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兩金 시대’를 돌아보며
      
     김영삼 전(前) 대통령이 서거했다.
    필자는 언론인으로서 ‘취재원 YS'와 개인적인 추억거리를 가지고 있다.
    5공 시대에 김영삼 야당 당수는 필자에게 남산에 있는 외교구락부로
    점심을 먹으러 오라고 가끔씩 초대한 적이 있다.
    당시 최고의 뉴스 메이커 중 한 사람인 YS와 만날 기회를 마다 할 언론인은 없었을 것이다.
     
     만나면 그 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한꺼번에 묻고 답을 듣느라 1~2 간이 후딱 지나가곤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도중 웨이터가 음식을 서브하러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것은 정한 이치.
    그런데 그 때마다 YS는 하던 말을 뚝 그치곤 하는 것이었다.
    보안을 위한 것이었다.
    당시의 정보기관은 김영삼 김대중이라면 웬수 중 웬수로 쳤다.
    그래서 24시간 미행은 물론이고, 양김 씨가 잘 가는 주요 식당엔 녹음기를 설치하고,
    웨이터 중에도 정보원(源)을 심어놓았다고들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렇게 YS를 만나고 오면 그 다음 날엔 반드시 기관에서 찾아와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고 물어오곤 했다. 그러면 필자의 대답은 늘 같았다.
    “내가 정부 욕을 좀 했더니 너무 그러지 말라고 하던데?”
    그러면 그냥 허허허 웃고 돌아갔다. “알았습니다, 네” 하며.

  • 하기야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할 건더기가 없었다.
    역모(逆謀)를 하려면 상도동 식구들끼리 몰래 하면 했지
    왜 기자에게 “나 역모 한다”고 누설하겠는가? 
 
 양김 씨와 대화하면서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가장 곤란했던 건
그 분들 상호간의 라이벌 의식이 묻어나는 대목이었다.
양김 씨는 이야기 하면서 상대방을 슬쩍 건드리고 지나가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하 참 내가 잘 알면서도 그 사람한텐 번번이 속는단 말이야”
“이런 어려운 일을 저 사람이 어떻게 한답니까?”
이럴 때 필자는 절대로 말로 대답하진 않고 그냥 하하하 하고 웃어넘기곤 했다.
고래 사이에 잘못 끼었다간 양쪽으로부터 얻어터지는 수가 있다.
 
 그러나 정말 아무리 애를 써도 웃어넘길 수 없었던 적이 있다.
양김 씨가 동시 출마해서 노태우 후보에게 월계관을 갖다 바친 사건 말이다.
그 때 필자는 양김 씨에게 정말 화가 났다.
그 중 한 분에게 조금 더 화가 났지만 두 분 다 이제 고인이 된 마당에 굳이 거명을 하진 않겠다. 어쨌든 이제 양김 시대는 물리적으로도 끝났다.
 
 양김 정치는 투쟁의 정치였다.
그들의 민주화 또는 민주주의란 곧 저항을 의미했다.
싸움으로 시작해 싸움으로 일관했다.
양김 씨가 대단한 건 그들이 곧 싸움을 잘했다는 뜻이다.
회절하지 않고 배신하지 않고 백절불굴로 싸워 이긴 것-이게 양김 씨의 탁월함이었다.
그걸로 보스가 되고 대통령이 되었다.
양김 시대를 산 사람들이라면 여기다 누가 토를 달겠는가?
말이 그렇지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반(反) 권위주의 투쟁을 한다는 건 결코 스포츠가 아니었다.
 
 양김 씨는 대통령 직(職)도 싸움하듯 했다.
 30~40년 묵은 기득권을 하나하나 허무는 일이 어찌 싸움 아니겠는가?
이건 물론 양면성을 갖는다. 개혁은 해야 했다.
그러나 그러자니 경영이란 점에선 코스트(비용)가 날 수밖에 없었다.
운동가/투사, 그리고 경영인/관리자는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니었다.
여기다, 싸우자니 세력이 필요했고, 세력을 거느리자니
자연 상도동계 동교동계 하는 사당(私黨)이 있게 마련이었다.
지역주의가 더 심해졌고 '측근' ‘끼리끼리’가 곧잘 사고를 치기도 했다.
 
 이제 한국정치엔 양김 스타일의 보스는 없다.
보다 ‘근대화 된 리더십’이 필요할 것이다.
 문제는 요즘 정치판엔 그 ‘신식 리더십’조차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 이후를 생각할 때 여든 야든 누가 과연 ‘새로운 리더십’이라는 걸 느끼게 할지
지금으로선 보이지가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김무성 문재인 씨가 섭하다 하겠지만,
거짓말을 할 수야 없지 않은가?
 
 먼저 가신 김대중 전 대통령, 어제 가신 김영삼 전 대통령, 제 말 들리십니까?
두 분이 비워놓은 자리가 어수선 하고 어지럽습니다.
계실 때 필자 같은 글쟁이가 가끔씩 꼬챙이 질 한 것, 이제 그만 노여움 푸시고 편히 쉬십시오.
두 분과는 다 처음엔 괜찮았다가 나중엔 서먹해졌지요?
피차 아는 까닭이야 다 있었지만 그냥 묻어두지요.
인생은 일장춘몽 아니겠습니까?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