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聖骨’과 ‘세작’이 어찌 한 집에 살 수 있나?
     
      
     새민련 혁신위의 김경협 의원이 "비노는 새누리당 세작"이라고 한 것은
    사상사적으로 꽤 족보가 있는 말이다.
    결코 단순한 말실수 정도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한 마디로 그 말은 이념적 교조주의 분파가
적대세력뿐만 아니라 당내 온건-실용주의 그룹에 대해서도
전가(傳家)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숙청과 파문의 멘탈리티를
 반영하는 상투어다.
따라서 그가 이런 말을 썼다는 것은 용어의 문제나 표현의 문제이기 전에 이념적 도그마티즘(dogmatism)의 문제다.
 
 도그마티즘은 사회이론을 마치 종교의 교리(敎理)처럼 믿는
정신상태다. 과학적 방법론과는 정반대인 셈이다.
도그마티즘은 극단주의(ultraism), 분파주의(sectarianism)와 항상 붙어 다닌다.
이 3종 세트가 갖춰지면 '자기들 기준의' 절대진리와 절대정의의 이름으로
무자비한 숙청이 자행된다.
당 바깥의 적에 대해서는 수구반동,·반혁명 딱지를 붙이고,
당 내부의 온건-실용파에 대해서는 개량주의, 수정주의, 중간파(centrist), 기회주의란
죄목을 갖다 붙인다.
 
 "비노는 새누리당의 세작"이라는 말은 결국 전통야당의 중도개혁주의와 그 계열을 겨눈
이념적 근본주의 운동권의 숙청의 칼끝이라 할 수 있다.
이념적 근본주의란 1980년대 중반에 당시 학생운동을 장악했던
 NLPDR(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노선을 말하는 것이다.

 그 주역들이 지금
야당에, 국회에, 관청에, 학계에, 교육계에, 문화계에, NGO에,
그리고 사회각계에 새로운 기득권 세력으로 등장해 있다.
 
 작금의 야당의 내부갈등과 친노-비노의 싸움은 결국 숙주(비노)에 기생하던 애벌레(친노)가 자라서 성충(成蟲)이 되자 그 숙주를 잡아먹고 자기들이 명실공히 주인 노릇을 하려는 데서 비롯한 것이다. 이념적으로는 "그까짓 뜨뜻미지근한 중도개혁 노선 집어치우고 아예 화끈한 좌파노선으로 가자"는 것이다. 권력투쟁이자 노선투쟁인 셈이다.
 
 대한민국과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진취적으로 나가려는 보수여당과, 온건한 한계를 지키려는 진보야당이 대세를 이루어야 한다. 이 기준에서 여당은 그 나름의 비판을 받아야 하겠지만, 오늘의 야당 새민련 주류 역시 당내의 온건 중도파까지도 '적의 간첩' 쯤으로 몰아 숙청하려는 지극히 시대착오적인 교조주의 집단으로 전락해 있다. 이렇게 편향된 이념 일변도로 나가면서 어떻게 이 다양한 한국사회를 통합적으로 끌고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불가사이 한 노릇이다.
 
 야당이 집권하려면 '국민적 보편성'이라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설정해야 한다. 그게 중도 개혁주의다. 예컨대 안보는 정통주의(보수), 경제는 시장원리 내에서 합리적 복지(진보) 정책으로 절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친노+486 운동권의 야당 주류는 이를 배척하면서 해묵은 이념적 편협성에 여전히 중독돼 있는 것으로 비친다. 그러기에 그들은 당내 비노를 '당원동지' 아닌 '반역자', '적과 동침한 자'로 낙인하고 있지 않은가?
 
 김경협 발언을 보고서도 친노+운동권에 미련을 못 버린다면 그 비노도 별로 똑똑한 사람들은 못될 것이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