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 [진보-보수], [산업화-민주화] 구분은 엉터리!"

  • 편집자 주 :

    지난 16일 조선일보는 <역사 교과서를 '이념 전쟁' 수렁에서 구해내야 한다>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했다.
    조선일보는 또 같은 날 지면에 <서로 죽여야 끝나는 歷史 십자군 전쟁을 바라는가>는 제목의 윤평중 한신대교수의 칼럼을 실었다.
    이들 사설과 칼럼은 평양전체주의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동일한 가치잣대로 평가하는 전형적인 [양시양비론]을 교묘하게 구사했다.

    국사편찬위의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잘못된 극우 낙인찍기와 일부 정치인들의 허황된 논평 역시 조선일보의 이런 관점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이 글은 이런 관점애 대한 정면도전이자 비판이다.


    요즘 좌-우 구분이 유행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싸고 서로 이념을 구분해서 상대방에게 [좌파-우파] 딱지를 붙이느라 분주하다.
    그 와중에 스스로 교양 있는 척 자처하는 양비론자들은 한술 더 뜬다. 
    이들은 “중립이어야 한다”는 둥 “이념적 편향은 안 된다”는 둥 잘난 척 하느라 바쁘다.


    어차피 싸움할 것, 좀 제대로 알고 싸우자.

    “우리는 누구이고 상대는 누구인가?”

    나치(Nazi) 정치철학자 칼 슈미트(K. Schmitt)에 따르면 정치란, “우리와 상대를 구분하는 것”이란다.
    여기까지는 맞는 소리다.
    그러나 잘 못 구분하면 나치 같은 놈이 될 뿐이다.
    잘 구분해야 한다.
    정치란 “우리와 상대를 [올바르게] 구분하는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와 상대를 잘, 정확하게, 올바르게 구분하기 위해 이제 다시 한 번 묻는다.

    “우리는 누구이고 상대는 누구인가?"


  • ▲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   ⓒ 뉴시스
    ▲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 ⓒ 뉴시스


    1. 아무데나 극우 딱지 붙이냐?


    박원순-박주신 병역의혹을 파헤치고 있는 양승오 박사와 차기환 변호사에 대해, 어느 영상의학 전문의가 [극우]라고 불렀다.
    박원순 아들의 허리-가슴통-이빨에 대해 의문을 가지면 [극우]냐?
    배꼽잡을 소리다. 
    차기환 변호사는 이 영상의학 전문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예정이다.

    이렇듯 요즘 [극우 낙인찍기]가 유행이다.

    명예훼손에 걸리지 않는 매우 지능적인 방식으로 낙인찍는 노하우도 있다.
    낙인찍는 명제를 두 문장으로 분해해서 시차를 두고 말하는 방법이다.
    말하자면 [분해-시차 낙인찍기] 수법이다.  

    이 지능적인 [분해-시차 낙인찍기] 수법을 개발한 사람은 국사편찬위원장 김정배다.  

    국사편찬위원장 김정배는 10월 12일, “국정교과서 집필진에서 극우는 배제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틀 후인 10월 14일에는 “국정교과서 집필진에서 교학사 교과서 집필자들을 배제한다”고 말했다. 
    교학사 교과서는 8종의 검인정 교과서 중에 유일하게 대한민국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한편, 북한을 잔혹한 전체주의라 비판한 교과서이다.
    2014년에 저들은 국회의원-국사교수-극렬 교육단체 등이 힘을 합쳐 교학사에 살해 협박 전화를 걸고 일선 학교를 위협하여 사실상 아무 학교에서도 채택되지 못 하도록 만들었다.


    이와 같은 처절한 사정이 있음에도 국사편찬위원장 김정배는 10월 12일과 14일 위와 같은 발언을 한 것이다.
    이 두 발언을 조립하면 “교학사 교과서 집필자들은 극우이기 때문에 배제한다”는 명예훼손 명제가 되지만, 이 명제를 두 개의 문장으로 분해한 다음, 이틀 간격을 두고 12일과 14일에 따로 따로 말했기 때문에 명예훼손을 벗어날 수 있었다.
    사실상 이는 매우 지능적인 [극우 낙인찍기] 명예훼손이다.


    [극우]가 뭔지 가르쳐 줄 테니 김정배는 귓구멍 후벼 파고 잘 듣도록!

    [극우]는 독일의 나치, 이탈리아의 팟쇼, 일제의 천황군국주의 같이 [우리민족 지상주의][폭력 지상주의]를 본질적 특징으로 삼는다.
    이때 폭력은 “총-칼로 민간인을 잡아죽이는 것”을 뜻한다.  


    평양-전체주의야말로 공산계열 학살체제임과 동시에 [조선민족제일주의][폭력제일주의]를 표방하기에 [극우]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 같은 평양-전체주의를 역성들고 변호하는 주류 국사학계야말로 [극우]의 딱가리, [극우]의 변호인, [극우]의 대변인이다.


    김정배는 주류 국사학계와 역사교사 집단을 겨냥해야 할 칼끝을 거꾸로 돌려, 이제껏 엄청난 용기로 역사교육 정상화를 위해 노력해 온 교학사 교과서 집필진을 [극우]라고 낙인 찍었다.
    이는 배신이요 반란이다.

    국사편찬위원장이 이 같은 난잡한 짓을 저지르니까 그 오른팔인 편사부장 진재관은 한 술 더 떴다.
    그는 10월 16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아예, 교학사 교과서 집필진을 리드했던 권희영(한국학 중앙연구소 교수)의 이름 석자를 거론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권희영은 교과서 집필진에서 배제한다.
    지금 국정교과서에 반대하고 있는 주류 국사학자들을 삼고초려로서 모시고 국정교과서를 만들겠다.”

    국사편찬위원회야말로 평양-전체주의 부역질을 증폭시키고 있는 본산이며, [극우 낙인찍기]를 가장 지능적으로 집행하고 있는 정치관료집단이다.


  • ▲ 남경필 경기도지사    ⓒ 뉴데일리
    ▲ 남경필 경기도지사 ⓒ 뉴데일리



    2. 좌-우 구분틀을 버려야 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자 남경필은 느닷없이 이렇게 말했다. 

    "[우파] 정부가 [좌파] 아젠다로 개혁하면 승리할 수 있다"

    웃기는 소리다.
    [좌파]가 정의되지 않고 [우파]가 규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경필 같이 무슨 소리를 해도 아무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인물이 [좌-우]를 찾으니 더 웃긴다.

    [좌-우]에 대해 생각해 보자.
    김일성을 우두머리로한 [평양것들]이 좌파인가?
    무덤 속에 들어 있는 세계 각국의 공산주의자 및 유럽 사회민주주의자(사민주의자)들이 "그런 새끼를 좌파라 부른다면, 좌파인 나에 대한 명예훼손이닷!"이라 외치며 무덤 밖으로 튀어나올 게다.
    참된 공산주의자라면 평양-전체주의에 대해 “저 놈들은 노동계급의 당을 파괴하고 3대 세습 왕조를 만들었다. 저런 놈들은 공산주의자가 될 수 없다”고 비판할 게다.
    한편, 유럽 사민주의자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고 그 틀 안에서 정치활동을 하는 집단이기에, 이미 평양-전체주의의 극악한 인권침해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맹렬하게 비판해 오고 있었다.

    이렇듯 [좌파]에는 온갖 색채가 존재한다.
    어마무시한 마르크스-레닌주의(순정 빨갱이)에서 지금 유럽 사회의 주요정당을 이루고 있는 사회민주주의까지 모두 [좌파]다.

    남경필이 말하는 [좌파]는 그 중 어느 [좌파]인가?
    유럽식 사민주의 [좌파]라고?
    그렇다면 평양-전체주의 부역질을 부채질하는 지금 역사교과서를 맹렬하게 비판하고, 이를 만들어 유통시켜 온 국사업계(國史業界, 주류국사학자와 역사교사로 이루어진 카르텔)를 쥐어패는 데 앞장서야 할 것 아닌가!

    [좌파]에 얼마나 다양한 종류가 있는지 한 번 더 살펴 보자.

    "계급정당이 지배하는 정부는 필요 없다... 혁명적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 운영하는 무정부 상태를 이루어야 한다"는 혁명적 노동조합주의(씬디칼리즘)도 [좌파]이다.
    "씨발 조또! 진실이란 없어! 다 불살라! 다 부셔!"라 발작하는 급진 포스트모더니즘(나꼼수 스타일)도 [좌파]이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좌파] 전통이 약하기에 [리버럴]이란 단어가 [좌파적]이란 의미를 가진다.

    우리가 말하는 [좌파]는 이 중 어느 [좌파]란 말인가?
    누구도 깊게 생각해 본 적 없이, 그냥 막연히 [좌파-우파] 딱지를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남경필 같은 인종에게 묻는다.
    또한 우리 자신에게 묻는다.

    "니가 말하는 [좌파]가 뭐야?
    니가 말하는 [우파]는 뭐고?"


    [경제민주주의]라는 야릇한 구호를 만들어낸 김종인-유승민 같은 인종들은,  “좌파란 국가가 때로는 사유재산권을 밟아 버릴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야~~”라고 먹물스런 소리를 할 게다.

    그으래?
    한가지 비밀을 말해 줄테니까, 귓구멍 파고 잘 들어라!  

    대한민국은 출발부터 [사유재산권을 파괴해서 새로운 사유재산권을 창출한다]는 전략을 통해 발전한 나라다.
    우남 이승만의 농지개혁과 불교정화를 봐라!

    우남의 농지개혁은 세계에서 가장 급진적인 [사유재산권 파괴] 였으며,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신속한 [사유재산권 강화]였다.
    6.25가 터지기 몇 달 전에 시행된 농지개혁은, 멀쩡하게 돌아가는 지주-소작 관계를 파괴하여, 새로운 사유재산 계층 (중소 자영농)을 만들었다.
    일년에 소출의 50%씩 걷어들이던 땅을 빼앗으면서 소출의 150%(3년치 소작료)에 해당하는 금액이 찍힌 토지증권 한 장만 달랑 줬다.
    그나마 몇 달 지나지 않아 6.25가 터지면서 전쟁인플레가 일어나는 통에, 토지증권은 휴지가 됐다.
    한마디로 지주가 토지를 강탈당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렇게 해서 확보된 토지가 북한처럼 [국가가 운영하는 집단농장]이 되었나?

    아니다! 
    수많은 농민이 그 토지를 소유함으로써 중소 자영농이 형성됐다.
    이들이 대한민국 체제를 고맙게 여겼기 때문에 6.25를 이겨낼 수 있었다.
    만약 이들이 빨치산에 합류했었더라면, 김일성박헌영이 장담했듯이 “백만명이 봉기해서 빨치산이 되는 거대한 인민전쟁”이 될 수도 있었다.


    필자 주 :
    김일성박헌영은, 스탈린에게 “백만봉기”를 개런티 했다.
    김일성을 존경하는 종북은 “개런티 한 놈은 박헌영이다. 그 놈이 뻥쳤다”고 주장하고, 박헌영을 사모하는 남노당빠들은 “김일성이 개런티했다. 나중에 박헌영님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워 죽였다”고 주장한다.
    그래!
    너희들끼리 한 번 박 터지게 싸워 봐라!
    그런데, 문성근의 “백만민란” 캐치프레이즈는 6.25 때의 “백만봉기” 카피를 모방한 것 아닌가?
    필자는 문성근이 평양 김정일/김정은에게 로열티나 지불하고 이 캐치프레이즈를 사용한 것인지, 지금도 궁금하다.


  • ▲ 1948년 7월 24일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취임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 뉴시스
    ▲ 1948년 7월 24일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취임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 뉴시스


    우남의 불교정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는 군인, 경찰, 그리고 급조된 독신 승려 집단을 동원해서, 전국의 거의 모든 사찰에 있어, 일제시대 수 십 년 동안 사찰 및 그 주변의 광활한 사찰 소유 농지(사하촌)를 [점유]하고 있던 왜속 불교 대처승과 그 일가붙이들을 하루아침에 내쫓아 알거지로 만든 사건이다.

    일제는 모든 종교를 [신토(천황숭배) 밑의 하부 종교]로 만드는 종교 정책을 폈었다.
    그래서 화엄사상 및 독신 비구승을 바탕으로 삼은 한국 조계종의 전통을 박살내는 한편,  왜색 대처승을 육성해서 전국 모든 사찰을 접수하게 만들었다.
    왜색 대처승 사찰은, 대대손손 그 대처승 가족들이 운영하는 사적(
    私的) 점유물이다.

    일제 말에 이르자 해인사, 통도사를 비롯한 전국의 거의 모든 사찰을 모두 왜색 대처승이 장악했다.
    절에 딸린 광활한 농지(사하촌)에 대해서는 대처승 가족들이 떵떵거리며 지주 노릇을 하게 되었다.
    부산 문단의 원로이며 이른바 [진보진영 문학계]의 어른 노릇을 하기도 했던 김정한이 젊은 시절(1936년)에 발표한 소설 <사하촌>은 친일파 대처승 집단이 얼마나 패악스런 지주였는지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김정한은 이 소설을 발표한 직후 대처승들에게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우남 이승만의 불교정화는 이 같은 수십만 대처승 가족들의 [사적(私的) 점유권]을 한 순간에 박탈한 강제요 폭력이요 혁명이었다.
    그 과정은 요즘 철거 용역 직원의 물리력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폭력 양아치들을 [스님]으로 만듦으로써, 한국 불교의 우스꽝스런 부패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러나 불교정화가 없었다면, 왜색 문화(친일 문화)가 지금 한국 문화를 지배하고 있었을 것이다. 
    1980년대 중반 이전에는 일본 노래 (예를 들어, <불루나이또 요코하마>, 당시 금지곡), 일본 옷, 일본 문방구, 일본 가전, 일본 문학은 너무너무 황홀한 것으로 받아들여 졌었다.
    만약 전국의 거의 모든 사찰이, 일본의 본사(
    本寺)와 밀접하게 연결된 친일파 대처승에 의해 장악된 채 지금까지 유지되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현재 우리 문화는 100%  짝퉁 일본 문화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K-Pop, 드라마, 영화로 대표되는 한류 문화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되찾은 절이 국유재산이 되었나?
    아니다.
    대한불교 조계종의 재산이 되었다.
    [왜색 불교 대처승 가족의 사적 점유권]을 파괴해서 [한국 불교 종단의 사유재산권]을 창출했던 사건이 바로 우남의 불교정화였다.


    박정희 대통령도 비슷하다.
    박정희 대통령은, 외국인의 토지소유권을 부정함으로써, 멀쩡하게 존재하던 화교의 재산권(부동산 소유권)을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화교가 거대한 집단 거주지역을 형성하고 있었던 인천 제물포 같은 곳은, 말 그대로 [부루도자]로 밀어버렸다.
    또한 화교의 공무원 취직 내지 교사 취업을 금지시킴으로써, 십만이 넘던 화교 인구를 거의 십분의 일 수준으로 줄였다.
    그 결과 지금은 중국화교 [왕서방]이 개발한 춘장(중국식 가짜 된장. 밀가루로 만든다)과 자장면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중국요리점에서 만들어진다.
    전 세계에서 [중국요리식당]을 자국인이 흉내내어 운영하는 나라는 한국 뿐이다.
    화교를 압박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정책은, 토지소유권을 부정하고 관행처럼 받아들여져 왔던 취업권을 박탈했다는 점에서는 지극히 [좌파]스럽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몰수한 토지및 고용 기회로 [한국인의 자산], [한국인의 취업]을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지극히 [우파]스럽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발전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때 막강한 정부 개입이라는 점에서는 지극히 [좌파]스럽지만, 그 힘을 이용하여 기업을 길렀다는 점에서는 지극히 [우파]스럽다.
    기업이란, “사유재산제도의 꽃이요 정화”이기 때문이다.

    [좌파]를 [사유재산권 파괴 혹은 정부 역할의 확대]로 해석한다면 우남 이승만박정희야말로 [좌파]다.
    반면에 [우파]를 [사유재산권 강화 혹은 기업 육성]으로 해석한다면 그들이야말로 [우파]다.

    유럽의 경우에는 [좌파]에 온갖 색채가 있지만, 대한민국에는 평양-전체주의 부역자들만 디글디글하다.
    대한민국에서 유럽식 사민주의를 추구하는 사람은 주대환이 유일하다. 
    그러나, 그는 정치권으로부터 완전히 거세당한 사람이다.
    그는 민노당(통진당의 전신)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으로서 일심회 간첩 사건 (민노당 간부가 간첩에게 자료를 넘겨주었었다) 때 민노당 내의 종북세력을 제거할 것을 주장하다 오히려 본인이 숙청당했다.
    [종북]이라는 단어 자체가 당시 주대환과 동일한 입장을 취했던 사민주의 성향의 민노당 사람들이 만든 단어이다.  


    또한 대한민국은, 우남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의 경우에서 보이듯이, “사유재산권/사적점유권을 파괴하여 새로운 사유재산을 형성했다”는 패러독스가 있다.
    말하자면 [좌파]스런 정책으로 [우파]의 물질적 기반을 형성한 것이다.

    이 패러독스를 무시한다면 대한민국의 비밀을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좌파-우파] 구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당신이 정의하는 [좌파]는 무엇인가?
    당신이 정의하는 [우파]는 또 무엇인가?”

    단 5분이라도 말짱한 정신으로 자기 자신이 무슨 뜻으로 [좌파-우파] 구분법을 사용하는 지 고민해 본다면, 단 10분이라도 유럽과 대한민국의 역사를 살펴본다면, 결코 [좌파-우파]를 함부로 구분지을 수 없을 것이다.
    [좌파-우파]를 엄밀하게 정의하지 않고 경망하게 구분짓는 행위는, 우남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이 이끈 우리 현대사에 깃들어 있는 패러독스를 개무시하는 짓이다.

    이제 [좌-우] 구분법을 버려야 한다.

  • ▲ 2008년 뮤지컬 '명성왕후' 언론시연회에 참석한 배우들이 열정적인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 뉴시스
    ▲ 2008년 뮤지컬 '명성왕후' 언론시연회에 참석한 배우들이 열정적인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 뉴시스


    3. 진보-보수 구분도 거짓이다


    80년대 말에 동구권이 자빠지고, 91년 12월에 소련이 해체됐다.

    이제까지 스스로를 [민족해방혁명 집단] , [민중혁명 집단]이라 부르던 운동권은, 혁명은 개꿈이란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우선 이름부터 바꾸어야 할 처지로 내몰렸다.

    그들은 스스로를 [진보]라 개명하고 상대를 [보수]라 이름 지어줬다.
    그 이전에는, 그들은 상대를 [식민지 팟쇼 매판 세력]이라 불렀다.

    졸지에 [식민지 팟쇼 매판 세력]에서 [보수]로 신분이 격상되자, 제도권은 이를 냉큼 받아들였다.
    [보수]란 뭔가 격조 있고 고풍스럽게 들리지 않는가!

    조선일보가 그 짓에 앞장서서 "보수 정론지"라고 스스로를 불렀다.


    YS 세력은 [보수]의 보수다움을 증명하기 위해, 민비를 띄웠다.
    일제와 청군을 불러들여 동학꾼을 개잡듯 잡아죽인 희대의 여인을 오직 국가와 민족만을 사랑한 고귀한 여인으로 그린 뮤지컬 <명성황후>가 YS 정부 때 나왔다.
    당시 정치권 언저리에 뮤지컬 <명성황후>의 공짜 입장권이 엄청나게 많이 뿌려졌다.
    그 때엔 아직 뮤지컬이 [문화상품]으로 성공할 수 있던 여건이 아니었다.
    스폰서가 대량으로 표를 구매해서 뿌리지 않으면 망했던 시절이다.
    스폰서는 YS 진영의 정치인들이 조직했다.

    필자 주 :
    필자는 정치권 인사가 준 표로 <명성황후>를 봤다.

    문득 바그너(R. Wagner)가 연상됐다.
    바그너는 1871년 지금의 독일을 형성시킨 현대 독일 민족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 이전의 독일은 프러시아-바이에른 등 몇 개의 작은 국가로 나누어져 있었다.
    1800년대 내내 점점 더 뜨겁게 달아오르며 정점을 향해 치닫던 독일 민족주의는 1870년,  프랑스가 프러시아를 침략함으로써 시작된 보불전쟁에서, 독일계 작은 국가들이 프러시아에 가담하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이를 계기로 1871년, 오늘 존재하는 통일 독일이 형성되었다.
    바그너는 바로 이 독일 민족주의를 화려하고 웅장하며 아름다운 음악으로 형상화한 작가다.
    바그너는 이 때문에 독일제국이 형성된 1871년에 엄청난 사회적 영향력과 지위에 도달한다.
    지금까지도 <바그너축제>가 열리는 바이로이트(Bayreuth)에 [바그너의 음악 왕국]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해였다.

    뮤지컬 <명성황후>는 바그너 오페라의 싸구려 짝퉁이었다.

    바그너 오페라가 통일 독일제국을 꿈꾸며(필자 주 : 그의 대표작들 중에는 독일 통일 이전에 작곡된 것이 많다) 독일 민족주의를 미화시킨 것이었음에 반해, 뮤지컬 <명성황후>는 부패하고 무능력한 이씨 왕실을 [국가와 민족만을 걱정하는 보수]의 아이콘이라 거짓말했다는 점이 다르다.
    뮤지컬 <명성황후>는 또한 바그너 오페라와 비슷하게, 터무니 없을 정도로 화려한 선율과 과장된 무대연출로 꾸며졌다.
    YS 정부는,짝퉁 바그너 오페라인 뮤지컬 <명성황후>를 통해, “봐! 우리는 [보수]야! 우리는 옛날부터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해 온 상류층이야!”라고 선언하고 싶었던 것일까?
    혹은 자위하고 싶었던 것일까?

    [보수]는 개뿔!
    대한민국에 [보수]는 없다.


    20세기 전세계지도자 중에 우남 이승만이나, 박정희보다 더 개혁적인 인간은 없다.
    20세기 한반도 휴전선 남쪽은 이씨왕실에서 이어진 [보수]가 만든 땅이 아니다.
    이씨왕실을 알거지로 만든 개혁과 헌신으로 만든 땅이다.
    전세계에서 혁명 없이 왕실 재산을 몰수한 유일한 국가는, 우남 이승만이 주도한 신생 대한민국 뿐이다.

    게다가 [보수]의 반대말은 [리버럴]이다.
    [진보]의 반대말은 [반동]이다.

    [급진혁명세력]이 자신의 이름을 [진보]로 바꾸려면, 마땅히 우리를 [반동]이라 불렀어야 한다.
    거꾸로, 그들이 만약 우리를 [보수]라 부르려 했다면, 마땅히 자신을 [리버럴]이라 불렀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진보 vs. 반동] 에서 [진보]를 따오고 [리버럴 vs. 보수] 에서 [보수]를 따와, [진보 vs. 보수]라는 해괴한 개족보를 만들어 냈다.
    그러니 [보수]라는 이름은 개에게 먹으라고 내주면 된다.

    그렇다.
    필자는 상대가 차라리 우리를 [반동]이라 불렀더라면, 상대의 [진보]라는 명칭을 용납할 생각도 있다.
    이왕 [반동분자 새끼들]이라 불렀더라면, 더욱 더 상대의 [진보]라는 명칭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랬더라면 우리는 상대의 목젖을 으스러뜨려 죽일 수 있었을 것 아닌가!
    게다가 상대는 [보수] 앞에 네 글자를 더 했다.
    [수구꼴통]….
    이 네 글자가 희석된 것은 불과 2,3 년 밖에 안 된다.


  • ▲ 김영삼 전 대통령(오른쪽)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김홍업 전 의원이 손을 잡고 있다.  ⓒ 뉴시스
    ▲ 김영삼 전 대통령(오른쪽)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김홍업 전 의원이 손을 잡고 있다. ⓒ 뉴시스



    4. 산업화세력-민주화세력 구분은 사기다


    [산업화세력-민주화세력] 이분법은 한완상-김정남 같은 인물을 내세운 YS 세력이 만들어냈다.
    자신을 [민주화세력]이라 불렀다.
    DJ 세력도 이 이분법을 얼른 본받아 사용했다.

    개뿔이다.

    당시 YS 세력, DJ 세력이란, 인민민주주의(PD) 혹은 민족해방혁명(NL)이라는 급진혁명노선에 심취한 청년-학생 운동을 앞장세워 과실을 챙긴, [구태의연한 야당 정치세력]에 지나지 않는다.

    박정희 대통령이 숨진 직후에 열린 79년 명동 YWCA 집회가 있었다.
    골목 골목에 나 같은 청년학생들 (지하 서클 운동자들)이 삼삼오오  40~50명 모여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 직후에 선포된) 계엄령을 즉각 해제하라”는 시국 강연회가 YWCA 강당에서 열리고 있었다.
    강연회가 끝나고 시위가 시도되었다.
    빈약한 스크럼이 잠깐 만들어 졌다.
    내 주위에 [야당 선거운동원으로 밥벌어 먹으면 딱 좋을] 정치판 떨거지들이 입에 술 냄새를 팍팍 풍기며 섰다.
    나는 그런 사람들과 같이 유치장에 끌려가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쪽팔려서 스크럼 밖으로 튀어 나왔다.
    이런 자들이 스스로를 [민주화 세력]이라 부른 것이다.
    이제는 입에서 소주 대신 양주 냄새가 나고, 스크럼 짜고 주먹을 휘두르는 대신 캐디를 끼고 골프채를 휘두른다는 점만 달라졌다.


    하나만 묻자.

    그렇게 숭고한 [민주화세력]이었다면, 왜 인민민주주의(PD) 혹은 민족해방혁명(NL)이라는 급진혁명사상에 심취한 청년-학생 운동을 견제하고, 비판하고, 그에 대해 투쟁하지 않았나?
    YS와 DJ가 단 한번이라도 인민민주주의혁명 혹은 민족해방혁명을 주장한 급진혁명세력을 꾸짖은 적 있나?


    필자주 :
    인민민주주의혁명은 PD라 불린다.
    당장 공산 소비에트 혁명을 하기에는 버거운 경우 [통일전선]을 만들어 권력을 장악하는 수법이다.

    스탈린의 개, 즈다노프(Zhdanov)가 만들어낸 혁명전략이다.

    민족해방혁명은 NL이라 불린다.
    김일성 내지 평양을 추종하는 것을 뜻한다.


    없다.
    꾸짖기는커녕, 야당 정치꾼들과 급진혁명운동권을 하나로 뭉뚱그려 [민주화세력]이라 불렀다.

    그렇다면 87년 6월항쟁은 어떻게 해서 일어난 것일까?
    [민주화세력]이 존재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다음 세 개의 요소가 결합한 것이다.

    - YS와 DJ가 이끄는 야권의 정당정치꾼들

    - 인민민주주의(PD) 혹은 민족해방혁명(NL)을 추구한 급진혁명집단

    - 군부 독재 체제에 염증을 낸 화이트칼라


    87년 6월 항쟁은 급진 청년-학생운동세력이 촉발시켜 선봉을 맡고, 야당 정치꾼들이 올라타고, 순진한 화이트칼라들이 왕창 힘을 대주어 일어난 일이다.
    다시 말해, 순정한, 잘 조직화된, 스스로의 이념을 갖춘 [민주화 세력]이란 존재한 바 없다.


    [민주화-산업화]는 사회 발전의 과정에 관한 것일 뿐, 세력의 이름이 아니다.

    예를 들어, 87년 6월 항쟁에 있던 사람들의 대다수는 젊은 화이트칼라 직장인이었다.
    [산업화] 일꾼이었다.
    낮에는 [산업화] 일꾼으로서 땀을 흘렸고, 저녁에는 민주시민으로서 자유를 위해 싸웠다.
    박정희 대통령이 만든 슬로건 “싸우면서 건설하자” 꼭 그대로였다.
    “(저녁엔) 싸우면서 (낮엔) 산업화하자”가 당시 거리를 메웠던 화이트칼라들의 마음이었다.

    이를 마치, [산업화] 한 세력이 따로 있고 [민주화] 한 세력이 따로 있다는 식으로 말하면 웃기는 짓이다.
    그러니 YS-DJ가 급진운동권과 야권의 정당정치꾼들을 뭉뚱그려 [민주화세력]이라 부른 것은 거대하고 구역질 나는 사기일 뿐이다.


  • ▲ 김영삼 전 대통령(오른쪽)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김홍업 전 의원이 손을 잡고 있다.  ⓒ 뉴시스


    5.자유민주-전체주의 구분법


    이게 맞는 구분법이다.
    평양 체제는, 이쪽으로 보면 [극우 전체주의]요, 저쪽으로 보면 [극좌 전체주의]다.
    [민족지상주의]와 [폭력지상주의]를 내세울 뿐 아니라 일본 천황주의와 같은 신격화를 한다는 점에서는 [극우 전체주의]다.
    그러나 그 뿌리가 공산 학살 체제라는 점에서는 [극좌 전체주의]다.
    즉 평양 체제는 [극우]와 [극좌]가 야누스로 결합된 하이브리드 전체주의인 것이다.

    전체주의“계급투쟁 혹은 민족정복전쟁의 피바다를 건너면 이승에서 구원과 천국을 이룰 수 있다”라는 정치 광증이요 정치 종교이다.
    모든 사교가 그러하듯, 전체주의라는 정치 종교도 인간 생활의 모든 측면을 장악하고자 한다.
    생각, 취향, 희망, 욕망, 주거지, 직업, 진학, 사교, 연애, 결혼, 자녀양육 … 이 모든 측면을 국가가 장악하는 것이 전체주의의 목표다.

    이 때문에 전체주의는 현대문명에서만 나타난다.
    전통사회에서는 매스컴-관료체제-국가교육기관-신속한 운송-교통 등 [인간생활의 모든 측면을 장악하고자 할 때 동원되어야 하는 수단]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체주의의 반대는 개인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짧게 줄여 자유민주다.

    물론 자유민주 체제의 구성원은 존엄한 개인이며, 자유민주의 기초는 건강한 개인주의 문화이다.
    [건강한 개인주의]란 [개인의 존엄성을 지탱해주는 미덕이 곧 공동체의 제1미덕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뜻한다.

    그와 같은 미덕은 하나뿐이다.

    진실존중, 즉 머리의 정직성(intellectual integrity) 만이 개인의 존엄성을 지탱해 주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구성원리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미덕이다.
    필자의 말이 아니라, 니체(Nietzsche) 철학에 숨겨진 요체이다. 
    이는 우리가 맹렬-존엄한 개인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입맛과 이해관계와 입장이 다를 수 있는 맹렬-존엄한 존재들이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으려면, “서로 다른 관점과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더라도 참을 참이라 선선히 인정할 수 있는 담백함”(진실존중, 즉 머리의 정직성 intellectual integrity)을 공유하는 길 밖에는 없다.

    또한 진실을 존중하는 자, 즉 진실을 사랑하는 자는 우덜식-정의감(self-righteousness)을 증오한다.
    우덜식-정의감에 불타는 [떼]는 인간이 타락할 수 있는 가장 추악한 상태다.
    예수를 잡아죽인 바리새나 여릿여릿한 처녀들을 마녀로 몰아 말뚝에 묶어 불태운 중세 교회-폭도는 모두 우덜식-정의감에 도취된 [떼]이다.
    육조(
    六祖) 혜능을 잡아죽이겠다고 날뛰었던 초기 중국 불교 선종(禪宗) 제자들이나, 위정척사(衛正斥邪—‘바름을 옹호하여 악을 무찌른다’는 뜻)를 내세워 천주교도들의 목을 잘랐던 이씨 조선의 관료-유생들 역시 우덜식-정의감에 도취된 [떼]이다.
    우덜식-정의감은 진실존중과는 상극이다.
    그래서 진실을 존중하는 자는 우덜식-정의감을 증오한다.

    원래 진정한 사랑이란 맹렬한 증오와 동전의 앞뒤 면을 이루는 법이다.
    증오가 없는 사랑은 [무늬만 사랑]일 뿐이며, 사랑이 없는 증오는 [가없는 파괴욕]일 뿐이다.


    또한 개인 존엄성의 주춧돌인 진실존중이 공동체의 제1원리가 되는 상태는 건강한 개인주의 문화가 꽃피운 상태이기도 하며 건강한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가 꽃피운 상태이기도 하다.
    뒤집어 말하자면, “공동체의 원리는 진실존중이 되어야 한다”라고 믿는 맹렬한 공동체주의자는, 이미 그 자신이 존엄한 개인실존이기도 하다.


    진실존중이라는 공통지평에서는 개인의 개인됨이 공동체의 공동체됨이다.
    개개공공(
    個個共共—개인이 개인답고 공동체가 공동체다운 상태)이 이루어진다.
    진실존중을 삶의 원칙으로 모시는 자에게는, 개인과 공동체가 각각 다른 실체이면서도 동일한 실체이다.
    진실-개인-공동체 사이의 3위1체(trinity, 셋이 각각 다른 존재이면서도 같은 존재인 상태)가 이루어진다.  


    건강한 개인주의와 자유민주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에도, 전체주의의 반대가 개인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인 까닭은 무엇일까?
    전체주의란, 사회-정치 차원의 개념인 데 반해, 개인주의란 도덕-실존 차원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반대물(
    反對物, anti-these)은 같은 차원의 개념이어야만 한다.
    그래서 전체주의의 반대 개념은 자유민주이며, 개인주의의 반대개념은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이다.
    단, 진실존중을 으뜸 미덕으로 섬기는 사람에게는 개개공공(
    個個共共)의 이치가 보이므로, 개인과 공동체가 하나로 엮이게 된다.
    그런 사람에게는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의 구분이 무의미해 진다.   


    자, 이제 우리와 상대를 가르기 위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자.
    먼저 증오부터.

    당신은 평양-전체주의를 증오하는가?

    당신은 종북-친북-떼촛불과 같이, 평양-전체주의를 섬기는 부역질을 증오하는가?
    당신은 지금의 역사교과서와 같이, 평양-전체주의를 섬기는 부역질을 부채질하는 짓을 증오하는가?


    위 대답에 대해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이라면, 증오를 공유하는 [우리]가 된다.
    우리의 증오는 구역질에 바탕한다.
    평양-전체주의에 구역질하고, 그 부역질에 구역질하고, 그 부역질을 위한 부채질에 구역질한다.
    우리의 구역질과 증오는 6.25 때 선배세대가 가졌던 맹렬한 반공의식과 맥이 닿아 있다.
    그들은 우리의 원초적 형태요, 우리는 그들의 세련된 형태다.

    우리의 증오가 진실될 것이라면, 우리에게는 참으로 소중하게 사랑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랑에 증오가 수반되듯, 모든 증오에는 사랑이 수반되는 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에 대해 묻는다.


    우리는 자유민주를 사랑하는가?
    그 기초가 되는 당당한 개인-실존을 사랑하는가?
    그 당당한 존재들을 위한 삶의 터전인 대한민국을 사랑하는가?
    그 당당한 존재들이 세계시장과 정보통신에 의해 지구적 차원에서 촘촘히 엮일 수 있음을 사랑하는가?
    그 지구적 차원에서 촘촘히 엮인 당당한 존재들이, 피부색과 민족의 차이를 넘어, 진실존중을 제1미덕으로 공유할 수 있음을 사랑하는가?


    위 대답에 대해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이라면, 사랑을 공유하는 [우리]가 된다.
    우리의 사랑은 “생명이 번영해서 벋어나가는 모습”을 기꺼워하는 호생(
    好生)에 바탕한다.
    생명의 번영을 기꺼워하기에 그 길을 조명해 주는 진실을 사랑하며, 생명의 자연스런 존재 양태인 개인 실존을 사랑하며, 그러한 개인-실존에 가장 적합한 정치체제인 자유민주를 사랑한다.
    또한 대한민국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빨리, 또한 비교적 성공적으로 자유민주를 가꾸어가는 대지가 되었기에 사랑한다.
    또한 우리의 이 같은 입맛이 세계 모든 인류가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이기에 이 입맛을 사랑한다.
    나아가, 이 입맛을 공유하는 세계 모든 인종, 모든 민족이 나날이 가까워져 가고 있는 지금의 문명을 사랑한다.


    증오에 관한 질문에 대해 모두 “증오한다”고 대답할 수 있고, 사랑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도 모두 “사랑한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우리]의 하나이다.

    우리에게는 이렇듯 [자유민주 vs. 전체주의]가 유일한 유의미한 구분 프레임이다.

    우리는 지구에서 마지막 하나 남은 극악한 전체주의(평양전체주의)를 절멸시키고자 하는 이 살벌한 [자유혼(free spirit)들의 축제]이자 [자유혼들의 전쟁터]에 초대받은 존재들이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예를 들어, 조선일보 등이 떠드는 "중립이어야 한다"는 둥, "이념적 편향은 안 된다"는 둥 같은 소리는 가소로울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자유민주주의전체주의 사이 어디에 중립이 있을 수 있나?

    이념적 편향이라고?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고 그에 충성을 다해야지, 평양-전체주의김일성 미라를 섬기란 말인가!
    우리 존엄한 개인-실존은, 자유민주에 관해 절대적으로, 운명적으로 편향되어 있는 존재들이다.


    우리에게 [자유민주에 대한 미칠 듯 한 사랑과 편향성]을 버리라고 말하는 너희 메이저언론 나부랭이들에게 경고한다.

    “평양-전체주의에 대한 증오와 자유민주에 대한 편향성을 버리라!"라는 너희의 소리는 우리더러 “나가 죽어라! 버러지가 돼라!”란 소리와 동일한 의미, 동일한 강제다.
    자꾸 그런 소리를 하면 너희를 쥐어 패겠다고 덤빌 수 밖에 없게 된다.
    우리더러 나가 죽으라 윽박지르는 깡패라면, 마땅히 늘씬 쥐어패야 하는 것 아닌가?


    너희!
    평양-전체주의 부역질을 부채질하는 교과서에 관해, 중립을 주장하는 조중동에게 노골적으로 묻는다.

    금수산 궁전에 누워 있는 김일성 미라 X대강으로부터 몇 센티 떨어지면 중립이냐?


  • ▲ 김영삼 전 대통령(오른쪽)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김홍업 전 의원이 손을 잡고 있다.  ⓒ 뉴시스

    박성현 저술가/뉴데일리 주필.
    서울대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최초의 전국 지하 학생운동조직이자
    PD계열의 시발이 된
    '전국민주학생연맹(학림)'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지도
    민주화보상법에 따른 보상도 일체 청구하지 않았다. 

    한국일보 기자, (주)나우콤 대표이사로 일했다.
    본지에 논설과 칼럼을 쓰며,
    두두리 www.duduri.net 를 운영중이다.

    저서 :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망치로 정치하기>
    역서 : 니체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웹사이트 : www.bangm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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