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金泳三 식 文明파괴, 옛중앙청 철거

    이 건물엔 19년간의 日帝역사와 그 위에 덧칠해진 50년의 한국 현대사가 함께 쌓여 있다.
    金泳三정부는 日帝의 악몽보다 더 귀중한 한국 現代史 부분의 파괴를 감추기 위해서
    시계바늘을 50년 뒤로 돌려놓은 文法으로 [舊 조선총독부 철거]라고 말한다.
    이것은 언어의 속임수이다.

  • 趙甲濟   

 나는 김영삼 대통령의 여러 실책 중 대표적인 것으로
옛중앙청 건물(당시엔 국립중앙박물관) 철거를 꼽는다.
문명국가에선 희귀한 문화재 파괴, 역사 파괴였다.
이 건물이 철거되고 있을 당시 월간조선에 썼던 기사를 20년이 지나 다시 읽어보았다. 

 <金泳三정부는 [現 국립중앙박물관 철거]를 [舊 조선총독부 철거]라고 강변하고 있다. 철거되고 있는 이 건물은 현재는 박물관으로, 그 전엔 중앙청으로, 그리고 50년 전에 조선총독부로 쓰여졌다. 해방된 그날 이 건물을 철거했다면 [舊 조선총독부 철거]란 표현이 맞다.

 이 건물엔 19년간의 日帝역사와 그 위에 덧칠해진 50년의 한국 현대사가 함께 쌓여 있다. 金泳三정부는 日帝의 악몽보다 더 귀중한 한국 現代史 부분의 파괴를 감추기 위해서 시계바늘을 50년 뒤로 돌려놓은 文法으로 [舊 조선총독부 철거]라고 말한다. 이것은 언어의 속임수이다. 속임수的 발상으로 民族正氣를 도모할 수 있을까. 문체부장관은 이 건물철거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친일파]라고 공언했다. 국가가 아닌 정권에 반대할 뿐인데도 [빨갱이]로 몰고, 개혁 그 자체가 아닌 金泳三식 개혁을 반대하는 데도 수구세력이라고 지목, 약점을 잡으려드는 기관원 식의 용어가 소위 문민정부의 文化담당 책임자 입에서 나왔다는 것은 [문민]의 제1조건인 교양의 부족을 자백한 것이다. 이런 행태는 이 건물의 철거에, 전임 대통령의 집무실이었던 옛 청와대 본관의 철거와 함께 다른 진짜 의도가 숨어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민족정기 회복으로 위장하여 한국 現代史의 영욕을 상징하는 2大 건물을 없애버림으로써 대한민국의 과거 정통성을 파괴하는 대신에 金泳三 정권을 역사 속에서 돋보이게 하려는 상징조작!

무엇보다도 국립중앙박물관의 상투를 잘라내는 행사가 광복50주년 행사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戰亂과 독재를 극복하고 한국인이 이룩한 지난 50년의 엄청난 성취를 딛고서 세계를 바라보며 미래를 생각하는 장쾌하고도 비장한 기회로 삼았어야 할 그 자리에, 50년에 한 번 있는 그 타이밍에 조선총독부의 유령을 불러내어 과거지향적인 증오심의 상기를 연출한 金泳三정부의 문화적 수준은 두고두고 화제가 될 것이다. 

건설과 비전이 아닌 [과거]와 [파괴]를 광복 50주년의 주제로 삼은 金대통령을 우리 세대는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더구나 광화문 일대 8·15기념 행사장의 운영은 행사 전문가들 사이에선 학예회 수준으로 평가되었다. 초라하고 앞 뒤 안맞는 8·15기념식과 군사정권의 작품인 서울올림픽 개회식의 일사불란과 예술적 완벽성을 비교해보라. 金泳三정권은 과연 군사 文化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서울올림픽이나 서울 定都 6백주년, 광복 50주년 같은 기념 행사의 의미는 [국민적 추억 만들기]이다. 서울 올림픽의 감동을 기억할 때마다 우리는 韓民族의 저력을 확인한다. 광복 50주년 행사에서 우리는 10년 뒤에 무엇을 추억할 것인가.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도록 역사가 마련해 준 그 무대에서 형편없는 연기로 관객을 실망시킨 연출가와 배우는 쉽게 용서되지 않을 것이다.

 조직경영과 국정운영의 미숙함과 무능을 위선적 개혁과 선동적 정치로 호도하려 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金泳三대통령은 집권 후반기에 자신이 깨끗하면서도 유능한 인물임을 증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깨끗하지만 무능한] 지도자는 [부패하지만 유능한 지도자]보다도 더 큰 해악을 국가에 끼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사 갈 집도 결정하지 않고 잘 살던 집을, 그것도 민족의 정신을 모신 국립중앙박물관을 먼저 헐어 버리고 임시 건물로 나앉는 이런 反文明的 정책을 만약 프랑스 같은 선진국에서 추진했다면 그 정권은 붕괴되었을 것이다. 미테랑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을 루브르 박물관의 증축으로 꼽고 있는 나라, 대통령이 결정한 약탈문서의 반환을 말단 공무원이 거부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金泳三식 先철거 後건설은 아예 입안 단계에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말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선 [대통령의 결단]이란 말 한 마디로 이런 무리가 성공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불만 많은 지식인도, 정치인도 숨을 죽이고 있다. 이런 무리를 저지할 행동력이 없는 한국의 지식인과 지도층이 과연 이 나라를 지킬 수 있을까. 오로지 권력과 권위 그 자체에 경의를 표하고 위선적 명분에 가위눌린 한국 지도층의 기회주의적 태도는 金泳三정권에 대해서도, 그 전 독재정권에 대해서도 되풀이되었다. 지식인·지도층의 수준이 이렇다면 金正日이 서울을 점령하여 권력을 잡아도 그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경의를 표하지 않을까. [민족정기 회복]이란 명분과 [친일파]란 언어폭력에 주눅든 대다수 지식인들의 침묵과 일부 인사의 지지를, 金泳三대통령은 국민적인 찬동으로 오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릇된 역사관과 문화에 대한 無知를 증거하는 건물파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그 책임자의 인간됨을 설명하는 자료로 활용될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돔이 철거되던 날 金대통령은 모처럼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그날 그가 받았던 그 환호는 미래의 어느 날엔 경멸의 웃음소리로 바뀔 수가 있다.>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