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인정 교과서 필진 상당수 이 곳 출신, "만경대 정신" 강정구 교수 등 참여
  • 현행 검인정 한국사교과서. ⓒ 뉴시스
    ▲ 현행 검인정 한국사교과서. ⓒ 뉴시스

    정부의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 전환 방침에 반발해,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 거부선언을 한 연세대 사학과 교수 13명 중 절반에 가까운 6명이 좌파성향의 역사연구단체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직을 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좌편향 역사학자들이 대학가의 집필 거부 선언을 주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앞서 지난 13일 서울 연세대 사학과 교수 13명은, "제의가 오리라고 조금도 생각하지 않지만 향후 국정교과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어떤 형태로든 일체 관연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연세대 사학과 교수들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은 학문과 교육이라는 안목이 아니라, 오로지 정치적 계산만을 앞세운 조치"라고 비판하면서, "유신정권이 단행한 교과서 국정화의 묵은 기억이 재현되는 모습을 보며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날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 거부선언에 이름을 올린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김도형, 김성보, 도현철, 백영서, 설혜심, 이재원, 임성모, 전수연, 조태섭, 차혜원,  최윤오, 하일식, 한창균 교수 등 13명이다.

    연세대 사학과 교수들의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 거부 선언을 계기로, 서울대와 이화여대, 경희대 등 다른 대학 역사관련 학과 교수들의 집필 거부 선언이 잇따랐으며, 좌파 매체들은 이런 사실을 비중있게 보도했다.

    특히 좌파 매체들은 역사 전공 교수들의 집필 거부선언을 토대로, 교수사회 전체가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반대하는 것처럼 인식 될 수 있는 기사를 쏟아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쟁이 좌우 진영간 정치적 이념적 갈등으로 비화되면서, 집필 거부에 앞장선 이들의 출신 배경을 둘러싼 논란도 거세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 거부를 선언한 연세대 사학과 교수들의 절반 정도가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은, 비상한 관심을 끈다.

    역사문제연구소 홈페이지를 보면 연세대 사학과 교수 중 김도형, 김성보, 도현철, 백영서, 임성모, 최윤오 교수 등 6명이 이 연구소 연구위원 직을 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역사문제연구소 홈페이지. ⓒ 화면 캡처
    ▲ 역사문제연구소 홈페이지. ⓒ 화면 캡처

    이들이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있다는 사실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역사문제연구소와 그 구성원들의 행적 때문이다.

    현재 국사학계의 주류가 수정주의적 민중사관을 따르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수정주의적 민중사관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지배계층에 대한 피지배계층의 투쟁, 기득권의 억압과 착취에 대한 민중의 저항, 즉 '계급투쟁'에 초점을 맞춰 인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나아가 민중사관은 한국사를 세계사의 하나로 인식하지 않고 폐쇄적 민족주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사회의 발전이나 삶의 질 향상과 같은 현대복지국가적 요소보다는, '통일'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통일지상주의'적 관점도, 민중사학자들의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특징 중 하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민중사학자들은 북한과 관련된 기술에서 우호적-온정적 태도를 보이는 반면, 대한민국의 건국과 발전은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현행 검인정 한국사교과서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들 교과서 집필진 상당수는 민족문제연구소나 역사문제연구소, 혹은 이 두 연구소와 밀접하게 연결된 전교조, 전국역사교사모임에 적을 두고 있으며, 이들은 거의 예외없이 민중사관을 바탕으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조망하고 있다.

    때문에 이들이 주요 집필진으로 참여한 현행 검인정 한국사교과서의 근현대사 부분 서술은, 대부분 친북-좌편향적 성향을 띠고 있다.

    특히 박원순 서울시장이 초대 이사장을 맡은 역사문제연구소(역문연)와, 그 뒤에 설립된 민족문제연구소(민문련)는 민중사관의 산실과 같은 역할을 했다.

    역사문제연구소가 학술연구와 서적 발간을 통해 민중사학의 기틀을 다졌다면, 민족문제연구소는 그 토양 위에서 민중사관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동영상 백년전쟁은, 민중사관의 실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동영상 백년전쟁 포스터. ⓒ 뉴데일리DB
    ▲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동영상 백년전쟁 포스터. ⓒ 뉴데일리DB

    동영상 백년전쟁은 이승만 대통령을 나치의 선전장관 괴벨스에 빗대는 방식으로, 대한민국을 건국한 국부들을 파렴치한 친일파로 매도했다.

    심지어 동영상 백년전쟁은 이승만 대통령을 20대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디른 독립운동가를 죽음으로 내몬 폐륜아처럼 악의적으로 왜곡했다.

    역사문제연구소와 민족문제연구소의 이념적 사상적 지향적이 무엇인지는 이들 연구소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이들의 행적으로 통해서 엿볼 수 있다.

    이 두 연구소의 이념적 지향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 임헌영씨다. 본명이 임준열인 임헌영씨는 남로당 총책 박헌영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이름을 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박헌영의 아들인 원경스님과 함께 역사문제연구소 설립을 주도했다.

  • 역사문제연구소 설립을 주도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 뉴데일리DB
    ▲ 역사문제연구소 설립을 주도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 뉴데일리DB

    역사문제연구소 창립과 함께 부소장을 맡은 임헌영씨는, 2003년 민족문제연구소 3대 소장으로 취임했다.

    원경 스님과 임헌영씨는 지금도 역사문제연구소와 인연을 맺고 있다. 역사문제연구소 홈페이지를 보면 원경스님은 연구소 이사 겸 운영위원으로, 임헌영씨는 연구소 자문위원으로 이름이 올라가 있다.

    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서중석 교수(성균관대)를 비롯한 구성원들의 과거 발언들도, 이 연구소가 지향하는 이념적 색체를 잘 보여준다.

    서중석 교수는, 2008년 8월 24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의 건국 자체를 부정했다.

  • 서중석 교수. ⓒ 뉴시스
    ▲ 서중석 교수. ⓒ 뉴시스

    서중석 교수는 당시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의 건국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 '정부수립'이 더 정확한 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라 부르는 것도 창피한 일 이니냐"며, 이승만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비하하기도 했다.

    나아가 서중석 교수는 "이승만은 친일파로 하여금 독재정치나 부정선거를 하는 데 앞장서게 함으로써 인권이나 민주주의에 기여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6.25 남침유도설 등의 발언으로 남남갈등을 초래한 강정구 전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도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강정구 교수는 2001년 8.15 축전 방북단으로 북한을 방문해, 북한 당국이 김일성의 생가라고 선전하고 있는 만경대를 찾아 "만경대 정신을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는 소감을 방명록에 적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검찰은 방명록 글귀를 토대로, 강정구 교수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 강정구 전 교수. ⓒ 뉴시스
    ▲ 강정구 전 교수. ⓒ 뉴시스

    강정구 교수는 이후 한 계간지에 "6.25 전쟁은 북한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라는 글을 쓴 혐의로 2005년 추가 기소됐다.

    이 과정에서 법무부장관으로 있던 천정배 의원은 검찰이 강정구 교수를 구속기소하기로 방침을 정하자,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강 교수에 대한 불구속 기소를 종용했다. 당시 김종빈 검찰총장은 천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항의하는 뜻에서 자진사퇴했다.

    강정구 교수의 반국가적 행보는 이후에도 이어졌다.

    강 교수는 2010년 동국대 고별 강연에서 "(천안함 사태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사건으로 만든 것이기에 `사건화'다"라고 주장해 큰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이날 강연에서 "천안함 사건화는 한국과 미국, 일본의 수구세력이 역사의 흐름을 역행시키려고 주도한 발악의 한 형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연구소 고문으로 있는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도, 국가보안법 폐지 선언에 이름을 올리는 등 좌파적 행보를 이어왔다.

    참고로 2009 개정 한국사 검인정 교과서를 기준으로 할 때, 집필진 중 역사문제연구소 출신은 모두 6명이다. 특히 천재교육의 경우 집필진 5명 가운데 4명이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출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