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조사 감사관이 되레 성추행 가해자 의혹 받아
  • ▲ 서울시교육청 홈페이지. ⓒ 뉴데일리DB
    ▲ 서울시교육청 홈페이지. ⓒ 뉴데일리DB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공립 A고에서 교사 5명이, 동료 여교사와 여학생들을 상대로 상습적인 성희롱·성추행을 일삼았다는 ‘교사 상습 성범죄 사건’이, 이보다 더 추악한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실 내분으로 묻히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고교 교사들의 상습 성범죄 사건의 내막을 규명해야 할 변호사 출신 시교육청 김모 감사관은, 감사기간에 술을 마시고 피해 여교사를 면담한 사실이 드러나, ‘음주 감사’ 논란을 자초했다.

    시교육청 감사관실의 내분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그는 피해 여교사를 면담하는 자리에 배석하라는 지시를 거부한 감사팀장과 감사반장을 A고교에 대한 감사에서 제외했다.

    표면적인 직무 배제의 이유는 감사팀장과 감사반장의 ‘부실감사’였다. 김모 감사관은 이들이 A고교 사건에 대한 감사를 부실하게 했고, 감사반장은 이 학교 가해 교사와 평소 아는 사이였다고 주장했다.

    김모 감사관은 자신이 피해 여교사를 면담할 때, 감사팀장과 감사반장이 배석하라는 지시를 거부한 사실에 대해서도 ‘항명’이라고 지적했다.

    김모 감사관의 처분에 감사팀장과 감사반장은 즉각 반발했다.

    곧 이어 ‘음주 감사’ 폭로가 터져 나왔다. 김모 감사관이 평소에도 고성과 폭언을 일삼아 고통을 받았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먼저 이들은 “김모 감사관이 지난달 26일 술을 마시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상태에서 A고교 사건 피해 여교사를 면담하려고 했다”며, 김모 감사관의 행태를 비판했다.

    피해 여교사와의 면담에 배석하라는 지시를 따르지 않은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는 “감사관이 술을 마신 상태에서 피해자를 면담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고 답했다.

    ‘음주감사’ 논란이 불거지자 김모 감사관이 다시 반박에 나섰다. 김모 감사관은 자신이 술을 마신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조사를 못할 정도로 만취하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오히려 김모 감사관은 감사팀장과 감사반장이 자신의 지시를 거부한 사실을 집중적으로 언급했다.

    김모 감사관은 음주 감사 당일 상황에 대해, “지인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막걸리를 2~3잔인지 3~4잔인지 마셨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김모 감사관은 당시 상태에 대해 “조사가 안 될 정도는 아니었다. 배석하라는 지시를 거부한 것은 항명”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의 감사업무 전체를 책임지는 감사관과 그의 지휘를 받아 감사업무에 투입되는 감사실 직원들 사이의 진흙탕싸움은 이후 더욱 심화됐다.

    감사팀장과 감사반장은 김모 감사관의 ‘부실감사’ 지적에, “감사는 제대로 했다”고 맞받았다. A고교 가해교사와의 친분을 의심받은 감사반장은 “해당 교사와는 업무상 한 번 봤을 뿐”이라며, 김모 감사관의 주장을 정면에서 반박했다.

    이 과정에서 김모 감사관이 부하 여직원을 성추행했다는 충격적인 주장까지 나왔다.

    김모 감사관의 지시로 업무에서 배제된 감사반장은 서울교육청에 제출한 사실확인서를 통해, 김모 감사관이 자신의 신체를 만지면서 성추행했다고 진술했다.

    A고교 감사반장 B씨는 정확한 날짜의 장소 시각까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김모 감사관이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주장했다.

    B씨는 지난달 26일 A고교 피해 여교사에 대한 면담 직전, 김모 감사관이 교육청 복도에서 자신의 손을 더듬으면서, 성추행을 했다고 밝혔다. B씨는 당시 김모 감사관이 술을 마신 상태였고, 자신은 그의 태도에 너무 놀라 여직원들이 있는 사무실로 황급히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 폭로를 계기로, 서울의 한 공립 고교에서 벌어진 성추문 사건은, 서울교육청 감사관의 부하 여직원 성추행 의혹으로 비화됐다.

    교사들의 성추문 사건을 감사해야 할 책임자가, 성추행 의혹을 해명해야 하는 기가 막힌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고교 교사들이 수년간 동료 여교사와 제자 여학생들을 상대로 상습적인 성추행을 자행했다는 A고교 사건도 어이가 없지만, 이 사건의 실체를 파헤쳐야 할 교육청 감사관이 부하 여직원을 성추행하고, 술을 마시고 감사업무를 수행했다는 폭로는 할 말을 잃게 만드는 희대의 사건이다.

    김모 감사관은 B씨의 폭로 내용을 전부 부인했다. 김모 감사관은 B씨가 말한 지난달 26일 복도에서 B씨를 만나 대화를 나눈 사실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모 감사관은 자신이 여직원을 성희롱했다는 주장은 모두 허구라고 주장했다.

    성추문 교사들을 감사해야 할 시교육청 감사관이 부하 여직원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커지면서, 김모 감사관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모 감사관은 지난 9일 기자들 앞에서 B씨의 성추행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김모 감사관은 자신을 둘러싼 추문은 “황당무계한 중상모략이고 사실 무근”이라고 했다. 나아가 그는 자신을 음해한 부하직원들이 유치원 관련 비리를 은폐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내놨다.

    김모 감사관은 부하직원들이 자신을 ‘음해’한 데는 배경이 있다는 말도 했다.

    개방직 감사관으로 사립유치원 비리와 성범죄 등에 단호하게 대처하고 있는데, 여기에 반발하는 내부의 부패세력이 자신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있다는 것.

    김모 감사관의 기자회견은 또 다른 후폭풍을 몰고 왔다. 자신과 함께 근무한 부하직원들을 공개석상에서 ‘부패세력’으로 매도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김모 감사관에 의해 부패세력으로 낙인 찍힌 부하직원들도 나섰다. 그들은 “김모 감사관에 앞서 개방직 감사관이 2명이나 있었어도 이런 갈등을 일으킨 적은 없었다”고 받아쳤다.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서울교육청은 10일, 박백범 부교육감을 중심으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김모 감사관의 부하 여직원 성희롱 의혹 조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서울교육청은 불과 이틀 만에 태도를 바꿨다. 서울교육청은 12일 기자회견을 열고, 김모 감사관을 둘러싼 성추문에 대해 감사원 감사를 의뢰키로 했다고 밝혔다.

    서울교육청이 감사원 감사를 요청하면서 밝힌 이유는 “자체 조사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교육청은 이와 별도로 국가인권위에 추가 조사도 요청하겠다고 덧붙였다.

    서울교육청의 감사요청 발표에, 교육계 안팎에서는 “진실 규명의 책임을 감사원에 떠넘긴 셈”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교육청이 A고교에 대한 감사와 관련돼, 김모 감사관의 직무와 권한을 그대로 유지시킨 부분도 비판을 받고 있다.

    부하 직원 성추행에 음주감사 논란으로, 이미 신뢰를 잃어버린 감사관이 총괄지휘를 하는 감사결과를, 당사자들이 받아들일지도 미지수다.

    서울교육청의 어설픈 결정이 교육청 감사에 대한 현장의 신뢰도를 더 추락시키고 있다는 쓴 소리도 나오고 있다.

    조희연 교육감의 우유부단한 태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 ▲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조희연 교육감은 파문이 빚어진 뒤에도 이렇다 할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조희연 교육감이 자신이 임명한 감사관의 성추문과 관련돼,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임명권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김모 감사관은 지난해 6월 서울교육청의 개방형 감사관 직위 공모에 지원해 감사관으로 임명됐다. 당초 조희연 교육감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인 이명춘 변호사를 서울교육청 감사관에 내정했으나, 이명춘 변호사가 과거사정리위윈회 국장급 간부로 근무하면서 자신이 관여한 거액의 국가배상 소송사건을 수임한 사실이 드러난 뒤 검찰의 수사를 받자, 임용을 취소했다.

    서울교육청의 감사 요청과 별도로 서울교육청일반직공무원노조는 10일 감사원에 김모 감사관에 대한 공익감사를 청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