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무리한 기소”→1심서 당선무효형→“형벌조항 위헌”
  • 지난해 6월4일,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직후의 조희연 서울교육감. ⓒ 사진 연합뉴스
    ▲ 지난해 6월4일,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직후의 조희연 서울교육감. ⓒ 사진 연합뉴스

    지난해 6.4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교육감 후보였던 고승덕 변호사의 미국 영주권 보유 의혹을 제기한 혐의(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상 허위사실공표죄)로 재판에 넘겨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3일 1심 재판부가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하자, 위헌심판 신청의사를 밝히는 등 곽노현 전 서울교육감과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자신이 신청한 국민참여재판에서 기대와 달리,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벌금형을 선고받자, 크게 당황한 듯 연이어 돌출 행동을 하고 있다.

    앞서 23일 밤 마무리된 1심 재판에서, 심리를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심규홍 부장판사)는 배심원의 의견을 받아들여 조희연 교육감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이 사건 심리에 참여한 7명의 국민배심원단은 같은 날 만장일치로 조희연 교육감에게 유죄평결을 내렸다.

    국민참여재판을 통한 무죄판결을 내심 기대했던 조희연 교육감은 재판 직후, 자신이 신청한 국민참여재판이 한계를 드러냈다며, 제도 자체를 신랄하게 비난했다.

    특히 조희연 교육감은 24일 한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에게 유죄평결을 내린 배심원단을 “법을 모르는 비전문가들”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하하면서, 물의를 빚고 있다.

    당초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 당사자가 바로 조희연 교육감이고, 선고가 내려지기 직전까지도 재판부와 배심원단의 판단을 존중하겠다고 했던 조희연 교육감이,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이 나오자 태도를 돌변해, 배심원단을 헐뜯는 행태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조희연 교육감은 배심원단을 비난한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이번에는, 자신을 기소한 법률 조항을 문제 삼고 나섰다.

    조 교육감은 24일 서울교육청 간부회의에서, “공직선거법 250조 2항의 허위사실공표죄는 OECD 가입 국가에는 거의 없는 내용”이라며, “선거운동 기간 동안 표현과 언론의 자유에 대한 지나친 규제는 바로잡아야 하기 때문에 헌법소원을 내는 것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 23일 1심 재판 선고를 앞두고 법정에 들어서는 조희연 서울교육감. ⓒ 사진 연합뉴스
    ▲ 23일 1심 재판 선고를 앞두고 법정에 들어서는 조희연 서울교육감. ⓒ 사진 연합뉴스

    일반적인 1심의 경우보다 무죄선고율이 무려 3배나 높은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고도, 배심원 만장일치로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형을 선고받은 상황을 고려할 때, 항소심이나 상고심에서 결과가 뒤집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따라서 조 교육감의 위헌심판 발언은, 자신을 기소한 형벌조항 자체를 문제 삼지 않고는 위기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판단을 기초로 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우선 조 교육감은 항소심 심리가 이뤄질 서울고법 재판부에 문제의 조항인 공직선거법 250조 2항에 대한 위헌법률 심판제청을 신청하고, 재판부가 신청을 기각하는 경우 직접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 헌법소원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조 교육감이 1심 선고 직부부터 헌법재판 카드를 꺼내든 이면에는, 위기를 타개할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절박함 외에도, 최대한 ‘실리’를 얻자는 속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서울고법 재판부가 조 교육감 측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을 받아들인다면, 재판은 헌재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정지된다. 물론 이 경우 재판이 정지된 기간 동안 조 교육감은 안정적으로 현직을 유지할 수 있다.

    결국 조 교육감의 위헌심판 제청 발언은, 두 가지 측면이 모두 담긴 계산된 화법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조 교육감이 바라는 대로 상황이 바뀔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은 반응이다.

    조희연 교육감이 문제 삼는 형법조항은 공직선거법 250조 2항이며, 교육감선거에 관한 지방교육자치법은 위 조항을 준용하고 있다.

    위 조항은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연설·방송·신문·통신·잡지·벽보·선전문서 기타의 방법으로, 후보자 본인 혹은 그 배우자, 직계존속, 직계비속, 형제자매에 대해 허위 사실을 공표하거나 공표하게 한 자, 허위사실을 게재한 선전문서를 배포할 목적으로 소지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조희연 교육감이 경쟁후보였던 고승덕 변호사의 미국 영주권 보유의혹을 제기한 행위는 위 조항이 금지하는 허위사실공표에 해당한다고 보고, 조 교육감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어 1심 재판부와 배심원단은 검찰의 혐의 적용이 정당하다고 보고, 조희연 교육감의 행위를 허위사실공표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위 조항이 위헌법률로 결정된다면, 해당 조항은 효력을 상실하고, 조희연 교육감은 자유의 몸이 된다. 문제는 헌재가 위 조항의 위헌성을 이미 한 차례 심사했다는 사실이다.

    조희연 교육감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위 조항은 2009년 18대 국회의원이던 이무영 전 의원에 의해 한 차례 심판대에 올랐다.

    당시 이무영 전 의원은 위 조항의 벌금형 하한이 지나치게 높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냈으나, 헌법재판소는 같은 해 9월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허위사실공표 행위가 선거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상대적으로 높은 법정형을 규정한 현행 법 조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조희연 교육감 측이 해당 조항에 대해 위헌심판을 제기하더라도, 헌재가 위헌결정을 내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

    나아가, 서울고법 재판부가 조희연 교육감이 낼 위헌법률 심판제청 신청을 받아들여 재판을 정지할 가능성은 더욱 낮다.

    조희연 교육감이 보이고 있는 일련의 행보는 같은 좌파교육감이었던 곽노현 전 서울교육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2010년 6.2 지방선거 당시 경쟁후보에게 출마포기 대가로 2억원을 건네, 공직선거법상 후보사후매수 혐의로 구속기소된 곽노현 전 교육감은 2012년 대법원이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의 형을 확정하면서, 교육감 직을 잃었다.

  • 곽노현 전 서울교육감. ⓒ 사진 연합뉴스
    ▲ 곽노현 전 서울교육감. ⓒ 사진 연합뉴스

    당시 곽노현 현 전 교육감 측도 1심에서 당선 무효형은 벌금 3천만원을 선고받은 뒤, “후보사후매수죄는 사문화된 조항”이라며 검찰이 무리하게 법률을 적용했다고 거칠게 비난했다.

    이어 곽 전 교육감 측은 위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을 냈고, 항소심 재판부가 신청을 기각하자, 곧바로 헌재에 위헌법률 헌법소원을 냈다. 그러나 헌재는 2012년 12월, 곽 전 교육감의 기대와 달리 공직선거법상 후보사후매수죄 조항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렸다.

    1심에서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형을 선고받고, 자신을 기소한 형벌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한 부분이나,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를 했다고 비판한 사실 모두 닮아도 정말 많이 닮았다.

    조희연 교육감이 곽 전 교육감과 흡사한 행보를 보이면서, 교육청 안팎의 근심도 깊어지고 있다.

    교육청 주변에서는 교육감 직선제가 도입된 이래 만 10년도 안 되는 사이에 다섯 번 째 교육감 선거를 치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서울의 경우 2008년 첫 직선제 투표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교육감선거를 치렀다.

    2008년 선거에서 당선된 공정택 교육감은 취임 1년 2개월 여 만에 벌금 150만원을 선고한 판결이 확정되면서 물러났다. 뒤를 이은 곽노현 전 교육감은 경쟁후보에게 후포 포기의 대가로 2억원을 건넨 혐의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며, 대법원이 원심의 형을 확정하면서 구치소에 수감됐다.

    곽 전 교육감 파문 이후 12월 19일 대선과 함께 치러진 선거에서 당선된 문용린 전 교육감은 잔여임기인 1년 6개월을 무난하게 마쳤으나, 지난해 치러진 6.4 서울교육감 선거 당시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해 선거에서 문용린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조희연 교육감 역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5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공정택부터 조희연까지 전현직 교육감 4명이 모두 형사법정 피고인석에 앉는 기막힌 악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현실은 교육감직선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깜깜이 선거’, ‘로또선거’라는 조롱을 듣는 교육감 직선제도를 폐지해, 전현직 교육감이 형사법정에서 고개를 떨구는 악순환을 피하자는 것이다.

    한국교총이 지난해 8월 제기한 교육감직선제 위헌법률 심판은,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 심리가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