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상진 교수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
      
     국민의 당 창당준비위원회의 공동 위원장으로 초빙된 한상진 교수가
     '성찰적 진보'라는 개념을 발제(發題)했다.
    이것으로 계파 패권정치, 486의 권력화, 소모적 이념논쟁으로 집약되는
     '낡은 진보'를 대치하자는 것이다.
    '성찰'이란 그래서 친노-486 NL 운동권으로 지칭되는
    기존의 올드 레프트(구좌파) 혁명론을 청산하고
    '중도 개혁' 노선으로 가자는 함축인 셈이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몇 해 전 이런 위상을
     '참된 진보(true progressivism)' '중앙의 정치(centrist)' '중도(middle of the road) 정치' 등으로 표현한 바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이 스펙트럼은 '성장을 해치지 않는 불평등 시정'이라고 풀이되었다. 우리의 경우는 안철수 의원 말 맞다나, 분배문제에서는 진보적으로 간다 하더라도
    안보-대북 정책에서만은 정통주의로 임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을 것이다.
     
     한상진 교수는 알려진 대로 1890년대에 '중민(中民)'이라는 개념을 주장한 적이 있다.
    극좌계열의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론과 다른, 중산층과 서민(庶民) 등
    보다 광범위한 국민/대중/시민의 역할을 설정한,
    한결 온건하고 점진적이며 비(非)혁명적인 개혁주의 노선이었다.
    당시는 계급혁명론과 식민지해방론을 부르짖는 극좌파가 운동을 장악했던 때라,
    한상진 유(類)의 '중민이론'이 크게 부각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극좌파의 잔재인 친노-486 패거리가 지지기반을 상실하고 있는 오늘에 이르러
    '한상진적 중민‘ 개념이 새로운 정당운동의 화두로 복귀하고 있는 셈이다.
     
  •  신당은 물론 안철수 개인의 당도 아니어야 하고
    한상진 개인의 개념이 장악할 당도 아니어야 한다는 당위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신당의 기본 노선이 적어도 1980년대 이래의
    계급혁명론, 식민지해방론, 종속이론, 세계체제론,
    마오쩌뚱 사상, 주체사상에서 벗어나,
     자유민주주의 정체(政體)를 존중하는 '중도개혁‘의 스펙트럼'에
    서야 한다는 당위만은 꽤 넓은 설득력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위상에 설 때 한상진-김한길-안철수의 라인업은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된다. 
     
     반면에 이에 비해선 국민의 당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측면,
    즉 ‘계몽된 보수’의 측면이 과연 제대로, 적절하게 대표되고 있는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지금 거론되고 있는 면면을 과연 존경받는, 또는 존경받을 만한
     ‘합리적 보수’의 아이콘이라고 불러줄 수 있을지가
    심히 “글쎄올시다”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변동이 있을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어김없이 얼굴을 살짝 내비치곤 하는,
    정말 식상할 대로 식상한 왕년의 다년생 구면(舊面)을 갖다 놓고
    “이게 합리적 보수니라” 한다 해서 그게 단 한 뼘의 약효라도 낼 수 있을지는
    심히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관한 한 안철수 의원의 사람 보는 눈이
    어째 그러냐는 불만이 드는 건 필자만의 편견일까?
     
     이론가인 한상진 교수에게 끝으로 이런 부탁의 말을 전하고 싶다.
    민주국가에 진보는 있을 수 있다. 있어야 한다고 말해도 좋다.
    그러나 전체주의적 극좌가 진보정치의 헤게모니를 장악해온
    그간의 한국적 현실만은 자유, 민주, 평등, 박애, 인권, 평화, 공정, 진보의 이름으로
    반드시 청산돼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한상진 교수가 참여하고 있는 국민의 당이
    반드시 그런 청산의 역할을 해주기를 희망한다는 것-이 말을
    1980년대에 알았던(그리고 사석에서 담론도  가끔 나눴던)
    한상진 교수에게 꼭 전하고 싶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