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념전쟁 더 심화된 단계로 가나
  • 멀리서 보자니 국내에선 지금 중요한 이념논쟁이 일고 있는 것 같다.
    일부 '진보'라는  논자가 최근 작고한 신영복 씨를 일컬어
     "그는 붉은 경제학도였다"라고 긍정적 취지로 말한 것을 두고,
     자유주의-보수주의 시민사회 평론가들은
     "이제는 아예 톡 까놓고 그래, 어쩔래? 뭐가 나쁘다는 거냐?"는
    식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는 "용공조작 하지 말라" "종북몰이 하지 말라"는 식으로 나왔지만
    이제부터는 "그래 붉은 것 맞다. 그래서 어떻다는 것이냐?"라는 식으로
    나오기 시작한 게 만약 맞는다면
    한국사회의 이념전쟁에는 전과 다른, 새로운 국면이 왔다고 할 만하다.
     
    우리 사회에는  4. 19 혁명 직후부터 이미 혁신계 운동권 일각에
    중도좌파을 넘어선 극좌파가 편승했던 게 사실이다.
    이 흐름이 1960년대의 통혁당 사건과 1970년대의 남민전 사건으로 터졌다.
     
    이 세대가 물러난 다음에는 1980년대의 마르크스- 레닌주의 그룹과 주체사상 그룹이
    한국 극좌파의 새로운 담당자들, 즉 386 세대로 등장했다,
    이들은 겉으로는 진보, 민주화, 민족주의를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마르크스-레닌주의, 김일성주의, 노동계급 혁명, 식민지 해방론을 추구했다.
     
     
  • NL 계열인 구 통진당 이정희 대표와 이석기 전 의원. ⓒ뉴데일리
    ▲ NL 계열인 구 통진당 이정희 대표와 이석기 전 의원. ⓒ뉴데일리
     
     
    문제는 그런데 이런 사실을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지 알고 내 아는데도"
    지금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느냐면서, 엄연히 '있는 것'을 '없는 것' 또는
    수구꼴통들이 '꾸며낸 것'으로 덮어두는 게
    마치 리버럴 지식인의 자세인 양 행세하는 버릇이 일세를 풍미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극좌파는 자유주의-보수주의자를 수구꼴통이라고 욕해도 좋지만,
    자유주의-보수주의자는 극좌파를 극좌파라고 욕해선 안 되는 것처럼 세상 풍조가 돌아갔다.
    말도 안 되는 불공정 게임이었다.
     
    이데올로기 투쟁에선 심지어는 광의의 좌파 안에서도
    사회민주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의 치열한 논쟁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극좌파가 헤게모니를 장악한 한국의 이념 전선에선
    좌파는 우파를 마음대로 공격할 수 있어도 우파는 좌파를 섣불리 공격했다가는
    지식인 사회에 발을 못 붙일 정도가 되었던 게 그간의 우리 현실이었다.
     
    대학 교수가 되려 해도, 예술활동을 하려 해도, 영화를 만들려 해도
    이른바 '생계형 좌파' 시늉이라도 해야만 했던 게
    한국 지식인 사회의 일그러진 풍속도였다.
     
    우리는 이런 위선과 불공정을 언제까지 끌고 가야 하는가?
    엄연히 있으면서 없는 시늉을 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 김일성주의이면서도
    무슨 '민족 민주' 어쩌고 하며 통일전선 단계의 전술적 용어나 내세우는 따위의
    거짓일랑 이젠 더 이상 용납해선 안 된다.
     
    정부도, 정치권도, 지식인 사회도 이제는 정확하고 정직한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덮어놓고 보수니 진보니 해서도 곤란하다.
    극좌파를 중도좌파나 진보적 리버럴인 양 포장하고 위장하는 것도 더이상 통용돼선 안 된다.
     
    '민족 민주 민중 민주주의' 운운 하는 것도 속임수다.
    그건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제3세계적 발현일 뿐이다.
    이걸 우파적 민족주의와 별로 다르지 않은 것처럼 뒤범벅해서
    대중에게 판촉하는 사기도 이제는 용인하지 말아야 한다.
     
    신영복 사후논쟁을 보면서 수 십년 동안 있어왔던 우리 사회 또는
    한반도 전체의 이데올로기 싸움이 이제 오픈 게임을 거쳐 메인 게임으로 진입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본격전 국면에선 아마추어는 빠져야 한다.
     
    자유지성이냐 전체주의냐가 이 본격 싸움의 주제다.
    자유지성 전사들과 전체주의 변혁론자들이 한 판 붙는 아마겟돈 전쟁이다.
    자유지성 진영은 개인의 존엄을 생명처럼 여기는 다양한 양심인들의 네트워크이고,
    전체주의 진영은 이미 옛날 이야기가 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제3 세계적 아류다.
    이 싸움엔 이런 저런 종류의 얼치기들은 끼일 수 없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