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류근일 칼럼>
  • ▲ 류근일
    ▲ 류근일

     
                 자유주의 버리고 포퓰리즘 껴안은 유승민

    공무원연금 개혁한다 해놓고 국민연금·국회법 야당案 수용…

    원칙 포기가 '따뜻한 保守'인가
    민중주의 狂風에 'No' 못하고

    야당에 정신적으로 투항해서 與 정체성·노선 문제 드러내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는
    결국 "그의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 다수의 뜻을
    그가 받아들이는 모양새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개인 유승민의 거취 여하와는 별개로
    이번 사태가 함축한 집권 여당의 정체성 문제와 노선 문제,
    그리고 내년 총선과 201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당내 권력투쟁은
    오히려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유승민 사태와 관련해선
    "박근혜 대통령의 '여왕적' 자세가 더 나쁘다"는 의견과
    "유승민 원내대표가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엇갈렸다.
    그러면서도 국회의원 한 사람을 그렇게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찍어내려 한 건
    옳지 않다는 사람들이 약간 더 많아 보였다.
    그러나 사태의 본질을 박근혜 대통령의 스타일 문제나 성격 문제로 단순화하는 것은
    정확하지 못할 수 있다. 그건 자칫 불공정할 수도 있고,
    이번 사태가 가진 노선 투쟁의 측면을 흐리는 흠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소통에 인색한 건 사실이다.
    그의 문화가 시민적이라기보다는 다분히 '궁정적(宮廷的)'인 것도 사실이다.
    이 점은 박근혜 시대의 우울한 그림자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으로 유승민 사태의 전체상을 설명할 수는 없다.

    유승민 사태는 공무원연금 개혁, 국민연금 소득 대체율 인상, 그리고 국회법 개정 과정에 있었던 집권당 원내대표 유승민의 노선(路線)이 과연 어땠느냐 하는 각도에서도 충분히 조명돼야 한다. 그 과정에서 유승민적 운신(運身)은 과연 적절했고 합당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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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사퇴의 변(辯)에서 자신의 운신을 '정의로운 보수'라고 자칭했다.
    그러나 그동안 불붙었던 논점은 '정의로운 보수냐, 정의롭지 못한 보수냐?'가 아니라
    '그의 대야 협상이 잘한 것이냐, 잘못한 것이냐?'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부분에 관한 한 그는 잘했다고 하기 어렵다.
    야당의 기준에선 물론 잘했다.
    그러나 여당의 기준에선 일방적으로 밀려 준 것이다.

    공무원연금 개혁 등 4대 개혁의 당사자인 박근혜 대통령으로선 화가 날만도 했다.
    객관적으로도 공무원연금 개혁은 새누리당만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국민적인 정당성이 꽤 높은 어젠다였다.
    그런데 그걸 다른 이도 아닌 집권당 원내대표라는 사람이 김을 확 빼버린 것이다.
    그것도 모자랐던지 그는 야당이 끼워넣은 국민연금 소득 대체율 인상과 국회법 개정안도
    덜컥 받아먹었다.

    이 '의도된 실패(?)'의 책임에서 그는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런 지적에 대해 유승민 의원으로서는 "국회선진화법하에서
    야당에 반대급부를 주지 않으면 꼼짝달싹도 못 하는데 그럼 어쩌란 말이냐?"고 할 것이다.
    하지만 '합의(合意)를 위한 합의'에 연연해 원칙과 대들보와 척추를 훼손할 순 없다.

    야당과 운동권이 그러는 것 봤나?
    그들은 자신들의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을 관철하기 위해선
    아스팔트에 나앉아 여론 투쟁을 하지,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다.

    유승민과 새누리당은 비싼 밥 먹고 왜 그 반, 아니 30%, 20%, 10%도 안 하고 못 하는가?
    그리고 그런 정당한 원칙의 천명, 대의명분의 천명을 피한 채
    "나도 사실은 진보적…"이라는 양 자기 생색이나 내며 밀려주는 게
    유승민식 '정의로운 보수'요 '따뜻한 보수'인가?

     유승민 의원 등 새누리당 정치인들은
    오늘의 우리 상황을 그리스 사례에 비추어 심각하게 돌아봐야 한다.
    그리스를 망친 것은 포퓰리즘, 즉 '민중민주주의'였다.

    처음엔 파판드레우의 사회당이 그걸 시작했으나 나중엔
    카라만리스의 신민주당까지 덩달아 포퓰리즘으로 질주했다.
    '공짜' 시리즈에 익숙해진 대중의 표를 얻자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망조(亡兆)였다.
    은퇴자 연금이 퇴직 전 월급의 92%였다니 나라가 어떻게 망가지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오죽하면 사회당의 테오도로스 팡갈로스 부총리도 이렇게 개탄했을까?

    "우리 그리스인들 모두가 함께 먹어치웠다."

     문제는 이 민중주의 광풍(狂風)에 단호히 '노(No)'라고 했어야 할 자유주의 정치인들이
    급진 좌파 뺨치는 포퓰리즘 시책을 경쟁적으로 팔고 다녔다는 사실이다.

    '김무성 새누리당'의 상당수 정치인도 그런 '스톡홀름 증후군'
    (납치당한 사람이 납치범에게 정신적으로 투항하는 심리)에 젖어 있는 건 아닌지?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지난 4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 때도
    "양극화 해소를 역설한 노무현 대통령을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는 정계 입문 때 정당 선택을 잘못한 것이다.

    야당은 정체성이 너무 독(毒)해서 탈, 여당은 너무 흐릿해 탈이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