지역=특정정당' '특정성향=특정정당' '특정집단=특정정당'이라야 한다던 판에 박은 틀을 거부한 독립적 개인들, 즉 자유로운 시민체(市民體·citizenry)의 반란이었다.

    이 반란은 "새누리당이 과연 참 보수인가?" "그들이 과연 보수 국민의 대표 자격이 있나?"를 물은 것이었다. 그리고 "친노-친문이 과연 참 진보인가?" "그들이 과연 진보국민과 호남도민의 대표 자격이 있는가?"를 물은 것이었다. 이 물음은 결과적으로 제3당, 국민의당을 약진시켰다. 그리고 양당 독과점 체제 대신 3당 정립(鼎立) 체제를 출현시켰다. 유권자의 뜻이 그랬다면, 국민의당은 앞으로 19대 국회 같은 '최악의 국회'를 뒤로 한 채, 보다 진일보한 정치 콘텐츠-정치과정-정치문화를 이룩하는 촉매가 돼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국민의당은 당의 중심 노선부터 먼저 확고하게 정리해둬야 한다. 같은 당 안에도 여러 의견이 엇갈릴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중심은 서 있어야 한다. 안철수 대표는 일찍이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고 말한 바 있다. 다소 투박한 표현이기는 했지만, 국민의당이 이만 정도의 위상만 설정한대도 그 의미는 충분히 산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야당적 선명성 경쟁에만 급급한 나머지, 등판하자마자 '정치성 청문회' '세월호 특검법 재추진'부터 꺼내 들고 '경제 포퓰리즘'과 '안보 유화(宥和)주의'로 흐를 경우엔 "그러려거든 친노-친문과 왜 갈라섰느냐?"는 질문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경제 포퓰리즘은 마약과도 같은 것이다. 지도층과 국민이 이 맛에 한 번 빠졌다 하면 그 중독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20세기 아르헨티나와 21세기 그리스가 그렇게 해서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 우리 경우도 일부 정치인이 청년들에게 현금을 나누어주겠다고 떠들고 있다. 그렇게 하다간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가 그토록 애써 쌓아올린 공든 탑(塔)마저 연기처럼 사라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안철수 대표 등은 이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다.

    '안보 유화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말은 대화와 협상의 원칙 자체를 파묻자는 뜻이 아니다. 남북 간의 평화-공존-교류-협력을 누가 마다할 것인가? 문제는 김정일-김정은이 우리의 그런 '햇볕 충정'을 존중하기는커녕, 시종일관 배신해 왔다는 사실과 진실을 에누리 없이 직시(直視)하자는 것뿐이다.

    안철수 대표는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정면으로 비난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분명하게 지적해 둘 것이 있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포함한 '강력한 대북제재'는 박근혜 대통령의 뜻이기 전에, 전(全) 세계의 뜻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유엔안보리의 일치된 뜻이다. 이에 반대하는 것은 따라서 박근혜 정부에 반대하는 것이기 전에, 전 세계에 반대하는 것이 된다. 국민의당이 그런 '반(反)세계'로 간다면 그게 과연 합리적 제3당 명분에 맞는 것일까? 국정 역사교과서 방침도 폐기하겠다고 했는데, 그럼 반(反)대한민국 역사교과서를 청소년들에게 세뇌하는 것엔 어떻게 대처할 작정인가?

    국민의당이 가야 할 길은 너무나 자명하다. 새누리당처럼 공심(公心)을 떠나 사심(私心)의 격투기장으로 가선 안 된다. 친노-친문 같은 이념집단의 '통일전선 ' 꼼수에 넘어가서도 안 된다.  제3당으로서 줏대를 살려 '웰빙 보수'와 '낡은 진보'의 꽉 막힌 국회를 '해결의 국회'로 바꿔놓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뉘 알리, 2018년 대선 때도 상당수 보수 유권자가 국민의당을 쳐다볼지. 이제는 산업화-민주화 프레임만으로는 안 되는 고도 지식정보 시대다. 'IT 맨 안철수'가 이 시대를 과연 어떻게 다룰지 궁금하다.


    류근일 /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