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者가 生권력을 치다

• 死者가 生권력을 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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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근일 고문/전 조선일보 주필

  김기춘 허태열 이병기 이완구 홍문종 유정복 홍준표 부산시장...
  이미 고인(故人)이 된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죽어도 그냥 놓아둘 수 없다"고 생각했음직한 사람들 명단을 죽 나열했다.
  "이 명단에 오른 사람들에게 10만 달러에서 1억 원까지의 불법 자금을 건넸으니 검찰은 이들을 잡아다 족치시오" 한 셈이다.
  나아가 이것으로 박근혜 정부를 향해 "나 혼자 죽을 순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 모양새다.

 

고인이 폭로한 것은 물론 수사를 해서 물증을 잡아내야만 실체적 진실로 성립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으로선 어떤 섣부른 예단도 금물이다.
하지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이것으로 박근혜 정부는 또 앞으로 나가는 게 막혔다고.

 

박근혜 정부에 반대하는 입장일수록 "보나 마나 뻔하지, 돈을 안 받았겠어?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의 말 아닌가?"라며 '명단 남(男)'들에 대한 검찰수사-특검수사-국정조사 등을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운동권은 그들대로 이것을 가지고 아스팔트로 달려 나갈 판이다.
"박근혜 정권은 정당성을 상실, 아니 처음부터 없었다"는 논리를 들고서.
박근혜 정권을 딱히 반대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 사태를 두고선 변호인의 입장에 설 용의도, 이유도, 명분도 없다고 할 것이다.

 

결국 친박 진영은 배를 갈라서 결백을 증명해 보일 수도 없는 난감한 상태에서 온갖 부정적인 말, 말, 말들을 들으며 속절없이 당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싸움의 상대방이 고인이 됐으니 멱살잡이를 하려야 할 수가 있나, 선(先)은 이렇고 후(後)는 이렇다, 무릎마침을 할 수가 있나, 친박 진영으로서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일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가까스로 좀 올랐나 싶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여론 지지도도 내일 당장 어떻게 표변할지 모를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럴 때 자신의 주위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 그 '무엇'이 지금 과연 있는지를 새삼 돌아보았으면 한다.
그 '무엇'은 과연 무엇인가?

바로 원군, 동맹군, 지원군, 연립세력(coalition building)이다.

 

정치는 통합의 예술이라고도 하지만, 상당수의 경우는 '싸움의 기술'이다.
"어떻게 하면 내가 이기느냐?"  하는 다툼이다.
이기는 것의 요체는 다수파 형성이다.
"어떻게 하면 다수를 내편으로 만들고 상대방을 쪼그라뜨려 고립시키느냐?"인 것이다.

이게 바로 정치력이라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걸 아예 하지 않기로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금 그 주변에 누가 있어 그가 밀릴 때 변호를 해 주겠는가?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가?

박근혜 대통령도 다수의 동맹군이 필요하지 않다는 듯한 행보를 보여 왔다.
자기가 임명한 장관들과도 대면접촉을 하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하물며 남이랴.

그래서 그에게도 40%대의 뜬구름 같은 여론지지도는 있지만, 정치적 동맹세력은 없다.

정치를 이렇게 해도 되나?
단임이라서 그런가?

"너희들, 선거 끝날 때까지만 필요하고 일단 당선 되면 내가 다시 출마할 것도 아니고 두 번 다시 너흰 안 본다."

이런 식이다.

 

왜 지금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가?

'성완종 리스트'는 앞으로 박근혜 정부를 외롭게 만들 것이다.
아무도 변호하려 나서지 않고, 그렇다고 쉽사리 수그러들지도 않을, 밑도 끝도 없는 고립무원의 곤경에 처해서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 실세들은 아마 꽤 썰렁해질 것이다.
이럴 때 "아, 정치는 혼자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뼈저린 자성(自省) 이라도 한 번 해 보라는 뜻에서 하는 소리다.

 

명단 사태와 관련해 검찰은 엄정하고 신속하게 수사하라!